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성황후가 일본인에게 죽임을당한 몇일후였다. 한 청년이 있었는데 그는 국모가 억울한 죽임을당하자 너무화가나서, 한손에 칼을찬 일본인을 죽였다. 알고보니 그 일본인은 일본육군중위였고, 그 청년은 인천감옥에 수감되있다 사형선고를 받았다. 법무대신이 그 청년의 사형에대한 보고를하여 고종의 결재가 났고, 우연히 신하한명이 결재난 서류를보다 살해동기가 <국모의 원수를 갚기 위해>라는것을 보았다. 승지는 이것을 고종에게 보고하자 고종이 서류를 확인한후 사형을 중지시키라고했지만, 인천까지가기엔 시간이없었고, 전화를 이용해 그 사형을 중지시키게 하였다. 그 때가 1896년 윤8월 26일 인천에 전화가 개통된지 3일째 되던날이였다. 그리고 그 청년의 이름은 백범김구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