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서울 이지석기자]최근 종영한 ‘음악의 신 시즌2’에서 ‘18년차 연습생’으로 분해 미친 존재감을 뽐내며, 사실상 프로그램의 인기를 이끌었다는 평가를 받는 ‘음악의 女신’ 이수민. 화면 속 그는 ‘무표정’으로 사람들을 웃기는 이상한 캐릭터일 뿐이었지만 그 캐릭터가 완성되기 까지는 오랜 숙성 기간, 그리고 뜨거운 눈물이 필요했다. 최근 만난 이수민은 말했다. “33년간 살아오며 ‘최선을 다했다’고 처음으로 말할 수 있는 시간을, 이 프로그램을 촬영하며 보냈어요.” 그는 ‘음악의 신 시즌2’를 되돌아보다가 인터뷰 도중 눈물을 흘렸다. “이 프로그램은 칠흑같은 어둠 속에서 만난 한줄기 빛이에요.”
◇‘음악의 시즌1’ 이후 4년의 방황 그리고 서른 즈음 얻은 깨달음
배우 겸 방송인 이수민은 지난 2012년 엠넷 ‘음악의 신 시즌1’에서 말없고 카리스마 있으면서 ‘똘끼(?)’ 충만한 캐릭터였던 ‘이 고문’ 역으로 주목받았지만 본인은 정작 그때 뭐가 뭔지 몰라 힘들었던 기억 밖에 없다. “사실상 아무 준비도 안된 상태에서 얼떨결에 시즌 1을 촬영했어요. 이게 뭔지도 모르고, 모큐멘터리(가짜 다큐멘터리 형식)에 대한 개념도 없었어요.”
이십대의 마지막해였던 그해 프로그램 종영 직후 케이블 E채널의 예능 ‘특별기자회견’에 모습을 보인 이후 이수민은 4년 동안 TV에 나오지 않았다. “저는 정극을 하고 싶었거든요. 그래서 각종 예능 출연 제의를 거절했어요. 다 ‘음악의 신 이 고문 캐릭터’만 원하더라고요. 그땐 그게 싫었어요. 반대로 영화 쪽에서는 ‘음악의 신 출연’ 경력이 전혀 도움이 되지 않고 오히려 불리한 요소더라고요. 소속사 시스템이 받쳐주지도 못해 영화나 드라마 오디션도 별로 못보고, 무의미하게 시간을 흘려 보냈어요.”
나중에 이수민을 찾는 쪽은 전라 베드신을 요구하는 에로 영화, 전라 노출을 원하는 잡지 뿐이었다.
그렇게 시간을 허비하며 그는 모든 걸 ‘남탓’으로 돌렸다. 2003년 연극 ‘클로저’로 데뷔한 뒤 2005년 뮤지컬 ‘루나틱’을 준비할 때 만났던 배우 이연희, 박기웅 등이 잘되는 걸 보면서 ‘나만 왜 운이 따르지 않을까’라는 생각도 많이 했다. 그는 서른이 넘어서야 깨달았다. “2년 전부터 남탓을 안하기 시작했어요. 이연희, 박기웅은 되는데 저는 안된 이유요? 노력을 안했던 거죠. 다른 사람보다 열심히 하지는 않고, 남탓만 한 거더라고요. ‘금수저’는 아니지만 부족함을 못 느끼며 자라서인지 간절함이 없었어요. 그걸 어렴풋이 알긴 했는데 20대의 저는 그걸 인정하지 않고, 핑계만 대며 살아왔어요. 제가 최선을 다하지 않았기 때문에 생긴 일들이란 걸 안 어느 순간, 후회를 많이 했어요. 시간을 되돌릴 수 있다면 그러고 싶었어요.”
◇시즌2 최고의 ‘신스틸러’, “태어나서 처음, 온 몸을 불살랐다!”
4년간 단 한 작품도 만나지 못한 이수민이 ‘음악의 신 시즌2’ 박준수 PD에게 출연 제의를 받은 건 지난 2월이었다. 이미 연예게 은퇴를 결심한 이수민은 이 제안을 고사했다. “괜히 ‘음악의 신’을 또 했다가 헛바람이 들까봐. 끝난 뒤 시즌1 때처럼 더 힘들어질까봐 주저했어요.”
