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시판 즐겨찾기
편집
드래그 앤 드롭으로
즐겨찾기 아이콘 위치 수정이 가능합니다.
베오베에 여친 임신한 만화 그리신 분..보시려나?(스압)
게시물ID : humorbest_383389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사르트르
추천 : 251
조회수 : 17958회
댓글수 : 3개
베스트 등록시간 : 2011/08/30 15:22:58
원본글 작성시간 : 2011/08/30 14:50:57
보셨으면 좋겠습니다....

당신이 그리신 만화를 보고 마치 몇 년 전 제 이야기를 보는 것 같아 가슴 한켠이 뭉클했습니다.

제가 여자친구를 만났을 때가 4년 전쯤이었습니다.

그때 저는 전문대를 졸업하고 커피숍 아르바이트나 깨작거리면서 편입한다고 부모님 돈 뜯어내면서 실상 피시방이나 전전하고 다니는 반백수였습니다.

커피숍에서 일을 하다가 새로 일하게 된 아르바이트 생을 만나게 되었죠.

나이는 20살. 지방에서 살면서 서울에서 자취하고 자기 용돈 자기가 벌어쓰겠다고 아르바이트 하는 착한 여자아이였죠. 

첫 인상도 참하고 귀여웠고 손님들한테 싹싹하기도 하고, 또 일도 솔선수범해서 잘 하더라구요.

늦은 시간까지 아르바이트 하는 것이 안쓰럽기도 하고 집떠나와 이렇게 타지에서 고생하는 꼬맹이가 참으로 대견하더군요. 저는 그 여자아이가 저녁도 못먹고 일하는 모습이 안타까워서 같이 김밥도 사다 먹고 집까지 바래다 주기도 했습니다.

그 친구 자취하는 집이 이문동이었고 저희 집이 망우동이었습니다. 

매일 그 친구를 바래다 주고 저는 버스가 끊겨 이문동에서부터 집까지 걸어오곤 했습니다.

그 친구는 저한테 고맙다고 제가 집 도착할 때 까지 같이 통화도 해줬구요.

택시를 탈 수도 있었지만 호주머니에 백원짜리 몇개 딸그랑 거리는 제 신세에 택시는 사치였고 달밤에 운동삼아 걷는다는 생각으로 이화교를 건너다녔습니다.

그렇게 저희는 사랑하게 되었고 매일 아르바이트도 같이 하고 주말에 데이트도 하면서 연인관계로 발전했습니다.

세상물정 모르는 20살인 그 친구와 백수도 백수도 이런 상백수도 없을 것 같은 저는 그래도 서로 의지하면서 사랑을 키워갔고 사귄지 100일 정도가 지났습니다.

여자친구는 겨울방학을 맞아서 지방의 집으로 내려갔고 저는 아르바이트도 그만둔 채 다시금 백수의 생활로 돌아와서 카오스나 끼적이는 신세가 되어있었죠.

이상하게 며칠 간 여친한테 연락이 없더라구요.

문자도 보내보고 전화도 해봤는데 연락도 안되고 뭔가 이상하다는 낌새가 들었습니다.

"혹시...집에 내려가서 다른 남자 만나는 건 아닌가?"
"헤어짐의 징조일까?"

별별 생각이 다 들었지만 그래도 조금만 더 기다려 보기로 했습니다.

결국 일주일 정도 지나서 여친한테 연락이 왔습니다.

"오빠. 저 임신한 것 같아요"

이 뒤로는 만화 그리신 님께서 경험하셨던 것과 동일합니다.

지워야 겠다는 마음을 굴뚝 같았지만 병원갈 돈도 없었을 뿐 더러

불안한 가운데 벅찬 듯한 말투로 이야기 하는 여친 앞에 대놓고 지우자고 할 수도 없었습니다.

그렇게 결단을 내리지 못한채 하루 하루 지났고

여친이 서울에 올라오고 나서 만나게 되었습니다.

여친의 배는...벌써 상당히 불러와 있더라구요.

그렇습니다. 임신한지 꽤나 오래 지난 것이었죠.

여친이 원래 생리가 굉장히 불규칙한데다가 우리도 피임을 철저히 했기 때문에

임신했을 거라고는 상상도 못했고 그 흔한 입덧이나 임신초기 증상을

여친이 전혀 느끼지 못했기 때문에 임신 4개월이 되서야 그 사실을 알게 된 것이죠.

많은 분들이 저랑 여친보고 미련하다는 둥, 어떻게 그걸 배가 불러오고 나서야 알게 됐냐는 둥

많은 질타를 하셨지만... 방학기간이라 떨어져 있었고 어쨌든 전혀 몰랐던 상황이었습니다.

병원에서 임신 18주 진단을 받고 낙태는 불가능하다는 말도 들었습니다.

