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유를 이용하시는 기독교인들에게 저 역시 한 기독교인으로 드리는 말씀입니다. 어쩌면 교회도 사람들이 있는 곳이라 완벽할 수는 없을 것입니다. 한때 이 문제는 저에게 큰 고민이었습니다. "교회의 모습이 왜 이렇게 성경과 다를까?" 시간이 지나 그 답을 저 자신에게서 찾게 되었습니다. "나와 같이 부족한 사람들이 모인 곳이니 부족한게 당연하다" 하지만... 지금의 모습이 부족하다고 해서 우리가 지향해야 할 것을 포기해서는 안됩니다. 지금 우리는 너무 많이 안주해 버리고, 합리화하며 살고 있습니다. 우리 스스로가 어떻게 잘못되었는지 이제는 알지도 못한채... 아닌 눈 감아 버린채 지내고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 그 분이 보이신 교회가 되도록 이제는 우리의 들보를 먼저 빼내야 하지 않을까요~~ 교회의 회복을 바라며 두서 없이 몇마디 적어봅니다.
교회의 회복을 위해 1 - 자본주의에 빠진 기독교
한반도에 복음이 전파된 이후로, 기독교가 오늘날처럼 쓴 소리를 듣고 있는 적은 없다. 물론 어떤 비판․비난은 표면적으로 드러나는 실수나 잘못을 지적했다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상당수의 비판은 오늘날 기독교의 치부를 드러내고 있다는 대해 반문할 수 없다.
한국 교회가 이렇게 까지 오게 된 것은, 교회 스스로가 교회의 잘못을 못 본 척하고 지내온 지난날의 결과이다. 세상의 소금이 되어야 할 교회가 짠맛을 지키지 못하고, 또 짠 맛을 잃어가고 있다는 것을 스스로 무시하고 방치한 결과로, 세상의 눈으로 보기에도 부패한 곳이 되어버린 것이다.
필자는 한국 교회가 지금의 개탄한 만한 상황에 다다른 것의 원인중 하나를 자본주의의 교회 유입에서 찾으려 한다.
한국은 미국․일본과 함께 자본주의의 전형을 보여준다. 어떤 사상이나 구조도 완전할 수 없듯이, 자본주의도 그 장단점을 가지고 있다. 그리고 본인은 한국은 자본주의의 문제점이 가장 적나라하게 드러나는 사회라고 생각한다. 어떤 사람은 돈은 벌기 위해서 사행성 게임장을 열고, 또 다른 사행심에 빠져 재산을 탕진한다. 생필품을 파는 기업들은 기름이건 설탕이건 담합해서 막대한 이득을 취한다. 하지만 사람 몸에 해로운 중국산 찐쌀로 밥을 만들어 파는 것에 비하면 별것 아니다. 자신도 먹지 않는 것을 다른 사람들에게 파는 곳이다. 돈을 가진 자들은 더 많은 돈을 벌기 위해서 다른 사람의 노동력을 착취한다. 돈이 된다면 양심의 소리를 잠깐 무시하는 것은 그리 어려운 것이 아니다. 돈이 기준이 된 곳이기 때문에 모든 것이 가능하다. 돈만 있으면 그만이기에... 한국은 아주 극단적인 ‘물질만능주의’사회이다.
문제는 교회도 다르지 않다는 것이다. 대기업의 모습을 닮기 위해 애를 쓰는 곳이 교회가 되어 버렸다. 더 많은 사람들을 모으기 위해 다른 교회와 경쟁한다. 더 큰 건물을 짓기 위해서 애쓴다. “더 크게”, “더 많이”, “더 높이” 이런 것이 오늘날 교회가 외치는 일괄된 표어가 아니던가!
예수님께서 큰 건물을 짓는다고 즐거워하실까? 아니면 우리 교회에 더 많은 사람이 모인다고 기뻐하실까? 혹은 이번 주 헌금이 더 많기 때문에 기뻐하실까? 내가 아는 예수님은 그런 분이 아니다. 그 분이 들려주신 이야기에서 다섯 달란트 남긴 자와 두 달란트 남긴 자 모두를 똑같이 “착하고 충성된 종”이라고 칭찬하시는 분이셨다. 금그릇을 질그릇 보다 월등하게 여기는 것이 아니라 깨끗한 그릇을 찾으시는 분이시다. 과부한 두 렙돈을 귀히 여기시는 분이시다.
지금까지의 한국교회는 성장이 아닌 살찌우기를 해왔다. 성숙한 그리스도인이 되는 것이 목적이 아니라 더 큰 교회가 되는 것이 목적이었다. 우리의 목적이 잘못 되었음을 시인하고, 예수에게로 돌아가지 않는다면, 자정능력을 잃어버린 호수처럼 썩은 물이 되어 버릴 것이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교회는 그 안에 적응해서 기업의 모습을 추구해서는 안 된다. 오히려 자본주의가 드러내는 문제들을 견제하고 비판하는 역할을 해야 할 것이다. 대기업이나 가진 자들의 기독교가 되어서 그들의 손을 들어주는 것이 아니라, 소수의 약자들을 보살피고 그들의 목소리가 되어야 한다. 그러함에도 불구하고, 한 기업에서 기독교적 운영을 운운하면서 노동력이 착취되고 있는 상황이 있다는 것은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다. 교회는 해고된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편이 되어야 할 것이다. 기업이 사람들의 건강을 담보로 돈을 벌고 있다면 그것을 고발해야 할 것이다. 또 돈의 우상에 빠져 허우적거리는 사람들이 있다면, 더 우월한 가치가 있음을 상기 시켜 주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