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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압주의)킹 메이커 1부 네거티브 전쟁(손석희)-미국 대선판
게시물ID : sisa_242556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완전한인간
추천 : 14
조회수 : 892회
댓글수 : 4개
등록시간 : 2012/10/31 12:51:17

이런 글을 쓰는데 재주가 없어서 음슴체로 쓰겠음.


1988년 미국 대선 초반의 상황 -부시의 지지율이 듀카키스에게 17% 차이로 뒤지고 있었음.

듀카키스(민주당) 동북부지방(뉴일글랜드) 경제를 획기적으로 개선시킴- 메사추세츠의 기적의 장본인임.


부시(공화당)- 이란-콘트라 스캔들(정부가 테러리스트에게 무기를 판매하고 마약을 거래하는 위법을 저지르는데 관여), 당시 대통령이던 레이건의 지지를 받았지만 샌님, 얼간이로 불리며 레이건의 애완견이라는 비난도 받음.


모두가 부시가 당선 될 가능성이 없다고 생각할 때 부시의 선거참모 37살 리 에트워터가 출현. 

-그는 정치에서 불가능은 없다며  믿으며 이란-콘트라 스캔들은 조지 부시가 사랑하는 국가를 위해서 감행한 일이였다고 주장.

-성조기와  조지 부시가 함께 등장하는 것을 방송에 내놓으면서 이미지 메이킹과 미화를 하는 것을 시작으로 네거티브 전략을 준비함. 


여기서 첫번째 무기가 등장함.

-뜬금없이 아디다호 주의 스티브 심즈 공화당 상원의원이 기자들로부터 듀카키스가 1960년대 반전시위에서 성조기를 태웠다는 얘기를 들었다고 주장. (웃긴게 그 사람은 주요한 위치에 있는 사람이며 사진이나 증거물을 보지는 못했지만 믿을만한 사람에게서 사진이 있다는 얘기를 들었다고 계속 얘기함. 그 사람의 신원은 밝힐 수 없다고 발뺌 시전


-듀카키스의 부인은 그런 일이 없다고 강하게 부정하고 시위에 참가한 적이 없다고 말함.(아이러니 하게 이런 방어적인 태도가 사람들의 의혹을 더욱 크게 키우는데 작용함)


-에트워터의 전략 중 하나가 익명의 제 3자가 혐의를 제기하게 하는 것임. 그래서 공식 선거운동과는 관련이 없는 것처럼 가장하고 언론을 도배함. 마지막에 관련 사진이 없을 수도 있다고  심즈 의원이 인정까지함. 하지만 듀카키스는 이미 돌이킬 수 없는 이미지 피해를 입은 후였음.





중간에 맥도날드 사건을 인용한 예로 네거티브 전략에 어떤 방법으로 대응해야 하는지 방법론이 나옴.

-한 때 맥도날드 햄버거 고기는 지렁이로 만들어졌다는 괴소문이 생김. 

-첫 번째 대응은 우리 햄버거 고기는 지렁이로 만들어지지 않았다고 명시를 하는 것이었음. 그러나 매출은 계속 감소함.

-이 해명은 지렁이라는 단어를 써서 사람들이 계속 지렁이라는 생각을 갖게 했기 때문임


맥도날드는 결국 연구를 감행하여 어떻게 해야할지를 실험함. 2가지 방법이 나옴

1. 고급 레스토랑 고기에서도 지렁이 고기를 봤다는 헛소문을 내는것 ->  사람들은 더 큰 충격을 받고 값 싼 맥도날드와의 연관성을 잊기 시작함. 하지만 이 방법은 실제로 실행되지는 않음.

2. 지렁이 고기에 대한 관심을 돌리기 위해 밀크쉐이크와 감자튀김에 대한 홍보에 집중을 함.-> 드디어 그 타격에서 벗어나기 시작함.


