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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개의 나라8
게시물ID : readers_3748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PF*any
추천 : 0
조회수 : 162회
댓글수 : 0개
등록시간 : 2012/09/28 10:56:12

성문 앞에서 운은 발을 멈추고, 말위에서 자수를 놓는 프룬을 보았다. 그녀의 모습은 더없이 편안해 보여 일견 이 세상 사람이 아닌 것 같았다. 만약 그가 더 어렸었더라면, 인간의 전쟁 때문에 사라졌다고 하는 요정을 아직 믿고 있었다면 그녀를 바깥나들이를 하는 요정의 여왕으로 생각했을 것이다.

안 더우십니까?”

괜찮아요.”

룸과는 달라요. 그렇게 두껍게 입고 계시면 열사병 걸리기 쉽습니다. 수도에 도착하면 옷을 준비하겠습니다.”

룹의 옷이 필요할 것 같지는 않네요.”

그는 입술을 깨물었다. 그는 절망을 희망으로 바꿀 수 있다고 생각했었다. 그녀가 룹의 편이 되어 준다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그가 그녀를 처음 본 것은 전쟁터에서였다. 괴물들을 지휘하는 작전부의 대장으로 전쟁터에 섰다. 괴물들을 지휘하기 위해 성 마루에 오르기도 전에 괴물들은 비명도 내지 못하고 사라져 버렸다. 멀리 빗속에 서있는 그녀를 보면서 그는 자신이 꿈을 꾸는 것은 아닌지 착각했었다. 그가 현실임을 확인 했을 때 남은 것이라곤 그와 그가 타고 있었던 말과 함께 있었던 태 말고는 없었다. 그가 다루는 괴물보다 더한 괴물을 피해 그는 단신으로 태와 함께 도망쳤다.

그녀를 숲길에서 보았을 때 그는 죽을 각오였다. 그녀를 보고나서 허무한 패배를 안고 돌아가는 것보다, 누구도 알지 못하겠지만 장렬한 최후를 맞는 것이 대장으로서 마지막 모습에 어울린다고 생각했다. 그는 마지막 일격을 가하기 위해서 며칠 동안 그녀를 따라다니며 기회를 노리고 있었다. 만약 그가 그녀의 손에 들린 자수를 보지 못했더라면, 이에 대해 조금이라도 생각하지 않고 다짜고짜 그녀에게 덤벼들었다면 그때 그는 죽었을지도 몰랐다. 그녀를 회유하기 위해 함께 여행하는 동안 그는 잠시 그것을 잊고 있었다. 같이 다니는 동안, 그가 본 그녀는 그저 여자였을 뿐 어떤 괴물도 아니었다.

여태까지 당신에 대해 묻지 않았네요. 당신은 높은 사람인가요?”

적당히 높은 위치에 있습니다.”

그러면 룹의 많은 것을 알고 있겠네요?”

알고 있다 해도 가르쳐 줄 수 없는 것도 있습니다.”

평소와 달리 딱딱하게 굳은 그의 말투에 그녀는 빙긋 웃었다. 그녀의 웃음은 여행 내내 그가 말을 많이 하게 만든 원인이었다. 그가 설명을 할 때마다 그녀는 웃으며 그의 말을 들어주었다.

당신의 왕은 인형인가요?”

왕을 모욕하는 것은 좋지 않습니다.”

더 거친 표현은 차마 그녀에게 하지 못했다. 그녀는 수도를 둘러싼 벽 너머를 둘러보았다.

여기선 탑이 안 보이는데 탑은 어디 있죠?”

탑이요? 탑은 없습니다. 저희는 높은 것을 세우지 않습니다. 왕이 계신 곳보다 높은 것을 만드는 것은 불경입니다.”

룸과는 다르네요.”

그는 그녀가 무엇을 원하는지 짐작할 수 없었다. 그녀는 원한 다면 얼마든지 확인 할 수 있었다. 그가 이제껏 굳건하다고 믿었던 성벽쯤이야, 그녀에겐 어린아이 장난감 치우는 것 보다 쉬울 것이다.

그러면 가장 뜨거운 곳이 어디죠?”

뜨거운 곳이라면 남쪽이. , 남쪽 호수에 한 가운데에 흰 기둥이 올라오는 곳이 있습니다. 보통 안개에 쌓여있어 잘 보이지 않지만 맑은 날에는 볼 수 있습니다.”

그래요? 고마워요.”

