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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가 지지 않는 나라
게시물ID : sisa_236575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엄만테이른다
추천 : 4
조회수 : 263회
댓글수 : 2개
등록시간 : 2012/10/15 19:09:28

아시다싶이 영국은 한때 해가지지 않는 나라로 불리며 떵떵거리고 살았죠.

흔히들 영국의 그러한 발전은 이른 산업혁명 때문이라고 오해들 하시는데

산업혁명은 그 후에 국가적 발전이 있고 난 뒤에 따르게 된 소산물일 뿐입니다.

 

배경으로 돌아가서 얘기하자면 르네상스의 끝물즈음에

지중해를 거치지 않는 무역항로의 개척으로 당시 유럽의 패권과 경제력이 지중해 국가에서 대서양으로 넘어가던 시기였습니다.

 

에스파냐가 특히 돋보였는데

금본위제의 당시 유럽경제에서 남미 식민지에서 나오는 금과 은은 에스파냐의 엄청난 부흥을 이끌게 되었죠.

 

하지만 그 위세는 얼마 가지 못합니다. 에스파냐-> 영국, 프랑스 등으로 넘어가죠

 

배경은 이러합니다. 에스파냐의 경우 엄청난 금과 은을 자국내의 장기적인 산업을 육성시키는데 쓰지않고 전부 외국으로 소비하는 한편에

영국과 프랑스등의 국가는 들어오는 금을 이용해 자국내의 산업을 육성합니다.

 

당시 유럽각국은 식민지여파로 인한 새로운 경제, 종교개혁의 문제, 르네상스후 급격한 귀족층의 몰락등으로 상당히 혼란한 시기였습니다.

 

이 상황에서 영국은 유럽내에서도 독특한 발전경로를 보입니다.

절대주의 왕조 시대가 다른 국가들보다 빨리 왔었고 또 없어지는 것도 다른 국가들 보다 빨랐는데요

 

학계에선 이런 영국의 빠른 발전상에 대해 여러가지 이유로 설명합니다.

1. 섬으로 이루어진 국가였으므로 유럽대륙국가들보다 육군력에 비교적 덜 투자할 수 있었다.

   (당시 해군이란 평상시엔 상선, 어쩔땐 해적질을 하는 사략선, 전쟁시엔 군함으로 이용되는 것으로 유지비가 훨 적게들었죠

   영국은 이러한 이점을 많이 보게 됩니다.)

 

2. 비교적 외세의 위협이 적어 안정적으로 내부의 갈등을 빠르게 소모할 수 있었다.

   (이 시기에 영국은 장미전쟁을 비롯 많은 내전을 경험합니다. 전쟁이 끝날즈음엔 당사자 서로가 함계 살길을 모색하게 되고

    이러한 과정에서 정치적인 발전이 이루어졌습니다.)

 

3. 스코틀랜드 군주 제임스 1세에 대한 전근대적인 지배에 대한 런던시민들의 반발

 

정도로 볼 수 있는데요

 

중요한 점은 이것입니다.

 

역사에서 우리는 항상 배울게 있어요 실패한 나라의 과정을 살펴보며 배울수 있고 성공한 나라의 성공 과정을 살펴보며 배울수 있죠.

 

"영국이 다른 유럽국가들보다 빠른시기에 절대왕조가 들어서고 그것이 또 상대적으로 빨리 개혁되면서 빠른 산업혁명을 이루게 되었다는 점 "

 

현재 종북, 빨갱이 어쩌고 하면서 내부의 갈등을 외부로 돌리려 하는 시도는

 

나라의 발전에 아무 도움도 안되는 짓이란 겁니다.

 

6.25 사변 직후도 아닌 21세기에 충분히 북한에 대해 경제적, 군사적 우위를 쥐고 있지만

 

우리나라의 몇몇 정치인들은 국민들의 시선을 내부에서 외부로 돌리고저 항상 이를 교묘히 이용하죠

 

물론 안보의식은 어느 세대 어느 때나 지니고 있어야 할 것이 맞습니다.

 

하지만 지금과 같이 도를 지나친 빨갱이 종북 매커시즘은

 

내부의 갈등에 대한 비판적인 여론을 죽게 만들고 이는 나라의 발전을 더디게 만드는 것 이란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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