한 언어학 교수가 나와서 설명함

-가장 최악의 대응은 그 공격을 반복하면서 방어하려고 하는 것임

-상대방의 언어를 사용하면서 그들을 돕게 됨

-프레임을 부인하려고 할수록 오히려 프레임을 활성화하게 됨


결국 상대방이 시비를 걸기 시작한 논점을 가지고 그 프레임 안에서 비슷한 용어들을 사용하면서 대응하면 더 큰 피해를 야기하게 되는 것임.


이러한 공격에 대응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반격해서 논의를 이동시키는 것임 (논점과 프레임의 이동으로 상대방이 불리해짐)




한 가지 좋은 예는

-1980년에 카터와 레이건이 맞붙을 때 카터는 레이건이 전쟁광이며 위험한 인물이라고 공격함.


-레이건은 자신의 부인을 광고에 나오게 하여 카터의 공격은 정책에 대한 비판이 아니라 인신공격이며 이 캠페인은 공포에 호소하고 있다고 카터에게 반격을 함. 그 후에 카터의 실패한 정책들을 쭉 나열하며 말하기 시작함.


-결과적으로 사람들은 오히려 카터가 치사한 짓을 했다는 인식을 갖기 시작함.




내용을 계속 이어서 에트워터는 2번째 무기 역시 애국심에 호소하는 것이었음.

-듀카키스가 학교에서 국가에 대한 경례를 거부하는 사람을 형사처벌 하자는 공화당의 법안에 반대를 했었음.


-그러나 이것은 베트남 전쟁 동안 미국의 베트남 정책에 불만을 품은 교사들이 있었는데 그들이 국기에 대한 경례하는 것을 거부했음.


-법률이 제정되어 그 교사의 행동이 범죄행위로 규정됐지만 미국의 헌법에 따르면 이거 자체가 불가능함.


-메사추세츠 주지사 시절 듀카키스는 대법원에 이 법안에 대한 의견을 물었더니 헌법에 어긋나는 일이라고 하여 거부권을 행사한 것이었음.

-하지만 합리적인 이 설명도 애국심이 강한 이미 마음이 돌아선 남부지방 유권자들을 설득할 수 없었고 의혹을 더 키움. 


-듀카키스는 네거티브 자체에 의미를 두지 않고 자신의 정책과 비젼으로 깨끗한 승부를 지향함. 유권자들은 터무니 없는 네거티브에 속지 않으리라고 믿었고  자신이 이루어 왔던 업적들에 자신이 있었기 때문에 네거티브를 하지 않겠다고 공식 선언까지 함.





이후에 

에트워터의 3번째 무기가 발동됨.


-부시의 탱크 광고에서 마이클 듀카키스는 모든 방어 시스템에 반대한다고 그가 반대했다는 무기들을 쭉 나열하면서 이런 위험을 감수할 수 없다고 함. -사실 듀카키스는 그 무기들의 대부분을 지지했으므로 이 광고는 아주 거의 생구라임.


듀카키스는 별다른 대응을 하지 않았음.





에트워터는 애국심에 호소한 이후 마지막 무기로 공포를 이용함.

-부시의 회전문 광고에서 듀카키스는 사형을 거부하고 가석방 자격이 없는 일급 살인자들에게 주말 휴가를 주는 정책을 시행했으며 이 때문에 또다른 유괴나 성폭행 범죄가 재발했다고 말함.


-이로 인해 관심 받지 못했던 윌리 호튼이라는 흑인 죄수가 주말 휴가를 나가 1987년에 커플에게 범죄(성폭행)를 저지른 일이 세간의 화두가 됨. 


-에트워터는 조지 부시가 처음부터 직접 공격을 하는 것은 역풍이 있을 것이라고 예견하여 독립적인 외곽 단체를 이용하여 자극적인 공격을 시작함. (국가 안보 정치 위원회 등)  그러면서도 이 광고를 본적이 없다고 시치미 때며 이 광고를 사용할 계획이 없었던 것처럼 연기함.


-여기서 멈추지 않고 수백만장의 전단지를 살포하면서 적극적인 공격을 계속함.


