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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 글쓰기 대회에 냈던 제 글인데 어떤가요?
게시물ID : lovestory_47675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CarpeDiem!
추천 : 2
조회수 : 566회
댓글수 : 2개
등록시간 : 2012/11/01 21:35:39

의관열파 (衣冠裂破)

궁서체의 검은색 글씨들이 눈앞에서 일렁인다. 어제도 진탕 술을 마셨기에, 머리를 들고 있는 것조차 힘들다. 마치 내 눈앞의 신문들이 내 눈앞에서 멀어졌다 가까워졌다 거리듯, 글씨들이 작아졌다 커진다. 검은색 종이가 나에게 밀려온다. 난 펜을 들어 글자들을 찍어 모은다.

“국장님, 여기 있습니다.”

일렁이던 글씨를 내 종이위에 끌어 모아 적은 오늘의 머리글들을 국장님께 넘겨 드린다. 난 나가려 뒤로 발을 돌렸다.

“박 기자. 잠깐만 여기 있어봐.”

국장님께서, 아니 국장이 날 부른다. 난 국장이라는 거대한 벽에 거부감을 느낀 듯, 가장 멀리 떨어져 있는 의자를 끌어다 앉는다. 피식 하는 소리와 함께, 의자 쿠션에 바람이 빠진다. 난 의자 속으로 빨려 들어간다.

“음……. 박 기자, 아니 박어부. 자네가 쓴 기사를 읽어 봤네만…….”

또다. 또 늘 같은 소리를 늘어놓는다. 누군가는 나에게 잘되는 소리를 한다고 한다지만, 9년을 한 나에게 그런 소리를 또 할 필요가 있는가? 항상 같은 식이다. ‘자네는 이런 게 부족하네, 이걸 정말 내보낼 생각인가.’ 항상 같은 포맷이다. 나보고 큰 건수를 올려 줬다고 상줄 때는 언제고, 이제는 모자라단다. 뭐, 그에겐 언제나 모자를 것이다. 내가 올리는 한 글자 한 글자가 다 모자라다고 할 것이다. 수십 년을 몸 담아온 고리타분한 사람에게는 나 같은 피가 하나하나 마땅할 것이다. 내가 싫다면 싫다고 말할 것이지 말이다.

“자네가 쓴 기사 너무나 좋았네. 그런데 말이야……. 그걸 방송하기에는 조금 무리가 있을 것 같네 말일세. 미안하네.”

고리타분씨가 나에게 말한다. 아니 말도 아닌 것에다가 ‘말’이라고 붙일 수 있을까?

“국장님, 무슨 문제가 있습니까?”

“보도하기에는 조금 무리가 있네.”

고리타분씨가 같은 말을 반복한다. 도대체 왜 그렇다는 것인가?

“아니 왜 안 됩니까, 국장님? 발바닥 터져가며 써온 겁니다. 낚는데도 많은 시간이 걸렸습니다. 산전수전 다 겪으면서 취재했습니다. 하도 걸어서 무릎도 안좋아 졌습니다.”

난 열변을 토한다. 이번 건만 그런건 아니지만, 그동안 숱한 많은 고생들을 겪어왔다. 기사를 적어 내려고 여기저기서 동분서주 하다 화염병을 맞을 뻔한 적도 있었다. 전경들과 시위대 사이에 껴서, 시위대로 오해받아 진압봉에 구타당한 적도 있다. 언제는 해빙기 취재를 하려다가 얼음 껴있는 호수에 빠지기도 했었다. 11미터짜리 모형탑에서도 뛰어내리고, 눈 속이나 빗속에서나 내 이름 석 자를 부를 때 까지 기다렸다. 어쩌면 그러해 왔기 때문에, 현장에서 거리를 낚아 오는 것이 무엇인지를 후배들에게 보여줬기 때문에, 후배들이나 선배들은 날 ‘박어부’라고 부른다. 그런 내가 써왔던 숱한 기사들 중에서, 이번 기사는 유독 힘들었다. 온 몸과 팔을 도화지로 생각하는 사람들이 내게 찾아오기도 했었다. 몰매를 맞고 눈 밑이 살짝 찢어지기도 했었다. 정체 모를 사람에게 전화가 왔었다. 그 검은 그림자는 나에게 삽질하지 말라는 소릴 했었다. 언제는 양복을 입은 사람들이 찾아와 나에게 검은 가방을 건네기도 했었다. 하지만, 난 받을 수 없었다. 진실에서 멀어져 거짓에 눈 감겨 가는 사람들의 눈을 터주고, 가려진 눈앞에 펼쳐져 있던 어둠을 보여주고 싶었다. 눈이 감겨 귀에 의존해 가는 사람들에 한계를 체감했기에, 난 눈을 뜨고 계속 보고 있었기에, 내가 보았던 것이 무엇인지를, 귀만 있는 사람들에게 보여주고 싶었다. 하지만, 사람들의 눈을 가리고 있는 검은 독수리들은 나를 부리로 쪼아댔다. 사람들의 눈을 가리고 있는 독수리들의 날개에 손을 대는 순간, 독수리들은 맹렬히 나를 쪼아댔다. 아팠다. 누군들 그런 부리로 쪼임을 당하는데, 안 아파할 사람이 있는가? 난 그래도 참았다. 참았다. 그냥 이를 악물고 참아 왔다. 귀만 열려, 독수리의 속삭임만 듣고 있는 사람들의 눈을 띄워주고 싶었다.

