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케레프 산업학교' 2차 세계대전 이후 , 수많은 고아들이 생기자 길을 떠도는 고아들은 , 전쟁 장비를 만드는 산업자로 양성하기 위해서 1958년 설립된 국립 산업학교 처음 무기 산업의 노동자를 양성하기 위한 정상적인 취지로 설립됬으나 고아 들로 이루어진 학교로 , 학교내 폭력이 심각했다. 그들은 서로 세력을 나누어 다투어 많은 학생이 부상을 입었고, 심지어 학교 내에서 총격전도 발생하였다. 부패한 소련 군관계자들은 이들에게 돈이나 , 매춘을 받아 총기를 밀수했으며 교실 내에서 , 기관단총이 발견되거나 한 세력 우두머리 개인 사물함서 부비트랩도 발견되었다. 폭력과 살인이 난무하자 , 스탈린의 후계자 후르쇼프의 지시로 학교내에 KGB가 배치되기도 하였다. KGB 한 요원이 화장실서 흉기로 난도질을 당해 사망하였다. 범인은 17세의 소년이였고, 범행의 이유는 총기를 탈취 하기 위함이였다. 이 사건으로 인해 케레프 산업 고등학교는 폐교 되었고 건물을 없애기 위해 , 중장비를 이용해 철거 도중 실습동 바닥 밑에서 T-55 전차에 사용되는 AP 고폭탄이 발견되었다. 당시 스위치를 누르면 폭발 하게끔 설계가 되있었다. 다른 학교 내에도 많은 고폭탄이 발견되어 철거가 중단되어 , 현재까지 철거가 이루어지지 않고있다. 학교가 , 외진곳에 위치한 점으로 보아 철거가 되지 않는것으로 본다. 케레프 산업학교의 각 세력 우두머리는 강제 노역소에 끌려가게 되었고, 케레프 산업학교 학생과 관련된 군 장교들은 파면과 강제 노역 판결을 받았고 케레프 산업학교 근처에 위치한 군 부대 장교들은 수년간 KGB의 감시를 받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