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루살렘의 왕 아말릭 1세와 동로마 황녀 마리아 콤네나와의 결혼식을 묘사한 그림. 아말릭 1세 역시 이집
트 정복의 뜻을 품고 있었습니다.
시르쿠와 살라딘의 이집트 원정을 이야기하기 전에 이들과 대결하게 될 예루살렘 왕국의 왕 아말릭 1세와 파
티마조 이집트의 상황부터 살펴봅시다. 1162년 예루살렘의 왕 보두앵 3세가 이질에 걸려 32세의 젊은 나이
로 세상을 떠났습니다.(독살이라는 설도 있음) 이때 아말릭은 자파와 아스칼론의 백작으로 있으면서 에데사
백국의 공주 아네스와 결혼하여 살고 있었는데 이 첫번째 결혼에서 딸 시빌라와 아들 보두앵( 킹덤 오브 헤
븐에서 시빌라역을 에바 그린이 연기했죠. 동생 보두앵은 "문둥이 왕"이란 별칭으로 불렸습니다.)을 얻었습
니다. 형이 후계없이 급사하자 그 왕위를 계승하였는데 아말릭 1세는 즉위하자마자 이집트 영토에 대한 욕심
을 노골적으로 드러내기 시작했습니다. 사실 이집트 정복은 예루살렘 왕국 역대 군주들의 숙원 중 하나였지
요.이집트는 그 풍요로움에 비해 군사력은 약한 편이었고, 그래서 당대의 야심가들은 모두 이집트를 노리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예루살렘 왕국의 입장에서 보면 이집트마저 장기 왕조의 수중에 떨어지는것을 두고볼 수
는 없는 일이었죠. 이런 와중에 이집트에서 내전이 발생하면서 아말릭과 누레딘 모두에게 이집트로 파병할
명분이 되어줄 사건이 벌어집니다. 당시 이집트의 파티마 조는 이미 쇠퇴할대로 쇠퇴하여 한때 아프리카, 유
럽, 아시아에 이르던 광대한 영토를 모두 상실하고 현재 이집트에 해당하는 지역만 간신히 유지하고 있는 상
황이었습니다. 게다가 칼리프의 권위가 땅에 떨어져 실권은 몇 안되는 권신들이 휘두르고 있는 형편이었지
요. 1149년 이후로 이들 실력자들 간의 내전이 발생해 국내 사정은 더욱 어려워졌습니다. "이븐 탈라 루지
크"가 이집트의 새로운 실권자가 되어 어느정도 정국이 안정되는 듯 하다가 1161년 이 사람이 암살당하고
그 자리를 상 이집트의 지배자 사와르가 넘겨받았으나 이 사람 역시 부하 장수였던 디르감의 반란으로 쫓겨
나게 됩니다. 이때 쫓겨난 사와르는 다시 권좌를 되찾기 위해 누레딘에게 의탁해 왔는데 사실 지난 이집트
내전 당시에도 누레딘은 사와르를 지원했던 전력이 있었죠. 사와르는 어마어마한 규모의 공물을 바치며 누레
딘에게 군대를 빌리기 위해 노력했고, 누레딘 역시 루지크 생존시 억눌러왔던 이집트 영토에 대한 욕심이 다
시 끓어오르는 것을 느끼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누레딘은 장거리 원정에 따른 부담감, 그리고 원정로 인근
의 십자군 국가들의 보급로 습격 가능성 등으로 인해 사와르에게 확답을 주지 못하고 망설이고 있었죠. 그런
데 누레딘이 망설임을 떨치고 파병을 확정짓게 하는 사건이 벌어집니다. 젊은 야심가 아말릭 1세가 끝내 이
집트를 침공하고 만 것입니다. 선왕 보두앵3세 시절에 이집트가 예루살렘에 연공금을 바치기로 한 일이 있었
는데 이집트가 내부 사정으로 인해 이 약속을 지키지 못하자 이를 빌미로 침공을 감행한 것입니다. 같은 이
슬람 국가의 군주로서 이를 묵과할수 없다라는 좋은 명분이 생긴 것이죠. 이에 누레딘은 자신의 최측근이자
이름난 용장인 "아사드 앗딘 시르쿠"(살라딘의 숙부)를 총사령관으로 하는 대규모 원정군을 조직했고, 여기
에는 그해 25세가 된 살라딘도 끼어 있었습니다. 이 원정군의 표면적 목표는 반역자 디르감을 처단하고 침략
자 아말릭을 몰아내는 것이었지만, 누레딘의 진짜 목표가 다른 곳에 있다는 것을 모르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
습니다. 한편, 이집트를 침공한 아말릭 1세는 이집트의 혼란상을 이용하여 연전연승을 거듭하고 있었습니
다. 디르감은 아직 정권을 차지한 지 얼마 되지 않아 외적의 침입에 제대로 대응하기 힘든 상황이었고, 아말
릭은 이틈에 밀린 연공금을 받아내는 것은 물론 아예 이집트 전체를 손아귀에 넣을 생각에 사로잡혀 있었
죠. 그런데 아말릭과 그의 병사들이 잘 모르는 사실이 하나 있었습니다. 이들이 이집트를 침공한 시기는 나
일강의 범람기였는데 외지인들인 예루살렘군이 이것을 알리가 없었죠. 승리에 들뜬 아말릭과 예루살렘 왕국
군은 십자군 국가 최초로 카이로 인근의 빌베이스까지 진군하는 쾌거를 올렸지만 누가 알았겠습니까, 이곳
이 수많은 병사들의 무덤이 될 줄은... 이 빌베이스를 지키고 있던 이집트 군은 마침 범람한 나일강물을 막
고 있던 댐과 제방을 무너뜨려 버렸고, 승리에 들떠 있던 아말릭 휘하 병사들은 졸지에 타향에서 강물에 수
장당하는 신세가 되고 말았습니다. 왕이었던 아말릭은 간신히 목숨을 건져 간신히 팔레스타인으로 돌아올수
있었지만 자존심에 엄청난 상처가 난 뒤였죠. 그런데 뜻밖에도 디르감으로부터 우호 관계를 맺고 싶다는 요
청과 함께 밀린 연공금이 전달되자, 아말릭 1세는 크게 당황했습니다. 그런데 디르감이 패배한 적에게 다급
히 손을 내밀수밖에 없는 절박한 사정이 있었습니다. 바로 시르쿠가 이끄는 시리아의 대군이 바로 지척에 다
가와 있었던 것입니다.
시리아와 십자군, 이집트군 간의 각축전이 묘사되어 있는 지도입니다. 지도에 보면 본문에서 아말릭이 수공
으로 패배한 빌베이스도 보입니다.(빨: 십자군(예루살렘+동로마군) 녹: 시리아 주: 이집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