“박어부. 나도 안 된다는 말 밖에 할 수 없네. 미안하네. 다시 들고 돌아가게. 이번에 진주에서 유등축제를 한다는데 거기 가서 아무거나 좀 따.......”

“싫습니다.”

난 단호히 거절한다. 고리타분씨의 말을 무 자르듯 잘라버린다.

“박어부!”

“싫다고 말씀 드렸습니다. 제가 가져 온걸 하고 싶다고 말씀 드렸지 않습니까.”

“박민기! 정신 좀 차려! 다 널 생각해서 이러는 거다. 제발 손 떼!”

“방금까지 싫다고 말씀 드렸지 않습니까? 하고 싶어 죽겠습니다. 해야 합니다. 눈을 터줘야 한다고요!”

고리타분씨가 머리를 떨구며 묻는다.

“야 박민기. 네놈 고집은 너 입사할 때부터 봐서 잘 알겠다. 하지만 지금은 아니야. 네가 한발 물러나야 한다고. 너 인마, 너 저번에 눈 찢어진 상처. 그거 어떻게 생긴 건가?”

고리타분씨가 나의 상처를 물고 늘어진다.

“넘어진 겁니다.”

“요즘은 넘어지면 막 눈이 찢어지고 멍이 막 들고 그러나 보지? 내가 그게 어떻게 생긴 건지 모를 거 같아? 손 떼라고!”

“안됩니다. 제 목이 댕강 날라가는 한이 있더라도 포기 안합니다.”

고리타분씨가 나에게 종이쪼가리들을 던진다.

“야 인마! 너 내가 하는 소리 안 들려? 너처럼 객기 부리다가 모가지 날라간게 한두 명인 줄 알아?”

“눈을 터줘야합니다. 귀만 열린 사람들 앞에 깃털들을 치워 줘야한다고요.”

고리타분씨가 다시 고개를 떨군다. 그는 돋보기안경을 벗어 옆에 놓는다. 산전수전을 겪은 그의 손이 그의 얼굴을 쓴다.

“박민기. 아니, 민기야. 네 상사가 아니라 네 삼촌으로써 부탁한다. 제발 손 떼라. 내가 부탁하마."

또 같은 소리다. 내가 저번에 호준이랑 내곡동 갔을 때도 비슷한 소릴 하더만.......

“보도국 내에서는 삼촌, 조카 소리 하지 말자고 한 게 국장님 아니십니까? 저는 누가 뭐라고 하던 할 겁니다.”

“야 이 자식아. 언제까지 환상에 젖을 건지 난 도저히 모르겠다. 누군들 그걸 모르나? 눈을 띄워주고 깨닫게 해주고. 그게 우리가 해야 할 일이야. 근데, 언젠가부터 그게 안 되고 있는걸 네가 더 잘 알잖아. 자유? 언론의 자유? 다 개소리야! 우리는 언제나 어디서나 정부를 빨아야 돼. 우리가 하고 싶은 건 다 잘라내고 있단 말이야. 유신시대가 끝나고 민주주의의 시대가 도래했다고? 어떤 미친놈이 그런 소리를 해대는지 모르겠다. 맞아. 우리가 찾고 있는 건 진실이야. 진실이고 팩트고, 그게 우리가 찾아 나가는 거야. 근데 지금 여기서 살아남으려면, 그 팩트는 자기만 알고 있어야해. 그래야 살아 남을 수 있단 말이야. 근데 넌 자꾸 왜 그러는 건데? 너 그러면 너 그 옷이랑 네 사원증 다 벗어야 되는 거 몰라서 그래?”

