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한텐 한 살 차이나는 남동생이 있습니다.
삼수생인데 엄밀히 말하면 삼수생이 아닙니다. 공부를 안하니깐요.
고등학교는 산꼴짜기 꼴통학교 떨어진걸(경기도는 시험봐서 고등학교 갑니다)
엄마가 좋은친구들, 좋은 환경에 붙어있기만 해도 주워듣는 게 있을 거라면서
어렵사리(위장전입해서) 서울 인문계고에 집어넣었습니다.
고3땐 대학따위 안가고도 잘살거라고 큰소리치는 전형적인 반항아였습니다.
오토바이 훔쳐타고 다니고..
재수할땐 펑펑 놀다가 수능 라인으로 찍고 원서만 쓰면 붙는 전문대에 붙었습니다.
오티 다녀 오더니 교수들이랑 학생들 수준이 너무 낫다고,
이번엔 진짜 공부해서 좋은 대학교 가겠다고 했습니다.
저희 가족, 부모님 이혼하시고 어머니 혼자 저희들 키우십니다.
없는 형편에 입학금 날리고도, 이제야 저놈이 마음 잡은 것 같다고
저랑 엄마랑 엄청 좋아했습니다.
언젠가, 동생이 너무 대책없이 살길래, 펜이랑 종이 한 장 주면서 니 인생 계획을 써보라고 했습니다.
대부분의 남자들은 군대 갔다오면 철든다는 걸 어디서 주워들어서는,
자기는 28살에 군대갈꺼고 그때까진 놀고먹고 지 하고싶은 대로 하면서 살꺼라고 써놔서
제 속을 뒤집어지게 한 녀석입니다.
솔직히, 공부 안하려다 다시 시작한다는거, 쉽지 않다는 거 압니다.
포기 안하게 옆에서 격려해주고, 동기부여 해주고, 기살려주고, 비유 맞춰주고 별짓 다해줬습니다.
어쩌다 쓴소리라도 한마디 할라치면 난리납니다.
누나고 엄마고 없고 욕지거리 튀어나옵니다. 다 지 위해서 해주는 말인데도.
사랑해줘야지 했다가 포기하고, 감싸안아줘야지 했다가 포기하고, 벌써 백만번째입니다.
오늘 동생방에 갔다가 A4용지에 요렇게 써논 글을 발견했습니다.
완전 어이없어 헛웃음이 절로 납니다. 코메디가 따로 없습니다.
내가 허비한 아까운 시간들의 목록.
고1 - 학교 왜다녀? 엄마가 전학가래? 그래 가줄께.
고2 - 선생이 왜 이따구야? 학교를 안가도 몰라. 근데 좋아~
고3 - 공부보단 농구. 역시 남자라면 운동이야~ 대학? 좆까~
20살 - 대학 생각 별로. 아무데나 가자?... 학교 좆나 구려! 안가~
21살 - 이번엔 완전 시간 아까워! 구린학교 안가. 좋은 대학 가고파~
공부 해야지. 공부해야지. 공부해야지. 공부... 씨발 힘들어.
놀고싶고...대학가고싶고...하루...이틀...5.4.3.2.1. 펑!!!
엄마와의 마찰, 학원비 900.000원. 자신과의 싸움...(?)
다 좆까라 그래. 엄마의 폭팔. 카드 압수. 핸드폰 압수.
상관없어. 이제 포기... 포기해... 포기할꺼야...
응, 포기했어. 대학 안가... 지금 5월 31일.
2009년이 제일 시간 아깝다. 차라리 이 시간에 놀았으면...
이 시간에 딴 걸 했으면 이렇게 아깝진 않을텐데...
5/28 동생에게 보낸 격려 메세지 입니다.
-00아, 힘들다는 거 알아~ 할 수 있을거란 확신이 없어서 힘들다고 했지...
객관적으로 볼때 할 수 없는 일일지라도 기적은 있어! 주님은 역사하셔!
주님은 널 도우시고 길을 열어주셔! 누나가 대학온것도 기적이고, 니가 대학 갈 것도 기적이야...
그 기적을 소망하며, 거짓말 같은 것을 믿으며, 지금 니가 할 수 있는 최고의 노력으로 오늘을
살아내렴..! 화이팅..!
완전,,,
얘가 혼자 마음 정리하고 포기해 버린지도 모른채 답문도 없는 장문의 메세지를 보낸게 엊그제네요.
친구들한테 얘기해봤자 동생 뒷담화이고, 결국은 내 얼굴에 침뱉기이고...
넘 답답해서 고민게시판에 글 씁니다.
정말 얘를 어쩌면 좋을까요...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