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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개의 나라2
게시물ID : readers_3742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PF*any
추천 : 1
조회수 : 230회
댓글수 : 1개
등록시간 : 2012/09/28 10:48:00

3  

남편과 아이들이 어디있는지도 모른 채, 혼자서 간신히 수도에 도착하였다. 수도는 나와 같은 사람이 천지였다. 같은 나라 어디서 그렇게 많은 사람이 몰려 나왔는지, 신기하면서도 전쟁은 참 참혹하다는 것을 느꼈다. 누군가를 잃어 버렸거나 홀로 도착한 사람은 방황을 하거나 통곡을 하였고, 가족들이 아직 있는 사람은 살길을 찾기 위해 도착한 곳에서 먹고 살기 위해 뛰어다녔다. 나는 방황을 하는 축이었다. 성문 앞에서 기다려 보기도, 돌아다니며 사람 얼굴을 하나하나 뜯어보기도 하였다. 그러다 배가고파지면 근처 산에 들어가 풀을 뜯어 먹었다.

그러다가 둥이 엄마라 불리던 데무아를 만날 수 있었다. 데무아는 나를 보자마자 씻지 못해 냄새나는 나를 안고 기뻐했다. 후에 물으니 고향 동기를 만나 냄새 같은 것도 모르고 그렇게 기쁠 수가 없다했다. 나도 오랜만에 맡는 사람 살 냄새가 그렇게 좋을 수 없었지만, 꼴이 꼴인지라 더 기뻐하지 못하고 멀찍이 떨어졌다.

떠나기 전 까지만 해도 만삭에 가까웠던 데무아의 몸은 비워져 있었다. 날짜를 세어보며 이해했지만, 어딘지 모르게 애를 배기 전과는 달라진 분위기에 애는 어디 있냐고 물을 수가 없었다. 이것은 아주 이상한 감정 이었는데 나이로 봐도, 아이를 가졌던 경력으로 봐도 내가 데무아에게 거를 것은 없었다. 더구나 고향에서 함께 하던 날들이 있었다. 내가 돌려 도시 생활이 좋긴 좋나 보다 더 예뻐졌다, 고 말하니 데무아는 그저 기뻐하며 고맙다고 할 뿐 연유에 대해선 말하지 않았다. 세세하게 따지지 못했던 건, 그 때의 나는 몸이 피곤해 데무아가 자신의 집으로 따라오라 했을 때 아무것도 생각 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그 밤 데무아는 바로 준비 할 수 있는 게 없다며 데운 우유와 구운 과자를 주었다. 하지만 그날 먹었던 우유와 과자는 잊지못할 최고의 식사였다.

이른 아침에 나는 정말로 오랜만에 사람다운 얼굴을 하고 있었다. 데무아가 갈 데가 있다며 깨웠기 때문이었다. 나는 이만하면 충분하다 생각 했으나 데무아는 맘에 안 드는지 나에게 손거울을 쥐어주었다. 그래도 내 얼굴에 손이 가지는 않았다. 켜주고 간 등에 데무아의 젊은 얼굴이 아른거려 거울 속에서 나를 보기가 힘들었다. 제대로 먹지 못해 수척해진 얼굴, 입술마저 들어차 버린 주름, 전나무처럼 까슬해진 머리카락들이 보였다. 충분하다 생각했던 얼굴은 어느 곳 하나 데무아보다 나은 곳이 없었다. 아무리 꾸민다고 해도 이보다 더 나아질 리 없다는 걸 알고 있었지만 자꾸 데무아와 나를 비교하게 되는 것을 멈출 수가 없었다.

어머, 언니 어서 준비하지 않고 뭐하고 있어요.”

데무아가 나를 부르는 호칭은 어제부터 언니가 되어 있었다. 마치 결혼하기 전으로 돌아 간 것만 같았다. 남편 이름에 맞추어진 이름이 아닌 순 나만을 가리키는 호칭은 어린 그때로 돌아가는 것 같아 반가웠다. 데무아의 질책도 기분 나쁘게 들리지 않았다. 데무아의 도움으로 준비를 마치고 데무아가 데리고 간 곳은 희고 커다란 건물이었다. 처음 본, 그것도 궁전이라고는 본적도 없는 사람이 보았다면 분명 이곳을 궁전이라 생각할 정도로 건물은 컸다. 멀리, 성벽 너머로 화려한 돌 장식들이 수도를 내려다보는 궁전이나 삼각 모양으로 거대하게 솟은 웅장한 탑과는 다른 깔끔하고 정제된 모습이었다. 주눅이 들어 또 약간은 겁을 먹어 머뭇거리는 나를, 데무아는 아무런 설명 없이 건물 한가운데 있는 방에 집어넣었다.