그녀는 몇 마디 질문 말고는 아무것도 하지 않았지만, 그는 이제 마음을 놓고 완연하게 평소와 같이 설명해 주고 있었다. 그녀의 목적이 무엇이었든, 그녀가 룹에 해악을 끼치려 하는 것은 아님을 알았다. 다만 그녀를 보내주기 전에 한 가지 해야 할 일이 있었다.

이대로는 제가 매국노가 된 것 같으니, 한 번만 붙잡혀 주시겠습니까?”

그런데 혼자보단 사람들을 부르는 것이 낫지 않겠어요?”

그 덕분에 여행다운 여행을 할 수 있었다고 생각한 그녀는 그에게 호의를 베풀기로 했다. 그는 고개를 끄덕이더니 태를 보았다. 태는 주고받던 말을 알아들었는지, 아니면 둘 사이에 어떤 특별한 교류가 오갔을 것이다. 그가 그녀대신 말에 오르고 성을 향해 떠나자 태는 그녀를 향해 돌아서 으르렁 거렸다. 성을 지키는 수문장 같은 모습이었다. 그가 들어가자 문이 닫히고 종이 울렸다. 그녀가 떠나기까지 울리던 종은 그의 작별인사처럼 들렸다. 그녀는 종소리를 들으며 작별인사를 하지 못한 것이 아쉬워졌다.

 

구름에 하늘이 가려 졌으나 이곳에 그늘은 없었다. 구름아래에는 구름과 똑같이 진한 안개가 들어차있었다. 구름과 안개는 빠르게 소용돌이쳐 앞뒤를 구분하기 힘들었다. 안개 속에는 제 무개를 견디지 못한 알이 굵은 물방울들이 가랑비처럼 조용하게 내렸다. 안개 속에서 물방울들이 스칠 때마다 프룬의 옷이 타들어갈 정도로 뜨거웠다. 운은 호수라 했지만 이곳은 바다처럼 넓었다. 그녀는 더듬어 가며 한발 한발 걸어 나갔다.

누구야!” 일순간 안개와 구름이 걷히며 호수 가운데에 하얀 기둥이 들어났다. 안개와 구름은 곧 다시 채워졌지만 그녀는 분명하게 보았다. 안개 속에서 길을 헤매지 않고 기둥을 향해 똑바로 걸어갔다. 기둥은 진하게 솟구치는 구름이었다. 그녀는 솟구치는 것을 가볍게 누르고 그 속으로 들어갔다. 안개 속을 걸어오는 동안 그녀의 옷가지는 모두 타 없어져 버렸다.

널 만나고 싶어해.”

아이는 탑의 아이처럼 회색빛이었다. 하지만 주위가 너무 밝아 검게만 보였다. 아이는 쌍둥이처럼 서로를 빼닮았다. 아이는 그녀가 들어오는 순간 모든 걸 다 이해했단 표정을 지었다.

숨고 거부한 건 걔야. 내가 만날 이유는 없어.”

아이가 말 할 대마다 안개와 구름이 사라졌다가 다시 채워졌다. 그녀의 머리카락도 쉴 새 없이 나부꼈다. 하지만 그녀의 얼굴만은 평온한 그대로였다.

정말?”

정말! 그러니까, 그만 가!”

만나러 가자. 외롭지 않니?”

아니.”

거짓말.”

프룬은 짓궂게 웃었다.

네가 어떻게 아는데!”

엄마니까.”

아니, 넌 몰라. 그건 부모들이 흔히 하는 착각이야.”

프룬은 아이를 껴안았다. 아이는 떨어지려 발버둥 쳤지만 프룬은 꿈쩍도 하지 않았다.

그래. 내 착각일지도 몰라. 그래도 그 애가 한 말에는 거짓이 없겠지? 널 보고 싶어 해.”

아이는 힘을 빼고 프룬의 몸에 기대어 왔다.

그래, 걔는 거짓말 못하니까. 하지만 난 못가.”

?”

난 가는 길마다 다 먹어버릴 거야. 그래서 여기로 도망 쳤는걸. 여기는 먹어도, 먹어도 그대로야. 난 언제나 배고파. 그러고 싶지 않은 데, 다 태워서 먹어 버려. 우리는 움직이면 안 돼.”

아이는 울먹였다. 아이의 눈꼬리에서 아지랑이가 피어올랐다. 프룬은 아이의 머리를 쓸어 내렸다. 프룬의 손이 가는 곳 그대로 아이에게, 금색 자수가 놓인 두꺼운 검은 옷이 입혀졌다.

그래서 내가 온 거야. 누구나 올 수 있었으면 안 왔어. 내가 너를 식혀줄게, 만나러 가자.”

아이는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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