-미국 전역에 이 사건에 대한 공포과 확산된 기미가 보이자마자 조지부시와 에트워터는 살인자, 냉혈인, 주말 휴가라, 성폭행이라는 단어를 반복적으로 사용해 가며 듀카키스를 공격함.

(미국에서 인종 문제가 심각할 때 극단적인 과격파의 흑인들이 있었고 시간이 지났음에도 불구하고 에드워터는 사람들 안에 내재되있는 그 심리를 이용해 공포로 사람들의 이성을 마비시킴) 


-위에서 언급한 회전문 광고 영상에서 많은 재소자들이 회전문을 통해 감옥에서 벗어나는 모습을 보여줌. 근데 한 흑인 죄수가 회전문을 나오면서 영상을 촬영하는 카메라를 섬뜩하게 노려보는 모습이 담겨있음.


-부시를 지지하는 단체들은 재발한 성폭행을 당한 여자를 끌고 다니면서 그것을 자세하게 증언하게 함.


-듀카키스가 주지사로 있었던 메사추세츠 주의 경우 그의 제도 덕분에 강력 범죄율은 13%이상 감소, 마약범 체포율은 5배 이상 증가함, 또 보스톤은 미국 전지역에서 살인범죄가 가장 낮은 도시가 되었음. 하지만 전과 마찬가지로 이런 통계를 통한 합리적인 해명은 아무런 소용이 없었음.


-더 어이없는 것은 주말 휴가를 처음 시행하고 전국적으로 확대한 사람은 현직 대통령 레이건이었음(부시가 부통령으로 있었던 행정부이고 레이건이 부시를 지지하는 상황임) 조지 부시의 주말휴가 제도로 나왔던 재소자들중에서는 임신한 여성을 상대로 살인을 저지른 사람도 있었고 헬리콥터를 훔쳐서 추락사고를 나게 한 사람도 있었지만 듀카키스는 그 것에 대해 아무것도 언급하지 않았음.


듀카키스는 조지부시가 일으킨 공격을 아무도 믿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했고 자신을 그런 일에 절대 연루되고 싶지 않다고 생각했음.

하지만 대응이 없어서 대중은 그 공격을 믿게 된 것이 큰 피해를 야기했음.


결국 조지 부시는 1989년에 득표율 54%로 당선됨.

부시는 대통령이 되었고 에트워터는 38살의 나이로는 최초로 공화당 전국의장이 됨.

하지만 과한 네거티브로 50%에 불과한 투표율을 보임.(미국역사상 최악)


에트워터는 헐리웃 스타들과 만남을 가지면서 화려한 생활을 하고 부시도 대통령의 영예를 가짐.


하지만 조지 부시는 네거티브를 통해 선거에 승리했을 뿐 그의 정책에 대해서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음.

세금을 올리지 않겠다던 약속도 1992년에 깨고 같은 당으로부터 공격을 받기까지 함.

그래서 빌 클린턴한테 개발림.


1990년 에트워터는 뇌종양으로 죽음. 생을 마감하며 자신을 잘못을 인정하는 편지를 작성.

자신이 미국 정치에 끼친 해악을 반성하면서 미국민들에게 또 자신에 의해서 상처받은 정치인들에게 그리고 윌리 호튼에게 자신을 잘못을 고백함. 



하지만 이를 통해 미국 정치는 아주 많은 퇴보를 했음.


이것 말고도 러시아 대선에서의 네거티브도 같이 다뤘는데 졸린관계로 이것만 작성함. 

하여튼 우리나라 대선을 보면 미국과 러시아의 네거티브가 짬뽕인게 너무 안타까움.

러시아의 언론과 재벌을 통한 네거티브 등 겹쳐지는게 너무 많아서 그리고 무의식적으로 프레임에 지배당해 

자신의 의지와는 관련 없이 잘못된 선택을 하게 강요되는 국민들이 많아진다는게 슬픔.

우리나라 정치는 아직 1980년대에 머물러 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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