방에는 관리라 생각되는 두 명이 나란히 앉아 있었다. 데무아는 나를 이곳에 놓아두고 방에 들어오지는 않았다. 나는 당황하여 데무아에겐 순간 원망하는 마음이 들었지만, 관리 둘이 나를 의자에 앉히고 끊임없이 질문을 해대는 통에 그런 마음은 순식간에 들어가 버렸다.

본 거주지는 어느 곳입니까. 나이는 어떻게 됩니까. 이것을 뭐라 읽는지 아십니까. 이것의 뜻은 무엇입니까. …….”

둘은 한나절이 지나도록 질문만 해대었다. 급하게 묻는 그들의 분위기에 나도 덩달아 조급해져 생각할 겨를도 없이 알면 아는 것을, 모르면 모른다 대답만 했다.

잠깐 쉬었다 합시다.”

나는 하마터면 쉬다의 뜻을 말할 뻔 했다. 쉰다는 말에 기뻤으나 또 암담했다. 문을 나서기 전에 다른 한 명이 끼니를 데울 수 있는 곳을 알려 주었다. 밖으로 나와 데무아를 찾았지만 데무아는 보이지 않아 하는 수 없이 홀로 그곳에 갔다. 밥 먹는 곳조차 하얗게 칠해진 벽들에 둘러싸여 있었다. 더럽히면 불경죄로 잡혀 갈 것만 같아 입맛이 떨어졌다. 간단하게 허기만 지우고 다시 그곳으로 돌아가니 관리들은 언제 쉬었는지 먼저와 기다리고 있었다. 밥은 먹었는지 내가 묻기도 전에 그이들이 다시 질문을 던져왔다. 그렇게 또 한나절이 지났다.

지금 거처하는 곳은 어느 곳입니까.”

데무아를 관리들에게 뭐라 해야 할지 몰랐다. 내가 데무아나 둥이 엄마라고 부르면 이 사람들이 알아듣지 못할 것 같았다. 그녀가 수도에서 어떤 이름을 쓰는지 알지 못했다. 또 내가 데무아 집에 계속 머물러도 된다는 보장은 없었다. 전쟁의 소식이 점점 강도를 더 해갈 때, 제일먼저 떠난 것이 데무아 가족이었다. 다른 사람들은 떠난 데무아에게 돌부리에 걸려 넘어지라며 비난을 서슴지 않았지만, 나는 그녀를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았다. 만약 소문이 사실이기라도 한다면 사태가 닥쳤을 때, 갈수록 불러가는 배로 도망치기는 많이 늦은 때 일 것이었다. 더 힘들어지기 전에 떠나는 것이 현명하다 생각했다. 소문이 어떻게든 되겠지 했던 희망만 생각하는 마음으로, 데무아 부부는 젊으니까 어떻게든 되리라 막연하게 생각했다. 데무아가 그 때 어떤 심정으로 마을을 떠났는지 나는 알지 못했다. 데무아는 나에게 반갑다고 말은 했지만, 데무아가 마을을 버렸던 것처럼 나는 그저 한 때 이웃 부인이었을 뿐이었다. 그런데 여기서 데무아의 집에 산다고 태연히 말하며 데무아의 호의를 당연하게 여길 수는 없었다.

그 질문이 마지막이었다. 어쩌면 내가 대답하지 못해서 마지막이었는지도 모른다. 사위는 이미 어둑해져 있었다. 허기가 져 다시 끼니를 때울 수는 없을까 점심을 먹었던 장소를 찾아가 봤지만 그곳은 사람하나 없이 밖보다 더 어두웠다. 나는 기다리지 못하고 건물 밖으로 나왔다.

거리엔 아직 불 켜진 집들이 많았다. 건물들이 청회색 빛만 아니었더라면 내가 들어왔다 나온 하루 사이에 룹이 이 도시를 정복했다고 착각할 정도로 붉은 빛들이 넘쳐났다. 나라 어디에서는 이 모습이 싫은 사람들이 모여 산다고 들었다. 또 그이들은 파란 불을 만드는데 온 신경을 다 쓴다고도 들었다. 사람들이 이렇게 밝게 움직이는데 조금 룹으로 보인다고 해서 어떤가, 라는 생각이 들었다. 한번 씻고 나니 눈 속도 씻긴 것처럼 다른 것들이 보였다. 하지만 배가 고파졌을 때에는 부질없는 생각이었다. 간단히 끼니를 때울 수 있는 식당을 찾다가 문득 내가 가진 돈이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아침에 데무아가 서두르는 바람에 아무것도 챙겨 나오지 못했었다.

