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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명의 노인과 한 분의 어르신
게시물ID : humorbest_372713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無劍조자룡Ψ
추천 : 95
조회수 : 11515회
댓글수 : 3개
베스트 등록시간 : 2011/07/21 15:04:25
원본글 작성시간 : 2011/07/21 09:27:30
어제 저녁 퇴근시간에 지하철에서 1명의 노인과
오늘 아침 출근시간에 지하철에서 한 분의 어르신을 보았습니다.

먼저 퇴근 시간에 지하철에 만난 1명의 노인입니다.

지하철 6호선을 타고 삼각지에서 내려 4호선 갈아타는 곳에 무빙워크가 있습니다.

제 와이프랑 같이 퇴근하는 길이었기에 두손 잡고 무빙워크 길을 걸어가고 있었습니다.

퇴근시간이라 사람이 붐볐고 무빙워크에도 많은 사람들이 총총걸음으로 이동하고 있었죠.

맨 위에 그림으로 대충 그려 봤습니다.

상황은 빨간색원의 노인이 갑자기 뒤로 오더니 하는 어이없는 이야기를 하는 겁니다.


"거 좀 비킵시다. 버르장머리 없이 손 잡고 길을 막고 있어? 이게 뭐하는 짓이야."


순간적으로 뭐야 이 이상한 할아버지는? 라고 생각했습니다.

나랑 와이프가 가만히 서있던 것도 아니고 걸어가고 있었고, 앞 사람과 겨우 2~3m 정도 밖에 떨어지지 않았는데 우리가 뭘 얼마나 늦게 간다고 뒤에서 그런 이야기를 하는지 언뜻 이해가 잘 안됐습니다.

순간적으로 화도 났죠. 앞에 있는 사람들도 양쪽으로 서서 걷고 있었기 때문에 만약 내가 비켜주더라도 꼴랑 몇 발자국 더 갈 뿐입니다. (뭐 모세의 기적을 일으켰을지도요. 계속 비키라고 하면서 -_-;)

근데 사람이라는게 그렇습니다.

우리가 의도적으로 막고 서 있었다면 그런 이야기 들어도 할 말 없습니다. 근데 우린 걸어가고 있었고, 약간 떨어져 거리를 두고 같은 속도로 걷고 있었을 뿐입니다.

지하철이 오고 있어서 급했던 것도 아닙니다. 지하철 오는 소리도 안 들렸고, 안내방송도 없었고, 줄 서고 5분 뒤에 사당행이 도착했으니까요.

아무튼 아주아주 무례한 노인이라는 생각 밖에 안 들더군요.

그 상황에서 정 빨리 가고 싶으면, "젊은이들 잠깐 지나가게 길 좀 비켜줄 수 있겠나?" 라고 이야기하면 어련히 안 비켜주나요. 저는 평소에 누가 길을 막고 있으면, "죄송합니다. 잠시만 지나갈께요" 라고 합니다.

뭔가 심사가 단단히 꼬여서 온갖 불평불만 가득한 사람처럼 말을 하는지 이해가 안 됩니다.

나이가 많다고 대우해줄꺼라고 생각한다면 경기도 오산입니다. 저렇게 심사가 뒤틀려 있는데 무슨 대우를 해줍니까. 생판 처음보는 남인데요. 내 가족이라도 그러지 말라고 하겠습니다.

결국 무빙워크 끝나는 곳 까지(그래봤자 몇 발자국 안됨) 우리는 속도 맞춰서 위 사진과 동일하게 앞 사람과 약간 거리를 둬서 계속 걸어 갔습니다. 뒤에서 노인이 별별 험담을 다하더군요.

그래서 어제 와이프랑 즐겁게 퇴근하는 길에서 기분이 팍 상해 영 찜찜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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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은 오늘 아침에 본 한 분의 어르신 입니다.

출근 때는 시간을 좀 단축시키고자 1호선을 탑니다. 신도림에서 내릴려는 찰나에 갑자기 옆에서 어르신의 고함소리가 들립니다.

"아니 지금 어딜 만져?"

그리고 뒤이어서 우당탕 거리고, 옆에서 아가씨들이 깍깍 합니다.

자세히는 보지 못했지만, 상황을 보니 왠 노숙자 같은 아저씨가 성추행을 하고 있던 것 같습니다.

그걸 백발의 어르신이 고함을 치시면서 그 남자를 밀쳐냈고 (처음엔 한대 치신 듯)

저는 내려야 해서 내린 뒤에 보니까, 어르신이 그 노숙자 같은 남자를 발과 손으로 밀치면서 승강장으로 내 보냈습니다.

성추행 남자는 그래도 계속 지하철 안으로 들어갈려고 했고, 어르신은 계속 밀쳐 냈습니다.

그 생황이 반복되면서 스크린이 2번 정도 열렸다 닫혔다 했습니다.

사람들은 뭐야 뭐야? 하면서 구경하다가 문이 닫히고 성추행 남자가 열차로 못 들어가자 다들 아무일 없었다는 듯 내려가더군요. 뭐 저도 그랬고요.

그리고 출근하면서 생각을 했습니다.

성추행 남자는 꾀죄죄한 모습이었지만 언뜻 30대 초중반 정도로 보였습니다. 몸집은 크지 않았지만요.

그런 남자를 백발의 어르신이 달려드신다는 것이 참으로 대단했습니다. 내가 저 나이 되어서도 저럴 수 있을까 싶을 정도였고요.

솔직히 지하철 안에서 자기 가족이 아닌 사람이 성추행 당하고 있다면 순순히 도와줄 사람이 얼마나 될까요? 괜히 참견했다가 더러운꼴 보는 세상 아닙니까. 그 남자가 칼이라도 들고 있다고 생각하면 온 몸에 소름이 돋는군요.

세상이 이렇게 각박한데 그 어르신의 용기는 존경스러웠습니다.


결론은 어제 오늘 1명의 노인과 한 분의 어르신을 저는 만났습니다.

제가 늙으면 후자인 한 분의 어르신이 되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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