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mbed src="http://pds17.egloos.com/pds/201002/08/93/01.swf" type="application/x-shockwave-flash"></embed><br><a href="http://bgmstore.net/1221" target="_blank">BGM정보 : 브금저장소 - http://bgmstore.net/1221</a>
오유를 시작한지도 1년이 다되어가네요.
요즘 오유에 여러 사람들의 살아온 이야기가 많이 올라오길래 저도 오래살진 않았지만
다사다난한 삶을 산것같아 몇자 끄적끄적 해봅니다.
음슴체로 하고싶지만 나름 진지먹는 이야기라 존대체로 갑니다.
1989년 태어나고 보니 엄마는 20살,
아버지라는사람은(나이모름)술만먹으면 출산한지 100일도 안된 아내와 갓난아이를 때리는 의처증이였습니다.
(연예시절에는 다해줄듯 잘했다고 함..)
제가 태어난지 100일이 조금 지났을 어느날,
어김없이 술을 먹고 들어와서 저를 때리고 엄마에게 흉기를 휘둘러
추운 겨울날 엄마는 맨발로 피를 흘리며 저만 담요에 꽁꽁 싸서 도망쳐 나왔다고 합니다.
그후로도 그아버지라는사람은 1년가량 걷지도 못하는 저를 훔쳐가서 죽이겠다는 온갖협박으로
엄마에게 돌아오라고했고 엄마는 소송을 걸어 이혼한후 제가 성인이 될때까지 그사람은 저에게 접근금지령을 받게 됩니다.
그후 저희 엄마는 젊음을 바쳐 홀로 저를 키웠습니다.
제가 5살 쯤, 엄마는 이것저것 하다가 호프집이 잘되어 제법 비싼옷입고 좋은음식을 먹을만큼 살게 되었습니다.
(이때 나름 땅값비싼동네에 2층집에 살았음.)
하지만 그 행운도 오래가지 않았습니다. 주변 상인들의 시기로 미성년자 단속에 걸렸고(주변상점에서 미성년자를 심고 경찰에 신고함.)
그로인해 영업정지를 받았고 영업정지 기간에 알수없는 화제로 모든걸 잃게 되었습니다.
그후 엄마는 트럭으로 운전해 다니며 옷장사, 젖갈장사..안해본게 없었고..
그래도 하루하루 굶지 않을 만큼 살았던 기억이 납니다.(이전이야기들은 엄마에게 들은 이야기..)
초등학교를 들어갈때쯤, 반지하에 살았는데 그때 처음보는 아저씨가 집에 자주 왔고
그사람은 지금 저를 가슴으로 완전히 품으신 우리 아빠입니다.
그때 한창IMF로 힘든 시기였고, 제가 9살때 엄마가 임신을 하였는데
하루하루 끼니때우기도 힘들만큼 힘들게 살았습니다.
임신한 엄마조차 제대로 먹기 못했고 전기와 물이 끊켜
가스버너에 쌀한줌에 물을 냄비가득 끓여서 쌀을 퉁퉁 불려 먹는 생활을 했습니다.
(그래도 다행인것은 집주인이 정말 좋은 분이라 길바닥에 쫓겨나진 않았음.
이와중에 진짜 나쁜놈인게 우리반지하방에 도둑이 들어서 돼지저금통과 내 연필깍이를 훔쳐감-_-.)
1999년 동생이 태어나던 추운겨울날(산부인과 갈돈도없어서 조산원에서 양수터지고 이틀만에 목숨걸고 동생을 낳았음.)
한푼이라도 더벌어보려고 먼곳에서 일하던 아버지는 엄마 옆을 지키지 못했고
사랑하는 내 남동생은 태어나자마자 춥고 습한 지하방에서 빈젖을 빨아야했습니다.
어딘가에서 주워온 매트리스에 10살짜리 저와 작은 핏덩이와 엄마는 서로의 체온으로 긴겨울을 보냈습니다.
