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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긴글 주의] 가난했던 33살 딩크 부부 이야기.
게시물ID : wedlock_3753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챈들
추천 : 15
조회수 : 2588회
댓글수 : 25개
등록시간 : 2016/08/07 09:58: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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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창작글
안녕하세요?
요즘 딩크관련 글이 많아 저도 분위기 타서 몇 자 끄적여봅니다.

저랑 제 아내는 고등학교 때 친구로 알았다가 결혼한 부부입니다.
중간에 한 번 헤어진 후 몇 년 동안 다시 친구로 지내다가 29살 나이가 찬 후 다시 만나 결혼한 케이스죠^^;

서로 대충 만날 만큼 이성을 만났고, 20대를 일 만하며 세상(?) 돌아가는 것을 안 후에 결혼을 전제로 다시 시작하니
사귀는 도중에도 현실적인 부분에 대한 이야기를 꽤 많이 했었습니다.

전 수저론을 인정하지만, 그 걸 말하는 건 별로 좋아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이야기를 풀어나가기 위해서 저희 수저 색깔을 이야기 해야겠지요?
저흰 누가 뭐래도 흙수저 였습니다.

당시 전 레스토랑 매니저를 하다 그만두고 11시간 정도 일하면 일 당 8만원을 받는 현장직 샷시 공사 기능공이었고,
와이프도 150만 원 내외의 일반 사무원이었으니깐요.

모아둔 돈도 저랑 와이프 20대의 전부를 쏟아부어 모은 돈 6천 만원...
많다고 하시는 분도 계시겠지만, 아시는 분은 아시다 싶이 이 돈으론 광역시 내에선 거실이 있는 평범한 집 전세는 꿈도 꿀 수 없었습니다.

저나 와이프 친가에서 도움을 받을 형편도 아니었고, 그러고 싶지도 않았습니다.
그 즈음 저희 부부는 카페에 앉아 종이와 펜을 꺼내들고 무척 많은 대화를 했었습니다.
(그리고 그 대화가 앞으로 우리 부부의 결혼 생활 아이덴티티가 된 것 같습니다.)

앞으로 어떻게 될지는 모르지만, 바뀌기 전까진 바뀌지 않는 기준을 정리했습니다.

1. 양가 부모님께 손을 벌리지 말자.

저희가 생각하기엔 처가, 시댁의 갈등은 당연한 것 같았습니다.
부모가 돈이든 뭐든 줬으니, 당연히 지불한 만큼의 대가를 요구하는 거라 생각했거든요.
결혼 당시 신혼집 비용을 보태줬으니, 그 만큼의 영향력을 발휘하고 싶어하는 것이 부모가 아니라 사람의 기본적 요구라 생각하니..
그 걸 받지 않고 독립적으로 결혼하여 그 분들의 지분을 없애는 것이 당당한 결혼 생활의 시작이라 생각했습니다.

그리고 아직까진 그 선택이 맞는 것 같습니다.
그럴 필요 없으신데도 부모님은 아직도 그 때 보태주지 못한 것에 대한 미안함을 가지시며, 저희 집에 오시는 것도 조심스러워 하십니다.
  
2. 통상적인 것들은 하되 하지 말자.

특별한 결혼식은 하지 않았습니다.
그냥 통상적으로 적당한 웨딩홀을 빌려 적당한 금액의 식사를 대접한 후 적당히 대접했습니다.
마음 같아선 평생의 한 번인데 다양한 이벤트와 좋은 신혼여행지로 떠나고 싶었지만...
그냥 부모님이 내신 축의금을 돌려받는 자리니 그 정도도로만 했습니다.
신혼 여행도 마티즈 한 대로 쿠팡에서 예매한 호텔을 기점으로 9박 10일 전국 일주 한 번 하고 말았고요.

