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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주권 버리고 군입대해서 겪은 썰 품. - 자대편
게시물ID : military_38558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돼지오빠)=
추천 : 13
조회수 : 1997회
댓글수 : 15개
등록시간 : 2014/02/15 00:06:29

영주권 버리고 군입대해서 겪은 썰 품.


전편 : http://todayhumor.com/?bestofbest_100673



본인은 올해 33세 남성임. 여자친구가 생겼다가 안생겼으므로 계속해서 음슴체 씀.



꿈의 17사단. 하나님께서는 가나안 땅을 가리켜 ‘젖과 꿀이 흐르는 땅’ 이라고 하셨고, 대한민국 남성들은 17사단을 가리켜 젖과 꿀이 보급되는 꿈의 부대라 칭하였으니, 새롭게 취임한 백골 출신 사단장, 이에 야마 돌아가시어 이윽고 대대적인 개혁에 착수 했으메 현재의 ‘환장의 17사단’ 으로 재개장 하는 밑거름이 되었음.


17사단은 더 이상 꿈의 사단이 아니였음. 17사단의 부대마크가 ’17시 칼퇴근’을 뜻하는 조롱거리로 불렸지만, 제 2 신교대(제 2 신병교육대대=훈련소)가 창설되면서 훈련병들은 제 1 신교대를 마치면 제 2 신교대로 이동하여 특전사 방불케 하는 강도높은 훈련을 받게 된 것임. 1 신교대는 기존의 신병교육을 그대로 유지하되, 제 2신교대는 기본적으로 훈련병들의 체력향상에 초점을 둔 훈련을 했는데, 예를들어 이동시에 25킬로 군장을 매고 한다던지, 군장을 매고 매일 4km 급속구보행군, 3km 구보(달리기)를 한다는 말만 들어도 눈앞이 먹먹하고 손발이 저려옴.


훈련소 뿐만이 아니였음. 실제로는 17시 이후에도 늦은밤까지 ‘흡혈모기 군단’과 사투하며 연대장 또는 대대장 취임 시에 행하는 열병식 연습을 하기도 했으며 온갖 훈련의 판타지와 전우들의 비명이 난무하는 환장의 요술사단이 되어 있었던 것임. 




그러나 본인에게 만큼은 정말로 꿈의 17사단이었음…


그 꿈의 시작은, 본인이 제 2신교대 개장 단 몇주전에 훈련을 마치게 된 것으로 부터 시작함. 거의 마지막 제 1신교대 출신이었던 것임. 



자대의 ‘불당’에서 3일 신병 대기 후, 면담을 위해 소속중대의 행정보급관 실로 이동하게 됐음. 철제 슬레이트로 된 지붕에 조립을 한 듯한, 약간 엉성해 보이는 부대였음. ‘이런곳에서 어떻게 생활을 할까’ 라며 속으로 푸념했지만, 이 부대가 그나마 좋은 부대라는 것을 뒤늦게 깨달았음. 어쨌든 4명의 신병이 행정보급관 실로 이동하여 보급관님과 면담을 하게 됐음. 보급관님은 30년 짬밥의, 주임원사의 ‘명령’도 단칼에 거절해 버리는 우리 연대 내 막강한 실력자였음. 당시 원사 진급을 눈앞에 두고 있었던 사람이었음. 당시 일병, 이병의 계급도 헷갈려 하던 판에 원사는 뭐고 상사는 뭔지 관심도 없었지만, 정작 나를 놀라게 만든것은 보급관님의 나이였음. 첫 인상을 60대 정도로 보았으나, 실제나이 50대 초반이라는 말에 경악을 했음. 군대 생활이 얼마나 힘들기에 저렇게 되셨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음.


각설하고, 보급관님은 3명의 동기를 차례대로 면담했고, 이제 내 차례였음. 보급관님이 갑자기 동기 3명을 나가보라고 함. 동기 3명은 나가고 나와 보급관님의 숨막히는 맨투맨 면담이 시작됐음. 보급관님은 고개를 숙이고 한숨을 내 쉬면서 자신의 거친 손으로 이마를 짚으며 


“하아… 너…… 왜 왔냐?”