그래서 지금도 제동생은 아토피을 앓고있고 기관지가 않좋으며 코피를 자주 흘립니다.(지금생각해도 가슴이 많이 아프네요..)
초등학교 4학년 무렵 사정이 조금 나아져서 비록 월세였지만 지상에 있는 집으로 이사를 갔습니다.
아직도 우리 가족은 그집을 구더기 집 이라고 부릅니다.
그 이유는 화장실이 푸세식화장실이였는데 (보통 푸세식화장실은 집과 멀리 떨어져있는 반면 우리집은 집바로 옆에 붙어있었음.)
여름만되면 구더기가 집으로 기어들어와서 구더기 집이라 불렀던 기억이 나네요.
비록 그때도 힘들게 살았지만 굶지 않는 것 만으로도 행복했던것 같네요.
그리고 이때쯤 어릴때부터 단짝이던 친구가 학교에서 저랑 저희 아빠랑 성이 다르다며
학교에 소문을 냈고 계부랑 산다고 친구들이 놀리며 왕따를 당하게 됩니다.
(지금생각하면 그게 왕따를 당할 이유도 아닌데 초등학교때는 소소한것으로 친구를 따돌리기도 했던것 같음.)
그리고 초등학교 6학년때 집주인이 월세를 올려달라고 해서 먼곳으로(전세가 싼지역) 이사하면서 초등학교때 친구를 모두 잃게 됩니다.
(이당시에는 휴대폰도 보급되있지 않았고 저희집에는 컴퓨터도 없어서 이때까지 완전 컴맹이였음.)
사실 할머니집에서 1년만 지내며 원래 다니던 초등학교를 다닐수도 있었는데
심한 왕따로 인해 떠나고 싶은 마음도 컷던것 같습니다.
이사를 하면서 아빠에게도 딸이 있다는걸 알게 되었고 제나이 13살에 4살차이 언니가 생겼습니다.
처음에 엄마가 언니를 너무 좋아했고 잘해줘서 시기도 많이 했지만 비슷한 상처를 받은 언니라 그런지
마음도 잘맞고 이야기도 잘통해서 둘도없는 자매가 되었습니다.
하지만 중학교를 들어갈무렵 학교에서 등본을 가지고 오라고 했는데 그때 처음 알게 되었습니다.
등본에
부 아빠이름
모 엄마이름
자 언니이름
자 남동생이름
동거인 제이름
이렇게 되있는 겁니다.
이때 저는 언니는 엄마랑 피한방울 안섞였는데 자녀로 되있는데 왜 난 동거인이야?하는 생각에
많이 힘들었고 나만 없으면 이 가정은 아무 하자 없는 행복한 가정이 되겠구나 하는 생각을 했습니다.
사실 이때 언니에게 소리 없는 반항을 하기도 했습니다.(근데 얼마전에 언니랑 한잔하며 이야기하니 언니는 전혀 눈치 채지 못했던...)
당시 기억이 가물가물하긴한데 故김대중대통령님때부터 호주제 폐지 이야기가 나왔고
故노무현대통령님때 호주제폐지가 됬던것같습니다.
(제기억이 맞나요? 이당시 청화대앞으로 호주제 폐지시켜달라고 한달에 몇통씩 이메일을 썼던 기억있음.)
하여튼 호주제가 폐지 되었다는 뉴스를 보며 아빠와 부등켜안고 울었던기억이 납니다.
(당시 호주제폐지가 혼란을 주니 마니 말이 많았지만 우리가족에겐 정말 좋은 소식였습니다. 이건 지금생각해도 눈시울이 붉어지네요..)
하지만 호주제폐지후에도 학교를 다니고있어서 중간에 성을 바꾸면 학교 친구들이 우리가정사를 다알게 될까봐 바꾸지 못했습니다.
(지금은 바꿧고 성,본 변경및 개명후 저희 아빠는 이름이 닳아라 불러주십니다.
