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아직 젊었을 때에는 내가 나 아닌 다른 존재가 될 수 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다시 말하자면 카사블랑카에 바를 열고 잉그리드 버그만과 친구가 되는 일도 가능하다고 생각한 적이 있었다. 그리고 좀 현실적으로 나의 자아에 어울리는 더 유익한 삶을 손에 넣을 수 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그것을 이루기 위해서 나를 바꾸기 위한 훈련까지도 했다. [녹색혁명]도 읽었고 심지어 [이지 라이더]와 같은 영화는 세 번씩이나 보았다. 그러나 나는 매번 마치 방향키가 부러진 보트처럼 똑같은 자리로 되돌아 왔다. 그것은 또 다시 '나'였다. 나는 그 어디에도 가지 않았다. 나는 언제나 그 자리에 머물면서 내가 돌아오기를 기다리고 있었던 것이다. 그것을 절망이라고 불러야 하는 것일까? 알 수 없는 일이다. 그래, 절망인지도 모른다. 투르게네프라면 환멸이라고 부를지도 모르고 도스토예프스키라면 지옥이라고 부를지도 모른다. 서머셋 모음이라면 현실이라고 부를지도 모른다. 그러나 누가 그 어떤 이름으로 부르든 간에 그것은 결국 나 자신이다. - 무라카미 하루키 BGM - La Noyee(Yann Tiresen) 2007년 6월 10일 일기에서 발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