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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미없지만 제가 살아온 이야기좀 들어주실래요.?
게시물ID : humorbest_383456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kimsc9
추천 : 52
조회수 : 5586회
댓글수 : 5개
베스트 등록시간 : 2011/08/30 20:44:34
원본글 작성시간 : 2011/08/30 01:30:51
사실 저보다 더 힘든사람들이 수두룩 하다는거 잘알지만.. 그래도 한번씩 내 인생은 왜이럴까 이런생각이 들면 한없이 파고듭니다. 저희 부모님은 구로공단에서 만나셔서 저를 가지시고 결혼하셨는데요. 80년대 공단에 계신분들이 다그렇듯 저희 부모님은 가난하셨구요. 사실 결혼하신것도 제가 태어난것 때문이라고 보는게 맞을겁니다. 제가 5살인가 되던해에 결혼하셨습니다. 지금은 이혼한지 벌써 13년 정도 되셨지만요.. 아버지 어머니가 가난한상태에서 만나셨다고 해도 당시는 한국 경제가 발전할때라 그때 열심히 사셨더라면 지금 남 부럽지는 않아도 알콩달콩 하며 살수 있었겠죠. 그런데 저희 아버지는 TV에 단골로 나오는 술드시면 악마로 변하는 그런 스타일 이었습니다. 또 거기다가 술을 너무 좋아해서 2~3일에 한번씩은 꼭 드셔야 했으며 또 한번 드시면 무조건 끝장을 봐야 했죠. 전 어렸을때부터 너무 시달렸습니다. 저희집에는 저와 또 4살터울인 여동생 하나가 있었는데 특이했던게 아버지는 저에게 대하는것과는 다르게 여동생은 아주 끔찍이도 아꼈습니다. 술에 진탕취해서 새벽2~3시에 들어와서는 꼭 초등학생인 저를 깨워서 새벽 5~6시 자신이 지쳐서 쓰러져 잠이 들때까지 저를 가부좌 틀어놓고 앞에 세워놓고 했던말 또하고 또하고 또하고 또하고.. 그와중에도 동생 깨니까 조용히 하라고 .. (반지하 단칸방 살았었습니다.) 이걸 2~3일에 한번씩 반복적으로 당했습니다. 정말 당시는 빠져나갈수 없는 지옥에서 사는것 같은 기분이었습니다. 맞기도 많이 맞았네요. 술취하고 와서는 기분나쁘다고 때리고 발로차고 집나가라고 패고 ..ㅋㅋ 아직도 기억나는게 초등학교 3학년땐가 악마로 변한 아버지를 피해 한밤중에 벌벌떨면서 어머니와 손잡고 어느 빌라 현관문 앞에 웅크리고 숨어있던것... 기억나네요. 추가로 기억나는게 있다면 웅크리고 있 던 빌라 현관문이 같은 반 친구 집이었더란거.. 그때 그 서러움과 창피함은 아직도 잊을수가 없습니다. 당시에 하던 생각이 'XXX는 저녁밥먹고 자고있을까? 아니면 부모님이랑 이야기 하고있을까? 나랑은 다르겠지? 나는 왜이럴까?' 그런데 부모님께 이런말 하긴 좀 그렇지만. 사람은 끼리끼리 만난다고 하죠.. 어머니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우리집은 희한했던게 아버지랑 어머니는 음주 패턴이 똑같았습니다. 2~3일에 한번씩 술을 마시고 한번 마시면 정신을 놓고 눈이 풀릴때 까지 마셔야 했다는점. 그런데 희한했던건 서로의 패턴주기는 달랐다는거죠. 즉 한번은 아버지가 취하고 난동부리고 살림부수면 어머니는 울면서 저희를 데리고 도망나오고 저희들한테 항상 너무 힘들다 살기싫다 이런소리를 들려주고 아버지가 제정신일땐 어머니가 만땅취해서 들어와서는 울고불고 밤늦게 외가에다 전화하고 ... 어린 저와 제동생에게는 하루 건너 하루가 술주정을 견디는것의 연속이었죠. 의식주도 굉장히 부실했었습니다. 아버지는 끈기가 부족해서 인지 하는일마다 얼마 못가 그만두고 놀고 다시 하면 얼마 안가 그만두고 놀고 (사실 술마시고 안나가 버린 경우가 더 많았습니다.) 