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0년 5월 30일 CNN의 방송 토론 프로그램인 TalkBack Live에서 꽤나 충격적인 방송을 내보
냈다. 미국 최고의 영웅이자 우상인 에이브러햄 링컨(Abraham Lincoln)이 사실은 인종 차별주
의자였다는 파격적인 주제로 토론 프로그램을 진행한 것이다.
이 프로의 중심에는 'Forced into Glory(강요된 영광)'라는 책이 있었고, 이 날 출연한 이 책의
저자 Lerone bennett Jr와 여러 패널은 링컨이 진정한 노예 해방론자였는 지 아니면 미화된 인
종 차별주의자였는지 여부를 두고 얼굴 새빨개지도록 열띤 토론을 벌였다.
(논란의 핵심 Forced into Glory와 저자 Lerone Bennett Jr.)
링컨이 누구인가 ? 노예 해방문을 발표하고, 남북 전쟁을 승리함으로써 하나된 미국을 만든 장
본인이다. 미국인에게 자유와 평등을 구현한 인물이자 역대 미국 대통령중 가장 높은 존경을
받는 양반이다. Rushmore 산과 미국 동전에 그의 얼굴이 새겨져있고, 링컨 기념관이 운영되고
있으며, 미국 흑인들에겐 구세주와도 같은 인물이다. 그래서 마틴 루터 킹 목사도 그 유명한 연
설 'I have a dream'을 링컨 기념관 계단에서 한 게 아닌가.
그런데 그런 링컨이 사실은 심한 인종 차별주의자였다니 ? 한국인에게 이순신 장군이 사실 왜군의 앞잡이였다는 주장과 맞먹을 만큼 충격적인 말이다. CNN같은 대중매체에서 근거없이 흥미 거리로 올렸다간 여론의 몰매를 맞는 건 고사하고 책임 PD, 편집국장, 편성국장 전부 옷 벗을 만큼 큰 파장을 몰고 올 일이다.
그럼에도 이 주제가 CNN에서 방영된 데에는 어떤 근거가 있기 때문일까 ? 이 프로그램 타이틀
처럼 링컨은 정말 뿌리깊은 백인 우월주의자 이자 인종 차별주의자였을까 ? 그의 지난 행적을
확인하기 위해 그의 공식적인 활동 기록 및 발언 내용들을 수집해봤다. 그리고 그에 대한 숨겨
진 진실을 조금씩 알게되었다.
먼저 1858년 8월 21일 Stephen Douglas와의 토론회에서 나온 그의 발언을 보자.
"나는 직접적이든 간접적이든 노예제도가 존재하는 각 주의 정책에 관여할 의향이 없다.
내게 그럴만한 법적 권한도 없으며, 그러고 싶은 의지도 없다." 흠...정치적인 거물이 되기 전 초기 발언이니 그러려니 하고 넘어가자.
1858년 9월 18일 연설문에는 좀 더 자세한 그의 개인적 견해가 나온다.
"나는 백인과 흑인의 사회적 그리고 정치적 평등을 실현하는 데 있어서 한번도 찬성한 적이 없
다. 흑인이 투표권을 갖거나 배심원이 되거나 회사를 갖거나 백인과 결혼하는 것에 대해
서도 역시 찬성한 적이 없다. 나는 백인과 흑인간에 신체적 차이가 존재하기 때문에 사회적으로 정치적으로 두 인종이 더불어 사는 것을 금지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더불어 살아야 할 상황이라면 분명 두 인종이 차지해야 할 위치에는 우,열이 있어야 하며 당연히 백인이 우월한 위치를 차지 해야 한다" 슬슬...어라~ 이게 뭐지 ? 의구심이 뭉게 뭉게 들기 시작한다.
1860년 대통령 선거에서 링컨은 두명의 강력한 경쟁자를 맞게된다. 링컨과 더불어 경쟁한 대
통령 후보였던 Salmon Chase와 Seward는 모두 정치적으로나, 인종적으로, 경제적으로 링컨
보다 훨씬 더 개혁적인 성향의 후보들이었다. 링컨은 당시 세 사람중 가장 남부에서 많은 지지
를 받은 후보였다. 남부에서 그는 '탈주 노예 법(도망친 노예를 주인에게 돌려보내는 법령)'을
공공연하게 지지하고 다녔으며, Alexander Stevens 같은 많은 남부 출신 정치 파트너들의 조
력에 힘입에 대통령에 당선되었다. 그의 당선 비결은 상대적으로 부각된 보수 이미지였다.