서둘러 데무아 집으로 돌아왔으나 문은 열리지 않았다. 덜컥 가슴이 내려앉았다. 마음이 급해져 문을 두드리고 소리쳐 봤으나 끝내 아무런 인기척도 없었다. 집을 잘못 찾은 것일까 싶어, 그리고 데무아를 찾기 위해 아침의 길을 되짚어 올라갔다. 흰 건물까지 거슬러 올라왔지만 어색한 곳도, 데무아도 없었다. 그저 흰 건물만 달빛아래 허옇게 떠있었다. 들어가면 세상을 다 벗어나 달에 올라 갈 수 있을 듯 초연해 보였다. 하지만 이제는 막혀버린 문은 나를 떠밀어내는 것 같았다. 허망하여 자리에 주저앉았다. 울고 싶었으나 눈물이 나오지는 않았다. 울 일은 나중이었다. 남편과 아이를 잃어버린 채 홀로 밥을 먹고 따뜻하게 잤던 벌 같았다. 데무아 집안에 있을 패물들을 헤아려 보려 했지만 생각나지 않았다. 얼마나 있었는지 그것으로 내가 얼마나 더 이곳에 머물 수 있었을지. 막연하게 크다고 생각되었다. 빼앗겨 버린 것 보다 이대로 남편과 아이의 얼굴은 보지도 못하고 죽는 것이 무서웠다.

부실한 식사로 몇날 며칠을 보냈던 배가 그저 한 끼 굶었다고 요란하게 짖어대고 있었다. 할 수만 있다면 배를 뜯어 삼켜 버리고 싶었지만 그럴 배짱도 힘도 없었다. 식당들도 하나씩 불이 꺼져가고 있었다. 나는 데무아의 집으로 터덜터덜 걸었다. 이대로 다시 피난민 틈바구니로 들어가기 전에 데무아에게 약간의 선처를 부탁하기 위해서였다. 사람은 넘쳐나고 일을 구하기는 힘들었다. 조금이라도 더 버티기 위해서는 데무아에게 비는 수밖에 없었다. 안된다면 입은 옷이라도 팔 생각이었다. 피난민 중에서도 젊은 애들은 넘쳐났다. 누구도 늙어버린 아줌마에게 관심은 없을 것이다. 자신의 늙음이, 추함이 다행이어서 서러웠다.

데무아 집으로 되돌아갔을 땐 데무아가 돌아 왔는지 다행히 불이 켜져 있었다. 나는 문을 부술 기세를 담았지만 실상은 힘없이 문을 두드렸다. 쏟아질 물과 소금에 대비해 자연히 몸이 움츠러들었다.

언니!”

이 도시에서 처음 만났던 어제처럼 데무아는 나를 꽉 끌어안았다. 작아진 나는 데무아의 품에 쏙 들어갔다. 나는 어쩔 줄 몰라 이번에는 데무아를 그대로 두었다.

어디 갔었던 거야. 한참 찾았잖아..”

데무아의 말은 흐려지면서 남은 말들은 목 뒤로 넘어가 버렸다. 걸으면서 했던 모든 걱정이 모두 헛짓거리였다. 길이 엇갈려나 보다, 라고 나도 같이 안으며 조용히 말했다. 데무아의 품에서 나는 희미한 땀 냄새를 느끼며 데무아의 말에 거짓이 없음을 알았다. 그래도 나는 안도해도 된다.’라고 세 번은 뇌까리고 나서야 안도할 수 있었다.

데무아는 내가 끝날 시간에 맞추어 흰 건물로 돌아갔다고 한다. 내가 허기에 식당으로 가지만 않았더라면 일어나지 않았을 일이었다. 나는 창피하여 데무아에게 건물을 돌아보고 있었다, 둘러대었다.

거기서 뭣 좀 보았어?”

그냥 조용하기만 하던데?”

데무아는 나를 책망하지 않고 눈에 빛을 내며 물었다. 내가 본 것이라고는 식당가는 길밖에 없었으므로 별다른 수식 없이 전체적인 감상만을 말했다. 데무아는 잠깐 실망하는 빛을 보였으나 금방 털어내고 흰 건물과 나를 데려간 이유에 대해 설명해 주었다. 내가 그런 마음을 먹으면 안 되었지만 데무아의 말은, 전쟁이 길어지면서 생겨난 이상한 종교들이 하는 말과 비슷한 면이 있어서 다소 믿기지 않는 부분이 있었다.

