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점장으로 승진하셨대요. 어머니께서 굉장히 좋아하시더라고요. 너희 아버지 정도면 50전에 지점장 하실 줄 알았다면서...ㅎㅎ 내가 다른 건 다 못 했어도 남자 보는 눈은 좋았다고 저한테 자랑까지 하시더군요. ㅋ
저희 아버지 참 대단하신 것 같아요. '너희 형 대학 등록금 마련하는 것도 힘드니 너는 아비 따라 농사나 지어라'는 할아버지 불호령에 중학교 전교 1등을 밥 먹듯이 하시면서도 농고 진학. 1년 만에 자퇴, 가출, 법조인이 되겠다는 꿈 하나만 가지고 서울로 혼자 상경. 짜장면 배달에 일용직 노동자를 전전하면서 간신히 번 돈으로 1칸짜리 고시원비와 학원비를 대면서 공부하셨지만 3년째 낙방.
생활고를 견디다 못 해 다시 귀향. 1년 안에 너 밥줄 찾으라는 할아버지 엄명에 고시 공부 때려치우고 대기업 입사. '키가 크고 당당해보여서 좋았다'고 회상하시는 어머니와 중매로 만남(어머니께서는 촌스러워보였다고 회상하지만, 이모는 '평생 독신으로 살겠다며 고집부리던 너희 엄마가 선 한 번 보고 오더니 조용해지더라'라고 회상...ㅎㅎ). 결혼. IMF 이후 수 차례 구조조정에서 피말리는 경쟁에서 끝까지 살아남아, 결국 30년 가까이 몸 담았던 지점의 장까지 이름...
하... 그런데 저는, 아버지 돈 축내면서 재수까지 했지만 결국 서울대, 아니 연고대도 못 가고 그 밑 대학에 어영부영 기어들어가서 하는 거라곤 게임과 술, 인터넷 뿐... 이제 좀 있으면 4학년이라 벌써부터 취업 준비하는 놈도 있는데 항상 이렇게 후회하면서도 아침에 눈만 뜨면 친구한테 전화해서 PC방이 전전하고, 밤에는 술 마시고 헤롱대면서 들어오고...
아버지보다 몇백배는 풍요로운 환경에서 자랐고 공부 외에는 아무것도 걱정할 필요 없는 위치에 있으면서, 아버지만큼은커녕 오로지 노력만으로 점철된 그 분 인생의 절반조차 못 따라가는 한심한 인간... 취업은 될 지, 학점도 엉망인데, 토익은 학원도 다녔지만 점수는 나오지 않고, 여자친구도 없고, 원대한 꿈도, 앞으로의 계획도 전무...
어렸을 땐 잘 몰랐는데... 요새 들어서는 정말 절실하게 이 말의 가치를 느낍니다. '평범하게 사는 게 제일 어렵다.'
휴... 어떻게 끝내야 할 지도 모르겠네요. 술 먹고 횡설수설 썼더니... 여기까지 읽으신 분은 수고하셨고, 한심한 자학글 읽으시느라 고생 많으셨습니다. 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