1862년 남북전쟁의 전황이 불리하게 돌아가던 당시 그는 이런 말을 했다.
"만약 연방을 위한 일이 모든 노예를 해방시키는 것이라면 그렇게 하겠다. 만약 단 한 사람의
노예도 해방시키지 않는 것이 미 연방을 위한 일이라면 그 역시도 나는 서슴없이 할 것이다"
남부 연합군에 비해 북군 연방군의 전력이 밀리는 시기에 나온 발언이다. 상황상 남북 전쟁
의 승리를 위해 노예 제도를 활용할 의향을 복선으로 깔고 있다. 연방을 위해 노예를 해방시
키는 것이 무엇을 의미하는 지는 1862년 하반기에 나온 그의 정책을 통해 확인된다.
1862년 8월 14일 흑인 지도자들과의 미팅에서 사뭇 중요한 언급을 한다.
"흑인의 이익을 위해서라도 그리고 백인들이 베풀어준 아량을 존경하는 의미에서도 여러분들
이 현재 누리고 있는 안락함의 일부를 희생해야만 합니다. 우리 국민들 중에는 자유가된 흑인
여러분들과 함께 살고 싶지 않은 사람들이 있습니다. 지금 제 앞에 앉아 계신 여러분같은 교육
을 받은 흑인 지도자들이 나서 주셔야 합니다. 백인만큼 지적 사고를 할 수 있는 분들이 여러분
들중에 반드시 있어야 합니다." 뭘 나서라는 건가 ?
링컨은 이 자리에서 흑인 지도자들에게 자발적으로 미국을 떠나 온두라스에서 새로운
삶을 시작할 것을 제안했다. 왜냐하면 자신을 포함한 백인들이 그들과 섞여 살기를 원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리고 미국에서 영원히 살길 희망하는 흑인들의 욕망은 이기적인 것이라
고 빗댔으며, 온두라스는 흑인의 고향인 아프리카와 유사한 기후를 가지고 있기 때문에 적응하
기 쉬울것이라고 했다. 링컨의 입에서 나온 말이라고 믿을 수 없을 만큼 막가는 표현을 한 셈이
다. 흑인들이 백인들만큼 똑똑하지 못하다는 인종 차별적 표현도 서슴치않고 하고있다. 헐~
진짜 링컨이 한 말이 맞을까 ? 맞다. 확실하다.
(링컨이 해방 노예들에게 집단 이주를 권한 목적지, 온두라스)
1862년 9월 22일 ~ 1863년 1월 1일 사이 그 유명한 노예 해방 선언이 내전중 공표된다.
미국땅에서 노예를 해방하고 자유와 평등의 가치를 드높인 위대한 헌장으로 알려진 노예 해방
선언문은 그 내용에서 우리가 알고있는 상식과 다르다. 선언문은 2번 제정되었는데, 첫번째 것
은 1862년 9월 22일 공표되었다. 첫 선언의 주 내용은 연방에 반기를 든 남부 연합주들에게
1863년 1월 1일까지 100일간의 기한을 줄테니 저항을 포기하라는 내용이 들어있다. 만약 저항
을 계속할 경우, 해당 주들의 노예제도를 공식적으로 폐지하겠다는 선언도 함께 들어있었다.
즉, 전 미국에서의 노예제도 폐지를 선언한 것이 아니다. 노예 제도와 상관없이 이미 북부 연합
과 남부 연합으로 갈라져 내전을 벌이던 상황에서 미 연방(북부)에 끝까지 저항하는 남부 주들
에게 강력한 응징 차원으로 당시 노동력의 근간이었던 노예를 해방시켜 남부 경제를 마비시키
겠다는 협박을 한 것이다.
(노예 해방이 선언된 지역은 붉은 색, 노예 소유가 허용된 주는 파란색으로 표기)
1863년 1월 1일 공표된 2차 노예 해방 선언문에는 끝까지 버틴 남부 10개주가 표기되었다.
사우스 캐롤라이나, 미시시피, 플로리다, 알라바마, 조지아, 루이지애나, 텍사스, 버지니아, 아칸사스, 노스 캐롤라이나 주에서의 노예들은 연방법에 따라 자유가 선언되었다. 즉, 주인 명령에 따라 목화 열심히 따지 말고 남군에서 뼈빠지게 봉사하지 말고, 봉기를 하든 떠나라는 얘기다. 후대에 들어 링컨의 업적이 가장 미화되고 왜곡된 부분은 사실 이 2차 선언문의 정확한 의도였다. 남군과 남부 경제를 마비시키기 위한 조치가 숭고한 인류애로 덧칠해진 것이다.
