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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주님 이야기.
게시물ID : military_37740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aeio
추천 : 64
조회수 : 8981회
댓글수 : 32개
등록시간 : 2014/01/27 11:24:48
 
군생활이 힘든 이유는 여러가지가 있다. 인간의 기본적인 욕구를 억제하며 생활해야 한다는 것도 그 이유 중 하나일 것이다.
민간인 시절처럼 먹고싶을때 먹을수 없고 자고 싶을때 잘수도 없다. 가끔 주니어의 안부가 궁금해질 때도 쉽사리 묻지 못한다.
특히나 나처럼 입대 전 정신줄을 놓고 매일같이 술이나 게임으로 밤을 지새우고 식사시간이나 취침시간이 불규칙한 금수와도 같은
생활패턴을 지니고 있던 사람들에겐 더더욱 적응하기 힘든 일일 것이다.
 
하지만 시간이 모든걸 해결해 주기 마련이다. 대개의 경우는 훈련소나 이등병 시절을 거치면서 자연스럽게 적응이 된다.
식욕이야 가끔 사제음식이 그립긴 하지만 삼시세끼 꼬박 챙겨 먹으니 크게 문제 될 것이 없었고 성욕같은 경우는 몸이 힘들다보니
자리에 눕자마자 곯아 떨어지기 일쑤여서 생각날 겨를이 없다. 문제는 수면욕이다. 식욕이나 성욕은 본인의 의지로 컨트롤이 가능했지만
수면욕만큼은 내 의지로 어떻게 할 수 있는 일이 아니었다. 나는 사회에 있을때부터 잠이 많은 편이었고 또 한번 잠이들면 누가 업어가도
모를 정도로 깊이 잠이 들었다. 잠버릇도 심한 편이라 자면서 이리저리 뒤척이는 편이었다. 때문에 입대 전 내가 가장 걱정하던 부분도
이런 부분이었고 실제로도 군생활 초반엔 이런 잠버릇 때문에 고생을 해야했다. 거기다 내가 간과한 부분이 있었다. 사회에 있을 때
나는 코를 잘 골지 않았다. 정말 피곤하면 가끔 고는정도였기에 코골이에 대한 문제는 없을거라 생각했다. 전입을 가면 고참들이
항상 묻는 질문중 하나가 잘때 코를 고냐는 질문인데 나는 피곤할 때만 곤다고 대답했다.
하지만 이등병은 항상 피곤하다. 고로 나는 항상 코를 골았다.
 
군대의 위대한 점이 바로 여기에 있다. 살면서 내가 절대로 고치지 못할거라고 생각했던 버릇이 아주 빠른시간 내에 깔끔히 고쳐진다는
점이었다. 나 역시 이런 내 잠버릇이 과연 고쳐질까 의문이었지만 고참들의 사려깊은 배려로 인해 안대 대신 방독면을 몇번 쓰고나니
깔끔하게 고쳐졌다. 더불어 5시 55분이면 자동으로 눈이 떠지는 신비한 경험을 할 수 있었다. 하지만 모두가 이런건 아니었다.
군대에선 언제 자느냐 보다는 어떻게 자느냐가 더 중요하다. 별의별 사람들이 다 모이다보니 시도때도 없이 꾸벅꾸벅 조는사람, 잠꼬대를 심하게
하는 사람, 코고는 사람, 이빨가는 사람등 온갖 기상천외한 잠버릇을 가진 사람들이 존재했다. 그런 잠버릇들이 군생활에 크게 지장을 주지 않는
사람도 있는 반면에 그렇지 않은 사람들도 있었다. 그리고 그는 그렇지 않은 편에 속했다.
 