그나마 어머니가 미싱을 하며 돈을 버셨지만 저희 어머니는 가족보다는 바깥사람들을 더 소중히 여기는 스타일 이셨습니다. 집 월세를 달달이 밀려도 항상 노래방비와 동네 아주머니들과의 술값은 가지고 계셨죠. 어머니한테 기억나는거라곤 술안드시고 집에서 쉬시는 날일땐 되게 우울해 보였다는거. 초등학교 5학년짜리가 어머니한테 "엄마 우울증있어?" 라고 물어봤으면 말 다한거죠. 술안취하고 집에 있을땐 살림은 커녕 얼굴에 죽을상만 가득해서 우울해 계시다가 하루종일 어디다 전화만 하던가 아니면 술마실 약속 잡고 나가서 노시는거.. 술마실 약속 생기면 아들 딸 내알바 아니고 바로 나가셨던게 기억이 나네요. 한번은 아버지가 일끝나고 제정신으로 귀가하셨는데 (술 안드시면 굉장히 가정적이셨음..) 어린 저와 제동생 둘이서 밥도 못먹고 쫄쫄굶으면서 저녁까지 있는걸 보고 눈 돌아갈뻔 하셨다고.. 어머니는 동네 친구분들과 노래방 가 계셨구요. 이 이야기 하니까 또 드는 서글픈 생각이 하나 있네요. 하루는 저희 집에서 동네 몇몇 이웃들이랑 파티(?) 식으로 술마시던 적이 있는데요. 그때가 아마 일요일 이었던걸로 기억합니다. 그림일기 였나? 토요일 일요일 숙제가 있었는데 솔직히 애들이 누가 잡아주지 않으면 숙제 안하잖아요. 그래서 저도 안하고 있었는데 한 저녁 8시인가 되니까 이웃중에 한 아주머니가 자기 아들한테 그러시더 라고요 "야 XX야 너 숙제 했니?" "아니" "야 숙제도 안하면 어떡해 언능 집에 가자 이노무 시키 숙제도 안하고 말도 안하고 있었네 내가 깜빡할뻔 했네." 그상황을 보다 저희 어머니를 보니 괜시리 씁쓸해지더라구요. 저희 어머니는 세상 살면서 가장 행복하고 빛나는 표정으로 술을 드시고 남들과 놀고 계셨거든요. 뭐 ..각설하고.. 그러다가 IMF되기 1년전인가 아버지가 공단에서 일하시다 정밀부품 등을 만드는 오목교 근처 조그만 공장단 지에 취직하셔서 일하시게 됐는데.. 당시 사장한테 월급 몇달치를 떼여서 월급을 달라고 했더니 사장이 제안을 하더랍니다. 그 제안이 우리집을 뒤흔들어 놓을 파격적인 제안인것은 당시에는 몰랐죠. 뭐 제안을 안받았어도 지금이나 별반 다를것은 없었겠지만요. 제안이 뭐였냐면 그때 그 사장이 월급을 퉁치는 대신에 가게를 넘길테니 운영해볼거냐고 했다더군요. 아버지는 처음으로 사장이 된다는 생각에 당연히 OK를 하셨구요. 저는 왠지 어린맘에 안하셨으면 좋겠 다는 생각이 막 들더라구요. 그냥 당시엔 아무이유없이.. 뭘알고 그랬던건 아니구요. 아무튼 저희 아버지는 그렇게 1인기업의 사장님이 되셨습니다. 그냥 물려받은건지 돈을 얼마를 더준건지는 모릅니다. 아버지가 이야기를 안하시니까요.. 그런데 잘풀렸으면 얼마나 좋을까요. 그놈의 IMF.. 하청의 하청업체수준이었던 저희아버지 가게는 말그대로 쫄딱망해버리고 저희 아버지는 술을 더 자주 찾으시게 됩니다. 술=악마 공식이 성립한다는건 위에 써놨으니 가정상태가 어떨지는 짐작이 되시겠죠. 결국 몇달만에 어머니는 가출해서 소식이 아예 끊어져버리고 저희집이 박살이 났다는 사실을 듣게된 할머니가 광주에서 올라와 저희가족을 전부 거두게 됩니다. 이게.... 할머니발목을 아직까지 잡고 있게 될줄은 그땐 아무도 몰랐겠죠. ... . . . . 쓰다보니 너무 기네요. 저녁에 갑자기 센치해져서 누가 내가 살아온거에 대해 공감해주고 같이 이야기 나눌수있었으면 좋겠다는 마음에 써볼까 했는데 다 쓰려니 너무 기네요. 볼 사람도 얼마 없을것같구... 만약 봐줄 사람이 있다면 더 쓰고 싶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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