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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어벡의 퇴장이 한국축구, 나아가 한국사회에 남긴 것들
게시물ID : sports_7497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후룹탑텔라
추천 : 16
조회수 : 998회
댓글수 : 2개
등록시간 : 2007/08/01 12:17:18

 

한동안 이 사진이 머릿속에서 사라지지 않을 것 같다.

 

베어벡의 퇴장은 단순히 한국 축구계의 문제나, 한 외국인감독의 실패를 의미하지 않는다.

 

한 분야에서 자신에게 맡겨진 임무를 성실하게 수행하며, 목표를 향해 차근차근 나아갔던 한 소박한 인간의 패배...

 

그런 측면에서, 베어벡의 퇴장을 둘러싼 상황은 한국사회의 문제가 무엇인가를 극명하게 보여 준다.

 

 

감독으로서의 능력 유무를 떠나, 그는 누구보다도 성실하고 자기 분야에 열정이 있는 사람인 것만은 분명해 보인다. 

 

또 그는 히딩크에 비해서도 한국축구 자체에 대한 애정이 많았던 사람인 것 같다.(히딩크는 계약에 의해 자기 일에 충실했을 뿐, 그다지 한국축구 자체에 애정이 많았던 것 같지는 않다.)

 

감독경력이 초라하지만, 축구전술 자체에 대한 이해가 뛰어난 전술가라는 데는 대부분 동의를 한다는데.(그렇다면, 그는 현재 한국축구가 가질 수 있는 최고의 지도자다. 일단, 가격대비 성능이 좋다. 히딩크급의 감독을 초빙하려면, 일단 베어벡 연봉의 최소 10배는 주어야 할 것이다. 하지만 그는 1/10의 연봉으로, 최소한 히딩크급의 80-90%의 능력을, 어쩌면 그 이상의 능력을 발휘할 수 있는 사람이다. 더구나 외국의 일급지도자는 한국이라는 먼 나라에 오기를 꺼려하는 문제도 있다. 히딩크 시절, 주위사람들이 도대체 그 촌동네에서 뭐하냐고까지 했다고 하지 않은가. 또 그들은 베어벡만큼 한국축구 자체에 대한 애정이 없음도 고려해 봐야 한다.)

 

그는 철저히 혼자였고, 많이 상처받고, 외로움을 느꼈던 것 같다.

취임 때, 경력이 없다는 등, 코치에나 제격이라는 등의 비판을 받아야 했던 일은 무시하자.(뭐, 이 정도야 타당한 비판이라고 볼 수 있다. 하지만, 나는 누가 처음부터 화력한 경력을 갖고 있느냐고 옹호하고 싶다. 클리스만은, 홍명보는 이전에 얼마나 많은 감독 경험을 갖고 있었던가. 그리고 그가 감독보다는 코치에 어울린다는 지적이 있는데, 그건 그가 한국축구에 더욱 알맞은 지도자라는 말이기도 하다. 기본기와 전술이해 능력이 떨어지는 한국선수들에게는 그처럼 자상하고 세밀하게 부족한 부분을 가르쳐 주는 선생이 필요하다)

 

 

이국땅에서 가족과 떨어져 살아간다는 일이 쉽지는 않았으리라. 더구나 터부니 없는 비난과 질시까지 감내해야 하는 상황이니...

 

아시안컵을 출전하며 한 베어벡의 인터뷰 도중, 한국언론은 4강에 못들면 감독을 사퇴할 것이냐고 묻는다. 정말 기본적인 상식도 예의도 없는 어처구니 없는 질문이다. 전쟁터에 나가는 장수에게 격려는 못해줄 망정, 전쟁에서 지면 어떻게 할 것이냐고 묻는 격이 아닌가.

 

(이 질문을 한 기자놈은 공부야 좀 해서 기자가 되었을지는 몰라도, 깊은 지혜도, 한국축구에 대한 애정도 전혀 없는 놈이 분명해 보인다. 현재, 감독이 교체되서 벌어지는 혼란을 보라. 당장 8월에 경기에 나서야 하는 올림픽 대표팀으로서는 심각한 문제를 안게 된 것이다. 아마 이 기자놈은 축구기사를 쓰면서도, 8월에 올림픽 팀의 경기일정이 있는 것도 몰랐을 거다.)