내가 병장 진급을 앞두고 있었을 때 전입을 온 후임이 있었다. 우리 소대가 아니라 옆 소대로 배정을 받았기에 자주 볼 일도 없었고 별다른
문제를 일으킨 것도 없었기에 나는 별로 신경쓰지 않았다. 그렇게 한두달이 지나고 어느 날 나는 옆소대에 놀러가 후임들과 잡담을 나누고 있었다.
이런저런 얘기를 나누던 도중 신병 얘기가 나왔고 새로온 신병은 어떠냐는 나의 질문에 후임은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후임의 말에 의하면
평소엔 괜찮은데 잠버릇 때문에 미치겠다는 것이었다. 나는 별로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다. 나 역시 잠버릇때문에 곤욕을 치룬적이 있기 때문에
시간이 지나면 나아지겠지 라고 말했지만 후임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 뿐이었다. 전혀 나아질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코를 심하게 고냐고 물으니 아니라는 말이었고 그러면 이빨을 가냐고 물으니  그것 또한 아니라는 대답이었다. 그럼 도대체 뭐가 문제냐는
나의 말에 잘때는 괜찮지만 깨울때가 문제란 것이었다. 잘 자다가도 깨우기만 하면 애가 정신줄을 놓는다는 것이었다.
그때까지만 해도 나는 그게 도대체 무슨말인지 이해 할 수가 없었다.
 
불침번 근무를 설 때였다. 한동안 외곽근무만 서다 불침번 근무를 서게 되서 나는 기분이 좋았다. 짬을 먹고 서는 불침번 근무는 말 그대로
꿀이었기 때문이었다. 행정반에 앉아서 책을 보다 다음 근무자들을 깨울때가 되어 나는 근무자 명단을 확인했다. 다음 근무자는 후임이 말한
그 신병이었다. 후임이 말한 잠버릇이 어떤건지 확인할 수 있는 계기가 생겨 나는 괜시리 설레여졌다. 기대반 설레임반으로 내무실로 들어서서
그 신병을 찾아냈다. 내 기대와는 달리 그 후임은 얌전히 누워 자고 있었다. 내 기대에 못미치는 그 모습에 나는 살짝 실망스러운 마음으로
그 후임의 이름을 불렀다. 그제서야 나는 후임이 내게 했던 말이 무슨 뜻인지 알 수 있었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주었을 때 그는 하나의
이등병에 지나지 않았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주었을 때 그는 나에게 와서 고문관이 되었다.
 
눈을 뜬 신병은 일어나지 않고 그대로 몸을 돌려 다시 누웠다. 예상치 못한 상황에 당황한 내가 다시 이름을 부르자 그는 작은 목소리로 오분만..
오분만... 이라고 말했다. 간만에 당한 푸대접에 나는 기분이 나빠졌다. 하지만 나는 기분이 좋다.. 나는 자유롭다.. 라고 되뇌이며 다시 그를
깨웠다. 다시 일어나 몸을 일으켜 앉더니 고개를 숙이고 혼자 뭐라고 중얼거리기 시작했다. 내가 정신차려 라고 말하자 그는 대답했다.
왜? 왜라고 물으신다면 대답하는게 인지상정. 근무 나가야지 라고 말하자 그는 또렷하게 다시 말했다. 근데?
익숙하지 못한 상황변화에 나는 폭력적으로 변할 것만 같았다. 내가 보기엔 이미 그는 잠에서 완전히 깬 것처럼 보였다.
후임이 말한 정신줄을 놓는다는게 이거였구나라는 걸 알게되었다. 화를 낼까 웃어버릴까 생각하다가 그의 볼을 꼬집어 일으켜 세웠다.
그제서야 정신이 든 듯 갑자기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관등성명을 외치는 올바른 이등병으로 돌아간 그의 모습을 보며 나는 그저 황당할 뿐이었다.
지킬박사와 하이드를 보는 것 같았다. 잠시 후 행정병으로 총을 가지러 온 그 신병에게 도대체 뭔 생각으로 그런건지 묻자 기억이 나지 않는다는
대답이었다. 집에 있는 줄 알았다는 것이었다. 그 말에 괜히 마음이 안쓰러웠다. 하지만 그렇다고 그대로 방치 할 순 없었다.
 
다음날 나는 그를 위한 헌정곡을 만들어 옆소대로 찾아갔다.
그리고 그에게 열두시가 지나면 민간인으로 돌아간다 하여 근데렐라란 별명을 붙혀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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