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이삼촌의 작가 현기영 ⓒ 오마이뉴스 노순택
1979년 제주 4·3을 다룬 소설이 나왔습니다. 현기영 작가의 '순이삼촌'입니다. 그런데 작가는 순이삼촌을 썼다는 이유만으로 신군부에 의해 보안사에 연행돼, 남산 서빙고에서 사흘 동안 온갖 모욕과 구타를 당했습니다. 그리고 그 후에 순이삼촌은 불온서적으로 금서가 됐습니다.
(참고로 제주에서 '삼촌'은 동네 아주머니,아저씨를 지칭하는 것처럼 동네 먼 친척이나 가까운 이웃을 말합니다. 남녀 구분 없이 사용하기 때문에 순이 삼촌도 주인공의 이웃 아주머니를 말합니다. 순이삼촌은 제주 4·3 학살에서 구사일생 살아남아 정신적 후유증으로 앓다 스스로 목숨을 끊은 가슴 아픈 이야기이자, 국가 권력에 의해 어떻게 한 인간의 영혼이 파괴되는지 보여주는 소설입니다.)
대한민국에서 제주 4·3을 표현한다는 것은 국가보안법으로 엄히 다스릴 범죄였으며, 이는 수십 년 동안 제주 4·3을 말할 수 없는 이유 중의 하나였습니다.
2000년 제주 4·3 도민연대는 '연좌제 피해관련 설문조사'를 했습니다. 그 당시 놀랍게도 응답자의 86%가 연좌제 때문에 피해를 봤다는 결과가 나왔습니다. 신원조회는 물론이고, 일상생활에서의 감시, 사관학교와 공무원 임용시험 등에 피해를 겪었다는 이 설문 조사가 2000년까지 나왔던 결과는 제주 4·3이 얼마나 제주도민들을 족쇄처럼 끈질기게 따라다녔는지를 보여줍니다.
제주 4·3을 조사하면 할수록 이것은 만행이자 학살이라는 결론밖에 내릴 수가 없었습니다. 어린 젖먹이들이, 초등학생,중학생 아이들이 그리고 여자와 할아버지, 할머니들이 무슨 죄가 있길래 죽창에 찔러 죽어야 했는지, 아직도 이해할 수가 없습니다.
저들이 어떤 사상을 가지고 있었기에 죽어야만 했는지 아무도 말하지 않습니다. 오직 그들을 빨갱이라고만 부를 뿐이었습니다.
빨갱이 새끼……그렇다. 나는 사람들이 침뱉고 발길질하고
그리고 아무나 찢어죽여도 좋은 빨갱이 새끼였던 것이다.
나는 왜 빨갱이 새끼로 태어났을까.
그때처럼 아버지가 미웠던 적도 없다.
아버지는 어쩌자고 사람들이 침뱉는 빨갱이 가 되어가지고
하나밖에 없는 아들을 풀기빠진 헛바지처럼 주늑들게 만드는것일까...
(김성동, 「엄마와 개구리」중에서)
' 아직도 끝나지 않은 상처'
제주 4·3 관련 자료를 찾다 보니 옛날 신문에서 이런 기사를 하나 찾아냈습니다.
ⓒ 김기삼
1992년 다랑쉬굴에서는 처음으로 11구의 유해가 발굴되었습니다. 이 당시를 증언했던 생존자의 말에 따르면 이 다랑쉬굴에는 구좌읍 주민들이 토벌대를 피해 숨어 있었습니다. 그들을 향해 토벌대는 수류탄을 던졌고, 그 이후에는 굴 입구를 향해 불을 지르고 돌을 갖다가 동굴 입구를 아예 막았다고 합니다.
이곳에 묻힌 구좌읍 주민은 대부분 여성이었고, 그 가운데는 7살짜리 아이도 있었다고 합니다.
제주공항이 보이는 벌판에 제주 4·3 당시 학살당한 양민을 발굴했던 시점의 사진입니다. 저 멀리 제주공항이 보이고 포크레인을 동원한 대규모 발굴에서 수백 구의 유골이 나왔습니다.
문제는 아직도 제주 전역에 이렇게 발굴되지 않은 유골들이 얼마나 많은지 모른다는 점입니다.