저는 점점 "이 아이..절대 낳아야 겠다" 라고 마음을 먹었고

다급한 마음에 이곳 저곳 이력서를 찔러 넣게 되었습니다.

몇몇 군데에서 연락이 왔고 다행히 작은 회사에 취업하게 되었지만 

당장 통장에 잔고가 0원인지라..뭘 어떻게 할 수 조차 없었습니다.

저는 돈을 미친듯이 모으기로 했고 먹을거 입을거 포기하고 

친구들도 안만나고 오로히 집 회사 여친집만 오갔습니다.

집에 와서 잠자리에 누으면 오만감정들이 교차했고 앞으로 어떻게 살아야 할지 막막하기만 했습니다.

님께서 그려주신 만화 속에 있는 내용들, 감정들과 다 똑같았습니다.

어쨋든 우리는 아이를 먼저 낳고 식을 올리기로 했습니다.

그래도 아이가 막상 태어나고 나니 저희 집이나 처가집이나 모두 속상했던 기분들이 풀어지는 것 같았습니다. 

양쪽 어르신들의 도움을 받아 주변 지인들, 친구들만 불러 아주 소소하게 결혼식을 올렸습니다.

그리고 지금은 우리 세 식구 단란하게 살고 있습니다.

전문대 졸에 박봉인 회사에서 일하면서.. 돈에 쪼들리고 정말 사는 것이 막막한 것은 그때나 지금이나 같습니다. 

하지만 우리 아들 생각, 와이프 생각만 하면 그래도 힘내서 살아야지 하는 생각이 듭니다.

저는 남들처럼 와이프 임신했다고 맛있는거 한 번 못사줬습니다.

태교도 한 번 못해줬습니다.

속상하게 하고 힘들게만 했구요.

남들 다 한다는 기형아 검사, 산모 영양제, 철분제, 

아이 낳고 다들 한다는 임산부 요가, 고급 산후조리원..

정말 아무것도 해준게 없습니다.

늘 죄인이라는 생각 속에 살고 있습니다.

그런 생각들이 모두 저에게 살아갈 원동력이 되어주더군요.

(지금은 이렇게 회사에서 농땡이 피우면서 오유나 하고 있지만.^^;;)

그래도 제가 우리 부모님, 우리 와이프, 처가집, 우리 아들에게 지은 죄도 많고

또 퇴근하면 저만 기다리고 있는 식구들 생각에 늘 행복하기도 하답니다.

서론이 엄청 길었습니다. 죄송합니다. 쓰다보니 그때 생각이 자꾸 나서 와이프랑 아들한테 미안해지고 그래서 주저리 주저리 길어졌네요.

님. 정말 옳은 결정 하신 겁니다.

지금은 내가 잘한 것인지..잘하고 있는 것인지..뭘 하고 있는 것인지 모르는 순간도 있으실 겁니다.

하지만 아주 조금만 시간이 더 흘러보면..정말 내가 태어나서 가장 잘 한 결정이었다.

라고 생각하실 겁니다.

앞으로 많이 힘드실거에요.

외적으로나 내적으로나...(특히 돈문제요~ 준비하지 않고 저지른일을 메우기란 생각보다 쉽지 않더군요)

하지만 잘 견디시리라 생각됩니다.

님께서 하신 결정이 정말 옳은 일이라는 것을 말씀드리고 싶었습니다.

또한 비슷한 일을 겪은 경험자로서 응원의 말씀을 전하고 싶습니다.

조언이니 뭐 노하우니 이런거 알려드리고 싶지만 저도 아는게 없어서..

그냥 잘하셨다고..힘내시라고 이말만 전해드립니다.

서로 사랑하면서..배려하면서 사세요. 

와이프 힘들면 청소기도 돌리고 빨래도 하고 설거지도 하시고

새벽에 아기 깨면 먼저 일어나서 도닥도닥 해주시고 

피곤하시고 힘들고 지치셔도 와이프와 아기 보면서 힘내세요.

그러면 언젠가 좋은 날 있지 않겠습니까?

이 글은 님에게 드리는 응원의 글이기도 하지만 

제가 제 스스로에게 다시 한 번 전하는 메세지입니다.

저도 지금 이 마음 변하지 말고 힘들어도 열심히 살겠습니다.

님도 꼭!! 행복하셔서 알콩달콩 이쁜 가정 꾸리시길 바랍니다.

이 글을 읽어 주실지...아니면 그냥 유게에 뭍힐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아마..뭍히겠죠. 하지만 어떻게라든 이 글을 읽으신다면...

당신은 훌륭한 남자라고 생각하고 어깨 펴고 사시길 바랍니다.


꼬릿말 보기
전체 추천리스트 보기
새로운 댓글이 없습니다.
새로운 댓글 확인하기
◀뒤로가기
PC버전
맨위로▲
공지 운영 자료창고 청소년보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