그곳은 나라에서 만든 여성 교육기관이며, 그곳에 들어가기만 한다면 한 푼 들이지 않고 생활에서 배움까지 해결할 수 있다고했다. 더구나 만약 내가 좋은 성적을 거두기만 한다면 수도에 정착할 수 있게끔 지원까지 해준다고 했다. 지금 데무아가 살고 있는 집도 다 나라에서 지원해 준 것이라며 자랑스럽게 덧 붙였다. 나는 대가 없이 그런 것들을 얻을 수 있다는 것이 꺼림칙하여 데무아에게 정말로 아무것도 들지 않느냐고 재차 물었다. 데무아는 나에게 살짝 미소 지으며 말했다.

대가가 없긴 왜 없어. 거기 들어가기가 얼마나 힘든데.”

하루 동안 받았던 질문 공세가 시험이라고 했다. 뒤섞여 있던 질문들 속에서 그 사람을 평가하는 질문이 끼어 있다고 했다. 그렇다고 시험 자체가 어려운 것이 아니라 한 번 시험 보는 것이 어려워 들어가기가 힘든 것이라고 걱정하지 말라며 미소 지었다. 한 명 시험 보는데 꼬박 하루가 걸리니 그럴 만 했다. 시험 볼 수 있는 기회를 얻기 위한 것이 대가라면 대가인 셈이었다.

거기가면 먹여주고, 재워주고, 입혀주고 얼마나 좋아. 언니를 위해서 내가 힘좀 썼지.”

데무아가 그렇게 말하는 데도 불안한 마음은 가시지 않았다. 나는 불안한 마음을 가시게 할 최후의 방법으로 그 곳에서의 생활이 어떠한 지 물었다.

거기? 공부하고, 먹고, 자고 그게 끝이야. 다른 사람은 모르겠는데 나는 그랬어. 다른 할 일도 없고.”

할 게 없다니?”

필요한 게 거기 다 있는데 뭘 더 바라겠어. 하라는 대로 열심히 공부하면 되지. 괜히 뭉쳐 봤자 공부도 안 되고, 돌아다니지도 못하는데 떠들기밖에 더하겠어? 그러다간 낙오되기 십상이야.”

밝은 얘기를 기대했던 나의 마음은 더 가라앉아 버렸다. 내 표정이 굳자 데무아의 표정도 함께 굳어버렸다. 모시의 표정은 아이를 꾸짖는 어른 같았다. 그 얼굴에 놀랐지만 내 불안감의 이유를 확신하는 것이 중요했다.

돌아다니지 못한다니. 그러면.”

언니, 겨우 그런 것 대문에 이 좋은 것을 날려먹을 셈이야? 내가 언니 시험 보게 하려고 얼마나 힘을 썼는지 알어? 정말 서운하다.”

데무아는 내말을 끊고 한심하다는 표정으로 나를 무섭게 쏘아 붙였다. 순간 울컥 치밀어 올랐지만 데무아의 고생을 내가 알지 못했기에 침묵했다. 하지만 이대로 가만히 있기에는 데무아의 친절을 무시하는 것만 같아 나는 돌아선 데무아를 향해 급하게 변명했다. 변명을 하면서도 마음이 편치 않았다.

난 가족들을 찾아야해. 너도 알잖아 내 남편하고 아이들. 수도로 오기로 약속했단 말이야.”

데무아가 다시 나를 보기에 나는 화를 풀어줄 요량으로 웃어보려 했지만, 데무아의 얼굴을 보고서 웃음이 지어지지 않았다. 데무아의 얼굴은 어딘가 섬뜩한 구석이 있었다. 마치 내가 그녀의 팔을 뜯어내기라도 했다는 것처럼 나를 보았다. 섬뜩하다 했지만 나는 보다 억울하고 슬펐다. 데무아는 얼굴을 일그릴 듯 실룩거리더니 어떤 표정도 짓지 않고, 그대로 자리에 일어나 방으로 돌아가 버렸다. 나도 더 이상 그 자리에 남아 있을 수는 없어 방으로 돌아갔다. 수도에 도착하고 유일한 편이었던 데무아와 싸우고 나니 마음 한 구석이 빠진 듯 허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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