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착한 사람들은 어려운가?' 라는 질문에 다양한 접근이 가능합니다.
흔히 '착한 사람 증후군'으로 대변되는 사회풍조는 우리 사회나 문화의 한 단면을 보여줍니다.
단지 경쟁 시스템에서 밀려난 사람들의 애환일까요?
착하다는 것이 무엇일까요?
우리가 착하다고 생각하거나 말하는 것이 정말 바른 것일까요?
아래는 웹툰 26년의 한 장면입니다.
주변에 착한 사람으로 알려져 있거나, 종교적 신념을 가진 사람이
다른 사람의 반칙을 눈감아주거나 변호해주는 것을 가끔 볼 수 있습니다.
그게 정말 옳바른 용서일까요?
일흔번씩 일곱번 용서하라[마태 18:22]는 성서구절도 있지만,
이를 좀 더 쉽게 표현한 누가복음에는
일곱번 네게 돌아와 내가 회개하노라 하거든 너는 용서하라[누가 17:4]고 합니다.
좀 지나친 사람은 자신이 당한 반칙이 아니라 남이 당한 반칙에 대해 용서하라고 강요합니다.
그런 사람 자기가 반칙 당할 때 참는 사람 보기 힘듭니다.
광신도들의 특징입니다. 자기는 못하는 것을 남에게 강요하기.
이들은 착한 사람이 아니라 약한 사람입니다.
이중에 광신도들은 약한 사람 중에서도 비굴한 사람입니다.
반칙을 방관하는 것은 또 하나의 반칙 입니다.
남의 반칙을 눈감아주면
당신의 반칙이 가려지는 것이 아니라
당신이 반칙을 당하게 됩니다.
남에게 대접을 받고자 하는 대로 너희도 남을 대접하라 누가복음 6:31
그러므로 무엇이든지 남에게 대접을 받고자 하는 대로 너희도 남을 대접하라 이것이 율법이요 선지자니라 마태복음 7:12
반칙을 당하기 싫으면 반칙에 눈을 감지말아야 합니다.
씨앗을 심으면 열매가 나지만,
지식이 있는 사람은 씨앗을 가려 심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