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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학생의 하루
게시물ID : freeboard_627482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마네모네드가
추천 : 1
조회수 : 992회
댓글수 : 0개
등록시간 : 2012/10/14 17:40:31

늦은 아침에 눈을 떴다



시끄러운 알람소리가 귀를 괴롭힌다. 부셔버리고 싶다



나는 오늘로 복학한 지 일주일째다. 2년이나 군대에 있었지만 아침에 일어나는건 여전히 지옥같다



덜 뜬 눈을 비비고 주위를 둘러보니 방에는 술병이 널부러져있다. 잔에 비친 내 얼굴이 언제나 그렇듯이 수척해보인다.



새내기때는 안이랬는데



시계를 보니 지금 뛰어가지 않으면 지각할 것 같다. 옷을 대충 입고 모자를 쓴다.



꾸미지 않은지는 꽤나 오래된 것 같다. 이젠 꾸미는게 어색하다고 느껴진다



학교에 올라가는 길은 항상 적응이 안된다고 불평을 하며 언덕을 올라간다



날씨는 꽤나 쌀쌀하다. 늦가을에 부는 스산한 바람이 내 볼을 스친다. 귀를 스친다



점점 추워오는 날씨에 내 얼굴은 꽤나 붉어진 것 같다



길 양 옆으로는 얼마 안남은 낙엽들이 보인다. 겨울이 오면 저 잎들마저 없어지겠지



학교에는 꽤나 많은 사람들이 오르고 있다. 다들 지각을 할까봐 노심초사하는 모습이 얼굴에 비친다.



몇몇은 뛰어가고 몇몇은 그냥 걸어간다. 그들의 손에 쥐어진 전공책들이 무겁게도 느껴진다.



우리는 앞으로 얼마나 큰 삶의 무게를 손에 쥐고 살아가야할까, 하는 쓸데없는 생각이 머릿속에 잠깐 머무르다 간다.



그리곤 저 많은 사람 중에 아는 사람 한 명 없다는 사실이 나를 슬프게한다.



정신없이 걷다보니 어느새 교실이다. 가까스로 지각은 면했지만 늦게 도착해서 구석에 앉아야 할 것 같다



곧 수업이 시작되었다. 귀에 들어오지 않는다. 집중을 잘 할 수가 없다



교수님 말씀이 한 쪽 귀로 들어와서 그대로 다른 귀로 흘러나간다



한참동안 창밖을 내다보고 있다가 문득 부모님 말씀이 나를 죈다.



열심히 공부해야지



다시 또 한참을 수업에 집중하니 어느새 휴식시간이 찾아왔다.



복학했으니 반갑게 수다 떨 친구는 없다. 다시 또 창밖을 하염없이 쳐다본다.



기분나쁘게도 구름이 시꺼멓게 껴있다. 구름이 아주 두꺼워서 햇살 한 줄 보이지 않는다.



초점을 바꾸니 유리창에는 내 얼굴이 비춘다. 머리는 아직 짧고 피부는 군에서 쓰던 위장크림에 많이 상해있다


오래된 생고기처럼 피부는 생기가 없다.



그나마 다행인 것이 아직 눈빛만큼은 빛난다. 많이 빛난다.



두 눈은 이런 생활은 금방 극복한다고 말하지만 아직 머리는 그게 아닌 것 같다.



넓은 운동장에 나 혼자 서 있는 것같은 생활의 반복이다.



혼자서 대충 학생식당에서 밥을 챙겨먹는다. 밥알들도 자기들끼리 뭉쳐있다

밥알들이 나를 비웃는 것 같다.



밥맛이 없어져 많이 남겼다. 우산을 챙겨서 나와야했는데 실수했다.



내려가는 길에 빗방울들이 떨어진다.



이 빗방울들은 어디서부터 떨어진 걸까? 저 높이서부터 떨어지는 빗방울들이 나를 때리기 시작한다.



심지어 이제는 빗방울들마저 나를 싫어하는 것 같다.



전속력으로 나에게 내려 꽂힌다.



비가 너무 많이 내려서 잠시 정류장에서 비를 피하기로 마음먹었다.



