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금손’ 약사 꿈꾸던 아라에게
하루라도 보지 못하면 살기 힘든 아빠가 아라에게.
이 세상에서 보물 1호였던 아라인데, 하루아침에 생각지도 못한 끔찍한 사고로 고통 속에 죽어간 우리 딸을 생각하면 가슴이 막히는구나. 아빠가 이 세상 떠날 때까지 곁에서 살 줄 알았는데. 딸이 있어서 든든했고 친구들이 자식 자랑할 때 기죽지 않았지. 길거리에서 예쁜 여학생들을 보면 “우리 딸에 비하면 별거 아닌데”하면서 부러워하지도 않았는데.
학교에 가면 선생님이 “아라가 아버님을 많이 닮았네요”하면 아빠는 기분이 으쓱하고 어깨에 힘도 들어갔는데. 선생님한테 딸에 대한 칭찬을 들으면 세상 다 얻은 듯 안 먹어도 배부르고 일을 해도 힘들지 않았는데.
이제는 아라가 없으니 아빠도, 엄마도, 오빠도 다 힘들다. 살아야 할 이유도 없고 장래의 목적이 없어졌다. 그저 목숨만 붙어 있는 가족이 되었구나. 아라가 숙녀가 되어 짝을 만나게 되면 “내 딸 잘 부탁하네”하며 술 한 잔 권하려고 담가놓은 10년이 넘은 인삼주는 아직도 그대로 있는데 이걸 누구한테 줘야 하나.
아빠는 네 또래의 아이들을 보면 고개를 돌렸다가도 너를 닮았으면 자세히 보기도 한다. 엄마는 아직도 딸의 죽음을 인정하기 싫은 듯 딸이 어딘가에 살아 있을 거라고 여기저기 찾아다니곤 했단다. 잊을 수 없는 일이야. 더 사랑받고 신나게 살아야 할 우리 딸인데, 왜 이렇게 어처구니없게 헤어져야 하는지 이해가 안 간다.
비록 몸은 떨어졌지만 영혼은 통한다고 생각한다. 언제든지 아빠, 엄마 보고 싶으면 꿈속에서 나와 너의 모습을 보여줬으면 해. 미안하다. 꼭 너의 억울함을 풀어줄게. 끝까지 끈질기게 싸울 게. 잠시 하늘나라에서 천사로 있다가 다시 내 딸로 태어나서 못 받은 사랑 더 받아야지.
김아라양은
‘황금손’
단원고 2학년 9반 김아라(17)양이 초등학생 때부터 책상에 써 붙인 글이다. 아라는 약사가 꿈이었다. 아픈 사람을 낫게 해주는 ‘황금손’이 되겠다고 늘 말했다.
아라는 학원에도 거의 다니지 않았지만, 공부를 잘했다. 특히 대학 때 화학을 전공한 아빠와 영문학을 전공한 엄마의 영향을 받아서인지, 과학과 영어를 잘했다. 아빠는 집에서 아라에게 태양계나 원소기호 등 과학과 관련된 이야기를 많이 해줬다. 아라는 머리가 좋아서 아빠가 가르쳐주는 것을 금방 이해했다. 중학교 때부터 영어 웅변대회에 나가 상도 많이 타왔다.
6살 많은 오빠를 둔 아라는 착하고 성실한 막내딸이었다. 말썽도 안 부리고 자기 할 일은 알아서 했다. 비싼 옷이나 화장품을 사달라고 부모를 졸라본 적이 없었다. 주말에는 친구들에게 영어를 가르쳐주기도 했다.
아라는 세월호 참사 7일 만인 4월22일 가족의 품에 돌아왔다. 지금은 같은 반 친구들과 함께 경기 평택 서호추모공원에 잠들어 있다.
김일우 김기성 기자
[email protected] 그림 박재동 화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