사실 그전에는 저를 딸, 어이, 야..등으로 불러서 많이 섭섭했거든요...
어쩌면 아빠도 가슴으론 이미 딸로 품었는데 내친아버지라는 사람이 지은 이름을 부르기가 싫으셨던거 같습니다.)
다시돌아가서..
중학생때 친아버지라는 사람이 염치도 없이 학교로 찾아봐서는 담임선생님께 이야기해서
저를 조퇴시켜서 그사람 집으로 데려갔습니다. 그러고는 그사람 부인을 소개해주면 엄마라고 하고
그사람의 자식들을 소개시켜주며 내 동생들이라하는 말도 안되는 소리를 했습니다.
처음보겠지만 나와 피를 나눈 동생들이라길래
'내가 내몸에 피를 다 뽑아버릴수있다면 다뽑아버리고 다른피 넣고 싶다' 고 했습니다.
그사람은 나를 처음 보자마자 '잘컷네, 이쁘게 컷네, 건강하니' 등의 말이 아닌
'난 잘못한거없다' 라고 말했습니다.
다시는 내앞에 나타나지 말라했습니다. 신고하겠다고 나한테 접근금진거 모르냐고.
그사람이 학교에 찾아온걸로 인해 학교에는 제가 원조교재를 하니...어떠니 하는 이상한 소문이 돌았고.
믿고 내 비밀을 이야기했던 친구들의 입을 거치면서 불쌍하고 이상한 사람이 되어 버렸습니다.
죽고싶었고 죽으려 했지만 그때마다 저를 이만큼 키우면서 저보다 더 힘들었을 엄마를 생각하며 견뎠습니다.
전세값을 올려달라고 할때마다 이집 저집 이사를 다니다가
고등학생무렵 부터 집안 사정이 많이 좋아졌고 태어나서 처음으로 아파트에 살게 되었습니다.
어릴적부터 아빠없이 자랐다는 말 듣지 않게하려고 엄하게 저를 키우신 엄마덕분인지
단번의 일탈도 방황도 반항없이 원하는 대학에 수시수석합격을 했고
합격후 입학전까지 아르바이트를 해서 등록금을 벌고 남은 돈으로 아빠의 틀니를 해드렸습니다.
크다할 효도는 못해드렸지만 대학 다니면서 크고작은 장학금으로 집안 부담을 덜어드리려했고
전국 대회에서 여러차례 수상하여 상금을 용돈으로 쓰며 부모님의 자랑거리가 되려 노력했습니다.
집에서도 썩...기대를 했고 학교 후배에게도 썩..괜찮은 선배였습니다.
그리고 올해 초 대학을 졸업함과 동시에 IN서울 취업을 했지만 건강이 나빠져서 지금은 백.조.생활중입니다.
건강때문에 4년동안 적성에 맞다고생각했고 썩 잘한다고 생각했던 일을 못하게 되었습니다.
주위에서 모두들 니 몸으로 그일 못한다고 합니다.
대학까지 졸업해서 이렇게 집에서 뒹굴고 있는 모습이 부모님께 죄송하기도하지만 한편으로는 왜 이해주지 못하실까 섭섭하기도 합니다.
지금 몸도아프고 심적으로도 불안하고 너무너무 힘들다고 생각했는데 오늘 제가 살아왔던 날들을 쭉 써보니
지난날들에 비해 지금은 아무것도 아니네요.
살다보면 이런일도있고 저런일도 있는데 내가 가장 불행하고 가장 힘들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은것 같네요.
그래도 하루하루 굶지 않고 내옆에 위로해줄 누군가가 있다는 것만으로도 얼마나 행복합니까ㅋㅋ
지금은 이일이 세상에서 제일 힘들 고난같겠지만
지나고보면 그랬었지 하고 웃을 날이 오겠지요ㅋㅋ
긴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쓰다보니 길어지고 두서없네요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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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유하면 안생긴가면서요?
당신들 속고있는거에요.
우린 같이 오유하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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