이러는 것이었음. 본인, 살짝 당황함. 오지 말아야 할 사람이 왔다는 듯한 뉘앙스로 말하니, 당황스러웠음. 사회에서는 이런 물음에 아무말 하지 않아도 되긴 하지만, 여긴 군대였고, 간부의 말 한마디 한마디에 ‘각’을 넣어 대답해야 했음. 훈련소 조교들에게 그리도 호되게 당하지 않았던가.


“한국에서 하고 싶은 일이 있어 입대했습니다.”


“하고싶은일..? 뭘 하고 싶은데?”


본인은 소신껏 주절주절 이런저런 이야기를 꺼내놨음. 보급관님은 고개를 끄떡이면서 내 이야기를 들으며 중간에 담배를 꺼내 피웠음. 가느다란 담배, 에쎄였음. 내 이야기가 끝나고, 수 십초간 침묵과 함께 담배를 태우더니


“내가 말이야.. 너 같은 놈을 경험한 적이 있다… 맥시코에서 온 놈이었는데…….”


보급관님은 찌푸린 얼굴로 이야기를 이어나갔음. 맥시코 영주권자였던 그 한인 청년은, 암 말기 환자였던 아버지의 소원에 따라 군입대를 하게 된 것이었음. 아버지는, 아들에게 강인한 체력과 정신력, 모국에 대한 애국심을 키워주고 싶어, 아들을 설득하여 군복무를 하게 했었던 것임.


“처음엔 그녀석이 한국말도 제대로 못하고 어리버리해서 내가 관심있게 지켜 본 녀석이었지..”


본인은 묵묵히 보급관님의 이야기에 귀를 세우고 있었음.


“그리고 그녀석이 백일 휴가를 받던 날…”



전편에서 이야기 했지만, 영주권자는 군 입대시 ‘혜택’이 있었음. 가고싶은 부대를 찍어서 갈 수 있는 혜택 같지도 않았던 혜택과 전편에선 언급하지 않은, 영주권을 유지하기 위한 ‘정기 휴가시, 해당국가로 휴가’를 갈 수 있는 혜택이 있었음. 다른나라는 모르겠지만 미국의 경우, 영주권자는 6개월 이상 국외(미국 외) 체류시 영주권이 박탈 될 수 있었기에 국가에서 영주권자들을 군대로 끌어들이려면 그에 상응하는 ‘당근’이 필요했던 것 같음. 이에따라 영주권자는 백일(신병) 및 각 정기휴가 시, 무조건 14박 15일의 해외휴가 특혜를 받을 수 있었고, 왕복 비행기삯도 국가에서 지원해 주었음. 그 비행기삯은 묻지 마시길. 혈압올라 쇼크사 할 수도 있음. 엑설런트 인 플라이트? 좃또마떼, 엑설런트 인 프라이스다. 

(참고로 본인은 이런 특혜에 대해 전혀 모르고 입대 했음)


계속 이어지는 보급관님의 썰


“백일 휴가로 맥시코로 떠나곤, 그 후로 돌아오지 않았다.”


본인은 약간 놀랐음. 무장탈영 사례는 수 차례 들어봤지만, 해외탈영 사례는 처음 들어보기 때문이었음. 담배를 다 태운 보급관님은 다시 가느다란 에쎄를 한개피 더 피우시며 이야기를 이어나갔음.


“내가 그 새끼 때문에 얼마나 마음 고생한 줄 아냐? 내 사비 털어서 비행기표도 사줬는데 감히…튀어?”


비행기 삯을 국가에서 전액 지원해 주었지만, 당시 맥시코 청년은 절차상 오류로 휴가를 앞두고 티켓 발권이 안 되어 발을 동동 구르고 있었다함. 겉으로는 투박하고 성질 더럽게 생기신 보급관님이었지만 마음만큼은 정말 여린 분이시라, 보다못해 사비를 털어 그녀석 비행기 삯을 지원해 주신 것이었음. 


본인은 입을 굳게 다문 채, 보급관님의 시트콤 같은 스토리에 빠져들고 있었음.




“그 니미랄 개씨발새끼! 그렇게 도망가서… 내가 말도(스패니쉬) 모르는데 맥시코로 전화걸어서 그 새끼 위치 추적하려고 얼마나 애를 썼는데….”