당시 노예제도를 유지하고 있었지만 북부 연방에 속해있던 메릴랜드, 델라웨어, 미주리 그리고
켄터키 주는 노예 해방에서 제외되었고, 연방과 남부 연맹에 반반씩 나눠져있던 테네시주도 제
외되었다. 결국 자신과 미 연방에 맞선 주들에게만 보복으로 취해진 조치였던 셈이란 걸 알수
있다. 이 조치로 링컨의 적대 세력 영토에서의 흑인 노예는 자유가 된 반면 링컨의 지지 세력
영토에서의 흑인은 반대로 노예로 남아야 하는 아이러니한 상황이 연출되었다. 결국 고도의
정치적인 판단이었음을 증명하는 사례다.
여기서 짚고 넘어갈 점은 링컨의 노예 해방 선언자체는 노예 제도를 불법으로 간주하지 않았다
는 점이다. 반대로 일부 주의 노예제를 합법화 한 꼴이었다. 이 결과 내전이 끝나고 나서도 1865
년 12월 18일까지 일부 주에서는 노예제도가 유지되는 근거를 마련해 준 셈이 되었다.
1865년 남북전쟁 말기 대통령으로서 링컨은 북군 장군들에게 도망친 노예들을 원래 소유자들에게 돌려 보내라는 지시를 종종 내렸다. 그뿐이 아니다. 그는 연방 군대를 노예 해방에 직접적으로 투입하지도 않았다. 반대로 뉴 올리언스와 뉴 포크에서는 흑인 노예들의 탈출을 막는데 연방군을투입했으며 테네시에서는 노예제도의 존속을 지원했다.
결론적으로 보면, 위대한 미국의 영웅이자 평등주의자 링컨은 CNN 프로그램 주제처럼 인종차
별 주의자에 가까운 면모를 가지고 있었다. 여러차례의 발언에서 드러나듯이 그는 백인의 우월
성을 믿고 또 백인의 특권을 유지하고 싶어했다. 흑인들을 눈에 띄지않는 조그만 식민지에 몰아
넣으려던 것도 부인할 수 없는 그의 신념중 하나였다.
당시 그가 내린 제한적 노예 해방 선언이 남북전쟁의 이념적 대결의 불씨가 되면서 내전후 미국
은 더 이상 노예제도를 유지해 나갈 수 없는 사회 분위기를 맞게 되었다. 결국 링컨은 노예 해방
의 수퍼 히어로가 되었고, 하나의 미국을 강조해야 했던 당시 사회상은 링컨을 국가적 영웅으로
추켜세우며, 그의 인종 차별적 발언이나 노예 해방 선언의 진의를 의도적으로 숨겼다.
CNN이나 Forced into Glory의 저자 Lerone Bennett Jr가 미국인들에게 일깨워주려고 했던 점
은 이 숨겨진 역사의 진실이다. 150년간 역사의 서고속에서 먼지를 뒤집어쓰고 숨겨져 있던 링
컨에 대한 진실이 세상 빛을 보게 된 것은 어찌보면 왜곡된 자신들의 역사를 바로잡아야 미국이
바로 설수 있다는 자각에서 비롯된 것일 수도 있다.
지금도 링컨의 인종 차별주의 논란은 현재 진행형이다. 진실을 밝히려는 소수의 노력은 불편한
진실을 알고 싶어하지 않는 절대 다수의 암묵적이지만 강한 저항에 부딪쳐 표류하고 있다. 누구
에게나 부끄러운 진실보다는 자랑스러운 거짓이 더 받아들이기 쉽기 때문일 것이다.
흑인인 Lerone Bennett Jr가 대담프로에서 했던 말이 오랫동안 기억에 남는다.
"지난 150년 동안 링컨의 정책에 대해 의문을 제기한 사람이 한 명도 없었다는 점이 이해되지
않습니다. 여러 학자들이 동의하듯 제가 책에 적은 내용중 상당수는 이미 알려진 사실이었음에
도 불구하고 말입니다. 우리 미국인들에게 무슨 문제가 있는 것일까요 ?"
박정희는 독재해서 xx끼지만 우리 링컨찡은 다르다!흑인을 전쟁터로 가서 피를 흘려도 링컨 만세~ 노예제도 사실 구라 만세!
관련 포스트 : 커스터의 마지막 저항 http://blog.naver.com/nicklim/5010807650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