거리에는 참 많은 색깔의 우산들이 있다



소주보다 진한 초록색, 삼겹살 보다 진한 밤색.



한 우산 안에는 꼭 두 명의 사람들이 있다. 그리고 성별은 남자와 여자.



남자는 꽤 훤칠하다. 얼굴에 생기가 도는게 아직 군대는 다녀오지 않은 것 같다



행복해 보인다.



남자의 얼굴에는 행복이 담겨있다. 볼이 붉으면서 말도 잘 안하는 것이 순수해 보인다.



여자도 아까부터 웃음이 끊이지가 않는다.



전체적으로 둥글둥글 하게 생긴게 보름달 같다. 꽤나 잘 어울리는 커플이다



너무 뚫어지게 봐서 그들이 나를 이상하게 쳐다보는 것 같다.



내 눈알은 황급히 다른 곳을 향한다. 비에 홀딱 젖은 내 모습이 그들의 따뜻하게 마주잡은 손과 대조된다.



쏟아지는 빗물에 더 이상 비참해지지 않으려고 근처 편의점에 후다닥 뛰어가 우산을 사려고 한다



조명이 편의점 안을 훤히 비춘다.



물건들은 더 쓸모있어 보이고 음식들은 더 맛있어 보인다.



편의점 김밥들이 나를 유혹한다. 전자레인지에 돌려서 한입 먹으면 쓰라린 내 속을 달래줄 것 같다



상품 밑에는 1+1이벤트라고 큼지막히 적혀있다.



나란히 놓여있는 먹을거리들이 나를 또 조용히 비웃는다. 들리지 않는 채한다



구석에 있는 칙칙한 색 우산 한 개와 술을 들고 계산대로 향한다



계산원은 바코드기를 댄다. “만 원입니다.” 빗물에 젖은 지폐 한 장을 꺼내서 건네어 준다.



계산원의 손은 아주 희고 작았다. 가지런한 손톱은 지폐를 거두어 갔다.



자연스럽게 눈길은 얼굴을 향한다. TV에서 나오던 연예인만큼 예쁘진 않았다.



길에서 그냥 지나칠 수 있는 평범한 외모.



하지만 어딘가 모르게 사람을 휘어잡는 표정을 하고 있다



늘 해오던 듯이 계산을 하고 집으로 향했다



생각없이 걷다보니 어느새 집에 와 있다.



집은 늘 좁다



겨우 한 명이 살만한 크기다. 침대와 옷장 그리고 책상이 내 살림의 전부이다



보기만해도 가슴에 무엇인가가 가득찬 느낌이다



어제 먹다 남긴 안주냄새가 여전히 방 안에 자리잡고 있다



순간 뛰쳐나가고 싶은 느낌이 들었지만 이 곳말고 내가 갈 곳은 없다.



나는 담배는 피지 않는다.



뿌옇게 올라오는 연기가 마치 내 속에서 중요한 무엇인가가 빠져나가는 듯한 느낌이 들기 때문이다.



연기들을 보고 있으면 하염없이 슬퍼져서 금방 불을 끄고 만다



아무런 소리도 들리지 않는다. 고독함이 나를 덮친다. 빠져나갈 수가 없다. 도망칠 수도 없다



가까스로 리모컨을 들고 TV를 킨다. 웃음소리들이 이내 방 안 가득 울려퍼진다.



소주병을 따고 다시 또 한참 시간이 흐른다.



창 밖의 하늘은 벌써 하늘색에서 짙은파란 색으로 바뀌었다



한숨을 크게 내쉰다.



다르게 표현하면 한숨이 나에게서 빠져나갔다.



마치 나에게서 도망가려는 것처럼



나는 요새 무얼하고 있는지 자책하고 있다가 난데없이 아까 그 편의점 알바생이 머릿속에 떠오른다.



다시 생각해보니 키도 내 품에 쏙 들어올 정도이고 애교도 많을 것같은 얼굴이다.



뜬금없이 가슴이 마구 쿵쾅거린다. 술김에 그런 건지는 잘 모르겠다.



씻고 침대에 누워 눈을 감아도 생각은 생각에 꼬리를 문다





잠에 빠져들기 직전 다짐을 한다. “내일은 말이라도 한 번 꼭 걸어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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