보급관님은 초 흥분한 상태에서 분노로 가득한 이글거리는 눈빛으로 나를 뚫어져라 바라보면서 계속 이야기를 했음. 마치 내가 보급관님의 인생에서 제 2회 해외탈영병이 될 것이라는 확신에 찬, 그 눈빛으로…


흥분을 가라앉힌 보급관님 왈





“그 놈의 자식, 그렇게 떠나서 자기 아버지 장례식에도 못왔어. 들어오면 잡혀갈텐데 어떻게 오겠어.. 그래서 내가 대신 조문을 갔지.. 최근에 소식을 들었는데, 맥시코에서 결혼해서 잘 살고 있다더라..”




맥시코 청년의 아버지는 한국에서 투병생활을 하다 돌아가신 것이었음. 장례식에도 못 오는 아들.. 뭔가 슬펐지만, 결혼해서 잘 살고 있다는 말에 홀딱 깨버림. 나중에, 이렇게 탈영과 같은 사건 사고가 발생하면 부대의 최고 책임자들은 진급심사에서 상당한 불이익을 받게 된다고 들음. 맥시코 청년 해외탈영 사건은 보급관님의 군 생활에 있어서 히로시마 원폭투하급 데미지를 입힌 것이었음. 


보급관님의 이야기는 끊이지 않고 계속 이어짐.


“그리고 말이야.. 두 달전에 너랑 동갑내기 상병녀석이 있었는데, 이새끼도 탈영했어.. 일도 잘하고 군생활도 잘 해서 탈영했다는 소식에 중대장님과 나는 처음에 믿지도 않았지.”


나와 동갑내기였던 이 에이급 상병친구는 탈영 6개월만에 체포됨. 본인이 행정반에서 체포소식을 라이브로 듣게 되었음. 탈영 이유인 즉, 아내가 자식 둘을 버리고 도망가서 … 음.. 잘 기억이 나지 않는 관계로 여기서 끊겠음. 나머지는 오유인들의 상상에 맡김. 어쨌든 탈영을 했었고, 이는 보급관님의 군생활에 나가사키 원폭투하급 데미지를 입힐 뻔한 사건이었던 것임.  


그런데 본인은 저 둘의 위험요소를 한 몸에 다 갖추고 있었던 완전체 핵폭탄이었던 것임. ㅎㅎ 해외영주권자 + 나이 30세. 마치 애플이 iPod + iTunes 카피(광고문구)로 전세계 휴대용 MP3 플레이어 시장의 72%를 장악한 위력과 같이, 해외영주권자 + 나이 30세 라는 카피는 보급관님의 인생에 있어서, 그것도 ‘원사’로의 진급심사를 코 앞에 둔 군인에게 ‘짜르봄바’ 급 핵폭탄의 위력을 선사 할 지도 모르는 것이었음. 날 보자마자 내 쉰 그 한숨은, 햇볕이 따사롭게 비추던 자신의 앞날에 뜬금없는 핵폭탄의 검은 버섯구름이 드리워지는 것일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의 비언어적 표현이었던 것임. 


“너, 미국으로 휴가 갈거지?”


보급관님의 분노에 찬 눈빛은 사라지고 내 눈치를 보는 듯한 뉘앙스로 나에게 물었음. 


그런데 본인은 애초부터 ‘미국에 다시는 돌아가지 않겠다’ 라는 배수진을 치고 군입대를 한 것이었음. 한국에서 하고싶은 그 일 때문에 절대로 돌아갈 수 없었음. 그런데 뜬금없는 14박 15일 해외휴가라니… 견물생심이 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음. 나이 30세에 내발로 군입대 할 줄 그 누가 알았으며, 반대로 여차하면 정말 제 2회 해외탈영병이 될 지도 모를 일이었음. 그래서 본인, 뜬금포 작렬 가라사대


“저는 미국으로 휴가 안 갑니다. 서울 할머니 댁에 있겠습니다” 


라고 보급관님 면전에서 선언해버림. 실제로 신병위로휴가 기간을 놓쳐, 미국으로 입국을 못한다면 상기한 ‘6개월 규정’에 따라 영주권 자동 박탈 됨. 그 후로는 미국에 가고싶어도 당시 가지고 있었던 여권으로는 출국조차 불가능 했음. 일단 ‘신병위로해외휴가’를 날려버리면 그 후는 불가항력으로 미국에 갈 수 없게 되니, 타오르는 번뇌를 지혜의 바람으로 소멸시키는 이른바 열반의 경지에 오르는 체험을 할 수 있는 아.. 아주 좋은 기회였음 ;_;


그러나 우리 보급관님, 30년 짬밥 드시면서 산전수전공중전 전부 다 겪어본 사람이었고 내 말에 피식하고 웃으시더니 


“내가 30년 군생활 했다. 이런저런 애들 다 겪어봤고, 전역 후 찾아뵙겠다는 녀석들도 있었는데 한 놈도 안오더라. 그런데, 너랑 나랑 초면인데 내가 네 말 믿을거 같냐?”


