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전문가 되고 싶었던 준혁에게
사랑하는 아들 준혁이에게.
엄마가 준혁이한테 편지를 쓰려고 하니까 왜 이리 눈물이 많이 나는지. 쓰다가 울고 쓰다가 울고를 몇 번 반복했는지 몰라. 하지만 내 새끼 보고 싶은 마음에 몇 자 적어 볼게.
4월15일 수학여행을 떠나던 아침 평소와 같이 “다녀오겠습니다” 하고 가는 너를 끌어당겨 꼭 안아주면서 “선생님 말씀 잘 듣고 친구들과 좋은 추억 많이 만들어 오라”고 했는데, 그게 마지막이 될 줄은 몰랐어.
4월18일, 잊을 수 없는 그날. 우리 준혁이는 잠자는 모습으로 예쁘게 엄마, 아빠에게로 왔지. 예쁜 모습으로 어디 한군데 다친 데 없이 곱게 왔지. 흔들면 일어날 것 같았는데, 만지지도 못하게 하고 그저 쳐다만 봐야 한다고 했지.
천사가 된 우리 아들, 친구들과 잘 지내고 있지? 예쁜 모습으로 갔으니 예쁘게 잘 있는 거지? 아들, 엄마 보고 있지? 아빠랑 주희, 준석이 다 보고 있지? 아빠는 힘들어도 내색하지 않고 열심히 일하시고, 주희는 키가 많이 컸고, 여전히 까칠해. 준석이는 형아가 보고 싶어도 말은 못하고, 형아가 엄마한테 어깨동무한 걸 해보겠다고 작은 키로 애를 써.
며칠 전 준혁이 주민등록증을 만들었어. 명예주민등록증 만들어준다고 해서 만들러 갔는데 많이 망설였어. “그까짓 거 있으면 뭐해, 우리 준혁이가 없는데” 하고 고민하다가 나중에 후회할까 봐 만들었어.
아들아, 날씨가 꽤 추워졌어. 따뜻한 봄날 수학여행을 갔는데 추운 겨울이 와도 아직도 여행 중이네. 엄마, 아빠가 만나러 갈 때까지 기다리고 있어. 듬직하고 사랑하는 우리 집 장남, 영원히 사랑해.
안준혁군은
단원고 2학년 4반 안준혁(17)군은 요리하는 것을 좋아했다. 중학교 1학년인 여동생과 초등학교 5학년인 남동생을 돌보다가 생긴 취미였다. 준혁이는 맞벌이하는 엄마, 아빠가 집에 없으면 동생들에게 이것저것 음식을 만들어 줬다. 빈대떡과 다양한 재료를 넣은 라면 등 독창적인 요리를 만들었다.
준혁이는 어릴 적부터 동생들을 돌본다면서 밖에 놀러다니지도 않았다. 엄마가 집에 돌아오면 학교에서 있었던 일을 이야기하며 수다를 떨었다. 준혁이는 고등학생이 된 뒤 중국에 대한 관심이 많아졌다. 엄마에게 “중국에서 일할 기회가 많아진다고 하던데, 중국어를 배워볼까”라고 말했다.
기다리는 동생들이 걱정스러웠을까, 준혁이는 숨진 단원고 학생들 가운데서는 두번째로 빨리 물 밖으로 나왔다. 준혁이의 장례식은 4월20일 경기 안산 제일장례식장에서 치러졌다.
김일우 김기성 기자
[email protected] 그림 박재동 화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