그러나 ‘시즌2’ 온라인 방영분을 보고, 그 속에서 ‘가짜 이수민’이 출연하는 걸 확인하곤 묘한 감정을 느꼈다. “온라인판 2~3회를 봤는데 재미가 없는 거에요. 그리고 ‘가짜 이수민’을 보며 기분이 이상했어요. 제가 ’음악의 신’에서 그렇게 중요한 존재라고 생각한 적이 없는데, 박준수 PD가 ‘이수민 캐릭터’를 안죽이고 다른 사람으로 대체하면서까지 끌고 가는 걸 보며 마음을 돌리게 됐어요. 저는 이 프로그램을 하고 싶었던 것보다 그냥 박준수 PD만 믿고 따라갔어요.”
이수민은 프로그램 2회부터 투입됐다. 그가 깜짝 등장하는 신을 촬영할 때 이상민 등 다른 출연진은 이수민의 투입 사실을 전혀 모르고 있었다. 다른 출연진이 이수민의 등장에 깜짝 놀라하는 건 연출이 아니라 진짜다. 다시 편하게 ‘이 고문’ 역할을 맡을 줄 알았던 이수민에게 주어진 역할은 ‘18년차 연습생’이었다. 중간에 투입돼 프로듀스101 출신 윤채경, 김소희와 함께 C.I.V.A라는 프로젝트 걸그룹에 얼떨결에 합류해 팀의 센터 겸 메인보컬 겸 비주얼 겸 댄싱 머신 역할을 맡으랴, 프로그램의 웃음을 책임지랴 그야말로 정신없는 시간을 보내면서 그는 ‘날고 기는 예능인’이 총출동한 이 프로그램 내에서도 ‘최고의 신 스틸러’로 평가받으며 자신의 역할을 120% 이상 수행했다.
“처음부터 시행착오를 겪으며 고생한 다른 분들과 달리 저는 중간에 합류해 눈치가 보였어요. 프로그램과 다른 출연자에게 해만 끼치지 말자는 생각으로, 그야말로 최선을 다했어요. 돋보이겠다는 생각은 전혀 없었어요. 잊지 않고 저를 불러준 PD님, 저를 기억하는 시청자에게 감사하니 보답하자는 생각 뿐이었어요. 확실한 건요. 제가 무슨 일에 최선을 다해본 게 33년 평생 처음이에요. 그야말로 온몸을 불살랐어요.”
그는 프로그램 촬영 마지막날 차안에 들어가 남들 몰래 뜨거운 눈물을 흘렸다. 프로그램이 끝나 아쉬운 때문이 아니었다. 단 5일만에 프로젝트 그룹 C.I.V.A의 ‘왜불러’ 안무 연습, 음악 녹음, 뮤직비디오 촬영까지 마친 뒤 너무 몸이 힘들어서 자신도 모르게 나온 눈물이었다. 그리고 그건, 무슨 일에 ‘목숨을 걸어본 자’만 느끼는 희열이기도 했다.
이수민은 인터뷰를 진행하다 박준수 PD 이야기가 나오자 눈물을 보였다. “종방연 때 PD님이 나와 나눈 문자 메시지 내역을 보여주셨어요. 4년전 시즌1을 마치고 마지막에 ‘고생했어’라고 보내신 다음 문자가 4년뒤 ‘고생했어. 너 덕분에 시즌2가 좋았다’라는 문자였어요. 4년 동안 내가 연락 한번 못드린 거에요. 그런데도 나를 불러주셨어요. 촬영 중간중간 투정도 하고, 자신감 없는 모습도 보였는데 그때마다 ‘잘하고 있다’고 격려를 해주셨어요. 내게 이 프로그램과 PD님은 태양 같은 존재입니다.”
이수민은 요즘 길거리를 걸으면 10명중 7명이 자신을 알아보고 웃는다고 했다. 자신의 얼굴만 봐도 웃기다는 사람들을 보면 신기하지만, 그리고 프로그램 속 진지한 자신이 왜 웃긴지 아직 이해를 잘 못하지만, 이제는 그런 관심이 좋다고 했다. “사는 게 너무 각박하고 웃을 날이 없는데 저를 보면서 많이 웃었다는 분의 글을 SNS에서 봤어요. 웃음을 찾아줘서 고맙다는 말에 기뻤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