“그럼, 어떻게 하면 믿으시겠습니까?”


난 보급관님의 눈을 뚫어져라 쳐다보며 굳은 결의를 한 척, 말을 꺼냈음. 보급관님과 나의 아이컨택이 침묵속에서 수 십초 동안 이루어졌고 이내, 침묵이 어색해서인지 아니면 본인의 말을 믿는다는 뜻이였는지,


“그래, 알았다. 나가봐라. 힘든 일 있으면 나한테 직접 면담 신청해라…. 에휴.. 골치아픈놈 들어왔네..”


라며 침묵을 깼음. 보급관님의 나가라는 명령에 본인은 훈련소에서 배운 ‘행정반 예절’을 실시하고 보급관실 밖으로 나갔음. 그리고 날 기다리고 있던 분대 선임들의 인솔하에 레알 자대배치를 받게 됨. 






보급관님은 참 좋으신 분이었음. 만약 이 한줄을 그 당시 행정병들이 읽으면 날 찾아와 뼈와 살을 발라놓을 테지만-_- 내가 느낀바로는 요즘 유행하는 말대로 보급관님은 츤데레 성격이었음. 심한 사투리와 격한 말투를 썼지만 항상 중대원들을 걱정했고 아무리 말썽쟁이 중대원이 사고를 쳐도 심한 징계를 받을까 걱정했음. 특히 내 걱정을 격하게 했음. 4박 5일 ‘신병위로국내휴가’를 가겠다고 약속했지만 휴가날짜가 다가오자 보급관님이 초조해 하는 모습이 역력했었고, 본인만 보면 


“돼지오빠야. 너 휴가 안 나가면 안 되겠나?” 또는 

“휴가 대신에 내 아파트에서 편하게 쉬면 안 되겠나?” 또는 

“아… 저새끼 큰일낼거 같은데…” 


라며 농담반 진담반의 걱정을 했음. 다른 부대는 모르겠지만, 우리 부대는 휴가시에 매일 1회 보급관님과 중대장님께 전화로 위치보고를 해야했는데, 본인만 매일 2회-_-; 위치보고 하라는 명을 받았었고 휴가 복귀날에 부대 근처 공중전화해서 마지막 위치 보고를 할 때면 보급관님 특유의 드립에 빵빵 터졌음.


휴가 복귀 날 오후 4시 경


본인 : 언어폭력을 근절합시다. 통신보안 xx중대 상병 돼지오빠 입니다. 위치보고 드립니다.

보급관 : 어.. 그래.. 어디고?

본인 : 넵, 지금 부대 앞 버스정류장 근처 공중전화에 있습니다.

보급관 : 어 그래.. LA 아니지? 

본인 : (웃음을 참으며) 아.. 아닙니다. 푸훕

보급관 : 웃어? (보급관님 특유의 억양이 있는데 글로 표현을 못하니 아쉬울 따름임..)


또한, 에이급 동갑내기 상병친구가 2차 정기휴가 중 탈영했었던 좋지 않은 기억 때문인지, 본인의 2차 정기 휴가 복귀 전날에는 본인을 부대 근처로 소환하여 막걸리를 사주시기 까지 했음. 탈영하지 말라는 호소와 함께…


이러한 보급관님의 걱정어린 배려, 실력자의 보이지 않는 손에 의해 본인은 무사전역 할 수 있었음. 두번 다시 경험하고 싶지 않고 재입대 하게 된다면 두 말할 필요도 없이 자살을 택하겠지만, 뒤돌아보면 군생활 만큼 재밌는 에피소드가 없는 것 같음. 




…그리고 본인은 본격적인 자대 생활을 시작하게 됐음.




다음 에피소드 : ‘빠다’의 향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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