다만 집과 혼수는 하지 않았습니다.
결혼 하기 전 서로 남자는 집, 여자는 혼수라는 통상적인 것을 하지 말고 형편대로 살며 조금씩 늘리자고 이야기 했습니다.
사실 6천 만원으로 많다고 해도 그 돈으로 집, 세탁기, 냉장고, 장농, 티비 등등등..
모든 것을 구매하기엔 택도 없이 부족했습니다.
여기는 원 룸 하나 전세가 3천 만원하는 광역시입니다.ㅠㅠ

그래서 혼수 하지 않기로 했습니다.
발품 팔고 팔아서 투룸이라 하기엔 방 하나가 너무 작은 투룸을 발견했습니다.
건물은 낡았지만 다행히 주차도 되고, 관리인 아저씨가 상주하시면서 꾸준히 관리가 되는 방이었습니다.
집주인이 원래는 전세는 받고 싶지 않아 월세로 1년 반 째 내놨지만, 월세로 들어가기엔 낡고 주위에 더 좋은 방이 많아 계속 공가로 되어있어..
공인중개사분께서 주인과 계속 딜을 하여 5천 만원에 겨우 세를 받았습니다.
직장인을 상대로 하는 원룸이라 도배 장판은 해주지 않아 조금 더러웠지만, 냉장고랑 세탁기랑 에어컨이랑 가스레인지까지 모두 있었습니다.
고맙게도 티비나 침대, 화장대, 전자레인지 등은 친구랑 처제가 선물하여 구입할 필요가 없었습니다.

전세 5천 만원에 관리비 10만 원.
다른 번듯한 신혼부부들의 신혼집에 비하면 정말 가엾을 지경의 집이지만..
그래도 실질적으론 월 10만 원에 이 모든 것을 장만한 결혼생활을 시작할 수 있었습니다.
 
3. 빚은 지지 말자.

그렇게 아둥바둥 시작한 이유는 사실 빚지고 싶지 않아서 였습니다.
두 사람 합쳐 월 수입이 300만 원이 될까 말까였습니다.
오래된 아파트라도 대출을 받아 다달이 원리금으로 7~80만원 + 관리비까지 계산기를 두드려보니 도저히 답이 나오지 않았습니다.
보험료, 공과금, 식비 등등을 추가해보니 더더욱 답이 나오지 않았습니다.
왜 20대의 난 더 열심히 돈을 모으지 못했을까..
술 한 번 덜 마셨으면.. 지금은 어디에 있는지도 기억나지 않은 그 물건을 사지 않았다면..
그 걸 100번 만 덜 했으면.. 아주 조금 여유가 더 생겼을텐데..
그럼 이 사람한테 아주 조금이라도 돈 생각 적게 하게 할 수 있었을텐데..

당시 속이 엄청 상했었습니다.
엎친데 덮친 격으로 그래도 꾸준히 일 당으로 다니던 회사를 그만두고 다른 곳으로 이직했는데..
그 쪽 사장이랑 뭔가가 맞지 않아 결국 거기도 그만 둔 후, 진짜 말그대로 부르기만 기다리는 일당직이 되어버려서 더 그랬던 것 같습니다.
더욱 돈의 가치가 무거워졌고, 그럴 수록 더욱 빚은 지고 싶지 않았습니다.
그 때 한 달 벌이는 당시 110~20만 원 정도 된 것 같네요. 한 달에 12일 정도 밖에 일을 못했으니..

그래도 버틸 수 있었습니다. 고정 비용이 적었거든요.
적게 벌어도 두 사람이 맞벌이 하고, 대출에 대한 제반 비용이 없으니 생활은 가능했습니다.
원래부터 가변적인 제 수익으로 생활비 하기로, 와이프 수입은 100% 저금하기로 짜놨기에..
적게 벌 땐 김치랑 계란으로만 버틸 때도 있었지만 항상 월 150만 원은 꾸준히 통장에 저금이 되었습니다.
(그리고 3년이 지난 후 통장에만 5천 만원이 넘게 모였습니다.)

4. 아이는 가지지 말자.
 