불과 김대중 대통령이 있었던 시기에도 제주 4·3이 해결되지 않아 제주도민들은 돈을 모아 특별법을 제정해달라고 눈물로 호소했습니다. 이런 아픔과 한을 풀어준 사람이 바로 김대중,노무현 대통령이었습니다.
"제주4·3사건 진상규명 및 희생자 명예회복을 위한 특별법"이 1999년 제정됐고, 2003년 노무현 대통령은 '국가 권력에 의해 저질러진 잘못은 반드시 정리하고 넘어가야 한다'라며 제주도민에게 공식 사과를 했습니다.
이런 두 대통령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아직도 우리 사회에서는 제주4·3을 빨갱이들의 반란이라고 부르는 자들이 여전히 존재하고 있습니다.
"1948년 4월 3일, 제주도에서는 '공산주의 세력이 주도한 폭동(communist-led rebellion)'이 발생하여 여러 해 동안 지속되었다." (이영조 전 새누리당 후보, 전 진실화해위 위원장)
새누리당의 박근혜 위원장을 박정희 독재의 유산이라고 부르자, 연좌제라고 들고 일어서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연좌제는 억울한 일을 당한 사람이 말하는 것이지, 어찌 독재자가 국민에게 뺏은 재산과 정치 유산을 가지고 살아가는 사람이 입에 올릴 수 있습니까?
새누리당 박근혜 위원장은 제주에서 겨우 50분만 있다가 갔습니다. 한명숙 민주통합당 대표는 오늘 제주4·3 평화공원에서 열리는 위령제에 참석합니다. 누가 제주도민의 아픔을 이해하고 있는지는 뻔한 사실입니다. 그녀에게는 이명박 대통령처럼 제주4·3 위령제에 올 마음도 필요성도 못 느낍니다. 그것은 그들이 빨갱이 타령으로 정권을 유지하는 속성을 가진 자들이기 때문입니다.
[정치] - 제주도 4.3 사건 위령제가 무서워 가지 못하는 대통령
"한 공동체가 멜싸지는데 가만히 있을 수 있는가 말이야. 이념적인 건 문제가 아니야. 거기에 왜 붉은 색을 칠하려고 해? 공동체가 무너지고, 누이가 능욕당하고, 재산이 약탈당하고, 아버지가 살해당하고, 친구가 고문당하고, 씨멸족하는데, 이런 상황에서 항쟁이란 당연한 거야. 이길 수 없는 상황이라고 해서 항복하고 굴복해야 하나? 이길 수 없는 싸움도 싸우는 게 인간이란 거지. "(현기영 작가)
노무현 대통령은 용서와 화해를 말하기 전에 억울하게 고통받은 분들의 상처를 치유하고 명예를 회복해 주어야 하며, 이것은 국가가 해야 할 최소한의 도리이자 의무라고 말했습니다.
박근혜 새누리당 위원장은 제주도민의 상처와 아픔을 치유할 마음이 없는 사람입니다. 왜냐하면, 그의 아비가 이승만처럼 독재권력을 휘둘러 자신의 권좌를 지켰던 인물이기 때문입니다.
▲ 박정희 군사정권이 증거인멸을 위해 파괴한 백조일손지지 묘비의 파편들. 출처:http://blog.ohmynews.com/rufdml
제주에는 조상이 다른 일백 서른 두 명이 죽어 뼈가 엉키어 하나가 되었으니, 조상은 일백 서른 둘이요 자손은 하나다'라는 의미로 '백조일손지지'(百祖一孫之地) 라는 말이 있습니다. 그것은 한동네 사람들이 한꺼번에 학살당했던 그 아픔이 고스란히 전해지는 단어입니다.
대통령을 잘 만나면 수십 년간 빨갱이로 몰렸던 억울함이 풀리고, 대통령을 잘못 만나면 멀쩡한 국민이 빨갱이로 둔갑돼 죽창에 찔려 죽고, 불에 타 동굴이나 구덩이에 묻힙니다.
역사가 알려준 이 교훈을 제주도민들은 이번 총선과 대선에서 절대 잊지 말아야 할 것입니다. 제주4·3 희생자들의 명복을 빕니다.
출처 : 아이엠피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