물산장려운동이란 3·1운동 후 개화한 근대 지식인층 및 대지주들이 중심이 되어 물자 아껴쓰기 및 우리 산업 경제를 육성시키자는 기치 아래 민족정신을 일깨우며 앞장서 벌여 나간 운동이다. 3·1운동 이후 일제의 한민족에 대한 탄압은 날로 심해지고, 1923∼1924년에는 사회주의 사상이 침투, 확산되면서 민족정신 말살정책이 점차로 노골화하여 갔다. 이때 3·1운동에 참가하였던 민족 지도자들이 민족운동의 부흥을 위해서는 우리 힘의 배양이 절실함을 주장하면서 벌인 운동이 '조선물산장려운동'의 시발이었다. 1923년 1월 9일 20여 개의 민족단체 대표 160여 명이 서울에 모여 발기준비대회를 가진 데 이어 2월 16일에 3000여 명의 회원들이 참가하여 발족시킨 모임이 이 운동의 중추적인 기구가 되었다. 이때의 기본 실행 요강을 살펴보면, 첫째 의복은 남자는 무명베 두루마기를, 여자는 검정물감을 들인 무명치마를 입는다. 둘째 설탕-소금-과일-음료를 제외한 나머지 음식물은 모두 우리 것을 사 쓴다. 셋째 일상용품은 우리 토산품을 상용하되, 부득이한 경우 외국산품을 사용하더라도 경제적 실용품을 써서 가급적 절약을 한다. 이 세 가지가 ‘조선물산장려운동’의 기본정신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