 

 

한국언론의 선정성, 무책임성, 비전문성에는 입이 다물어지지 않는다. 한국사회에서 가장 문제가 많고, 가장 경쟁력이 떨어지는 분야가 바로 언론아닐까. 아, 누가 한국언론의 이 천박성과 싸울 수 있단 말인가. 고양이 목에 방울을 달기란 정말 쉽지 않은 일이다.

 

한국사회의 배타성도 베어벡을 무척 힘들게 만들었을 것이다.

원래 축구계가 파벌과 밥그릇싸움으로 유명한 곳이지만.

한국축구인들이 질시와 배척은 아직도 너무 심하다.

 

(예전에 비해 나아진 점이 없는 건 아니다. 축구계의 비주류인 박종환 감독 시절에는 호텔방까지 찾아와 그에게 감독직을 사퇴할 것을 요구했다고 하지 않은가. 그에 비하면, 뒤에서 씹고, 언론을 통해 합리적인 비판인 척 비난을 일삼는 것에 그치니, 많이 점잖해진 편이라고 해야 하나.)

 

대회도중, <스포츠조선>에 실린 한국감독들의 코멘트를 보자. 정말 가관이다. 자기가 감독을 맡고, 한창 대회에 열중하는데, 다른 사람들이 그렇게 비판 아닌 비난을 하면 뭐라고 할지 궁금하다.

 

그에 더해, 축협 기술위원장의 다소 무책임한 듯한 태도도 문제다.

 예전, 히딩크가 사퇴압력을 받던 시절, 이용수 기술위원장은 사람들을 설득해 가며, 끝까지 히딩크를 방어하려 했다지 않은가. 그런데 이영무 기술위원장은 입이 무거운 건지, 아니면 몸을 사리는 건지. 대회 중에 감독을 흔드는 언론에도 묵묵무답. 심지어, "골을 못넣는 것도 감독의 책임"이라며 베어벡을 압박하지 않았는가. 자기도 베어벡의 감독임명의 책임에서 자유로울 수 없는 사람이라면, 최소한 감독임기 중에는 끝까지 그를 믿고 기다리는 것이 당연한 도리이지 않을까.

 

 

나는 베어벡의 권위적인 카리스마가 아닌, 따뜻한 가슴으로 선수들을 장악해 나가는 온화한 카리스마에도 주목을 하고 싶다.

(이거, 한국사회에 무척 부족한 부분이다. 한국사회는 아직 목에 힘 주지 않고, 쓸데 없는 권위의식을 부리지 않으면, 그 권위를 인정하지 않을려는 경향이 강한 것 같다.) 

 

선수들이 베어벡감독의 퇴임을 접하고 나타낸 안타까움에는 의례적인 반응만은 아닌, 진심이 담겨 있었으리라 생각된다. 이번 대회, 한국팀은 이라크팀과는 다른 단결력을 보여준 것 같다. 팀이 상당히 가족적이고 화기애애한 분위기로 넘쳐 난다고 할까. 예전의 대표팀이 보여준 강압과 권위에 눌린, 문제를 안으로 숨기고 있는 단결의 모습과는 상당히 다르다.

 

 하지만 베어벡감독의 다소 유약한 성격도 유감이다. 베어벡보다야 사정이 나았지만, 히딩크도 많은 비판을 받은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그는 쓸데 없는 비난에 게의치 않고 뚝심 있게 자신의 목표를 향해 나아갔다. 히딩크가 베어벡을 두고 "지나치게 섬세한 사람"이라는 소리를 한 적이 있었다. 그게 그의 최대 약점인 듯 싶다.

승부의 세계에서 살아남으려면, 좀 뻔뻔할 필요도 있지 않을까.

 

베어벡, 그의 인간적 성실함이 언젠가는 반드시 결실을 맺기를 진심으로 기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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