그래. 팩트는 나만 알아야지. 그 망할 팩트는 나만 알고 있어야지. 그래서 자꾸 독수리들이 활개 치고 다니는 것이다. 언제까지 검은 독수리들의 농간에 놀아날 것인가? 자유를 얻어 날아다니며 사람들의 눈을 띄워줘야하는 종달새인 우리들이 왜 자꾸 검은 독수리 깃털에 숨어있는 벌레들을 잡아줘야 하는 건가? 언제까지 그런 걸로 배를 채우면서 살 것인가? 안일하다. 불쌍하다. 아니 너무나 더러워서 씻어내도 다시 때가 질것 같다.

“압니다. 옷 벗어 던지고 나가야하는 것도 할고, 사원증 반납해야 할 일도 생길지도 모른다는 거 다 압니다. 근데 그거 아십니까? 계속 그 더러운 기득권층 밑에서 빌빌 기다가 나중에 되돌리려고 돌아보면, 다시 되돌리지도 못할 겁니다. 가까스로 눈을 뜬 사람들이 묻겠죠. ‘왜 당신들은 우리의 눈을 더 빨리 띄워주지 않았나요? 당신들은 종달새가 아닙니다. 당신들은 까마귀일 뿐입니다. 상어 밑에 붙어사는 빨판상어나 다름없는 위선자들일 뿐입니다.’ 라고 말하겠죠. 국장님이 뭐라고 하던 전 하고 싶습니다. 그런 마음가짐 절대로 안 버릴거라구요. 제가 제 옷을 찢어버리고, 제 수첩을 찢어버리는 한이 있더라도, 꼭 하고 싶습니다. 아니, 할겁니다.”

고리타분씨, 아니 내 삼촌은 얼굴을 든다. 천천히, 아주 천천히...... 마치 편집실에서 비디오를 8배속 슬로우로 돌리는 것 같다.

“하……. 나가”

고리타분씨가 나가라고 하신다. 그래. 그러면 나가야지. 난 천천히 뒤로 돌아 문으로 간다. 문손잡이를 잡는다. 아 참, 인사를 안했구나. 난 다시 몸을 돌려 고리타분씨를 쳐다본다. 그리곤 허리를 숙였다.

“빨리 나가라고 이 쓰레기야!”

쾅. 문이 닫힌다. 난 날아다니는, 내가 흘려 온 땀과 발품들을 뒤로 한 채 나온다. 밖으로 나온다. 뒤로 돌아선다. 내 동기들과 후배들이 모여 있다. 그들은 나에게 눈길을 날린다. 마치 음악 방송의 특수효과 레이저처럼, 나를 째려다 보는 동료들의 눈길을 받는다. 이 눈길들이 연민의 눈길인지, 동정의 눈길인지, 아니면 동네에서 코흘리며 돌아다니는 바보를 보는 눈길인지, 살인자를 쳐다보는 경멸의 눈길인지 알 수 없다. 숨 쉴 수 없다. 나가고 싶다. 갑자기 가슴이 막힌다. 가슴이 먹먹하다. 넥타이를 풀어 헤치고, 동료들을 헤친다. 난 보도국 문 앞에 섰다. 까마귀가 되어버린 종달새들의 둥지를 나가려 한다. 나도 까마귀가 되어버릴거 같다. 참된 진실 앞에서 무기력해져버린 까마귀들을 떠나 난 진짜 종달새를 찾아 가려 한다. 나의 옷을 찢어버리고, 나를 보여주던 작은 플라스틱 쪼가리를 부셔버리련다. 내 목에 칼이 들어오고, 독수리가 또다시 나를 쪼고, 독수리가 매를 불러 나를 같이 쪼게 시킨다고 해도, 내 간과 눈이 파먹힌다고 해도, 사람들이 눈을 뜰 수 있게 만들 것이다. 독수리들이 가려왔던, 직시해야할 현실을 당신들에게 보여줄 것이다. 까마귀로 변해버린 위정자들과 떨어져, 나는 나만의 길을 갈 것이다. 잘 있어라, 까마귀들아.

 

 

 

 

 

 

 

 

 

 

 

 

 

 

 

 

 

 

 

 

 

학교 한글날 기념 글쓰기 대회때 썼던 글입니다.

괜찮게 쓴 글인지 아닌지

오유분들께 평가 한번 받고 싶어서올립니다.

어떤지 모르겠네요;; 제가 써놓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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