처음에는 계획했던 결혼 생활을 그대로 풀어나가는 것이 그렇게 힘든 줄 몰랐습니다.
그래도 알고는 있었죠. 삶은 내가 계획한데로 그리 쉽게 풀리지 않는다는 것을..
하지만 결혼한 후의 삶은 그 것보다 훨씬 복합적이었습니다.
경조사, 명절은 왜 이렇게 자주 오는지..
그 때마다 돈은 왜 이렇게 나가는지..
그리고 그 돈은 왜 이렇게 아까운지..
타이트하게 하긴 하지만 그 타이트함엔 나름의 여유를 가지고 예산을 짰지만, 항상 그 이상의 지출은 나가고..
여기에 정말 아이까지 하나 생겨버리면....
 
저희 부부는 원래부터 아이를 좋아하지 않아 2세 계획은 없었지만,
생활하니 더욱더 그런 생활은 불가능하다는 확신이 아주 천천히 스며들 듯 들었습니다.
(그리고 세월호에 대처한 국가의 모습을 보고 더욱 더...)
 
주위에선 나이 들어서 외로우면 어떡하냐? 늙으면 보살펴줄 사람 없어서 어떡하냐? 그래도 하나는 가져야 하지 않나 등..
많은 말씀을 하시는 것이 사실입니다ㅎㅎ
그리고 결혼 2년 까지는 그 말이 듣기 싫었고, 간혹 저희가 딩크가 된 이유를 조목조목 설명하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요즘은 '네 가져야죠! 노력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잘 안되네요. 계속 해봐야죠.'라고 대충 응답하고 있습니다.
 
상대가 듣고 싶어하고 싶어하는 말을 해주는 거짓말을 해주면 듣는 사람과 말하는 우리 모두가 행복하니깐요.^^
어차피 자녀는 이 우주의 단 두 사람만의 문제며, 권한이며, 권리입니다.
누구의 말을 들을 필요도, 그래서 떠밀려 낳을 필요도 없다 생각하기에..
 
 
마치며..
 
지금은 아주 행복합니다.
형편도 많이 피고, 그 작은 투룸에서 빌라고 올해 3월에 이사도 갔습니다.
여기도 전세이지만 꽤 큰 거실도 있고, 도배 장판도 추가 비용을 내 취향에 맞게 해서 이제 제법 신혼집 같습니다.
우리가 사고 싶어하던 양문 냉장고, 비싼 매트리스, 에어써큘레이터 등등 그 간 못했던 것들로 채워놨습니다.
숟가락, 젓가락도 새로 샀고, 그 수저를 담을 그릇 건조대도 새로 샀습니다.
세탁기도 새로 샀고, 세탁물을 걸 천장 건조대도 2개나 달아줬습니다.
좀 여유 있는 남자랑 결혼했다면 이미 3년 전에 해야할 신혼 살림 장만을 이제야 하는게 미안하고, 고마웠습니다.
 
중고지만 흰색 포터도 하나사고, 월세 30만 원 점포 하나 빌려 이젠 제가 샷시나 유리를 시공하고 있습니다.
아직은 큰 수익이 나지 않지만, 그래도 전보단 수입은 늘었습니다.
작년부터 일 년에 몇 번 여행도 가고 있습니다.
 
이렇게 차근차근 제 결혼생활을 만들고 있습니다.
서로를 닮은 아이랑 늙어가는 것은 무척이나 아름다운 인생입니다.
그리고 서로를 닮아가며 서로만 보며 같이 손잡고 여유롭게 늙어가는 것도 무척이나 아름다운 인생일 겁니다.
 
 
쓰다보니 너무 길게 썼네요^^;
이 긴 글 읽어주시는 분이 몇 분이나 계실 지 모르겠지만, 그래도 제.. 아니 저희 부부가 이렇게 살았다고 기록하는 셈 치고 끄적여 봤습니다.
 
저희가 딩크이니 그게좋다라고 오해하지 않으셨으면 좋겠습니다.
그냥 이런 선택을 한 부부가 이렇게 살고 있구나..정도로만 이해해주셨으면 좋겠어요.
 
모두 행복한 결혼 생활 하시길 바랍니다^^
다시 한 번 긴 글 읽어주셔서 감사드리며, 좋은 하루 되시길 바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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