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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을 위한 행진곡을 잘 알지는 못하지만
게시물ID : sisa_385840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김재규열사
추천 : 5/2
조회수 : 277회
댓글수 : 11개
등록시간 : 2013/05/08 23:26:27
애국가 멜로디를 작곡한 안익태가
일제의 충견이었다는건 명백한 트루.
친일파니 뭐니 기준 나누기 애매모호하니
그냥 행적만 놓고 보겠음 ㅇㅇ


안익태의 1940년대 유럽 활동에 대한 정보는 대부분 김경래와 롤리타 탈라베라의 전기에 기록된 자료로 전해져 왔으나, 최근에 진행된 연구들에서 이들 자료의 잘못된 정보와 왜곡 사례를 지적하고 있어 상당한 파문이 예상되고 있다. 유럽 체류 시절 안익태가 관변 단체였던 '일본-독일 협회' 와 긴밀한 관계에 있었으며, 일본의 가가쿠를 주제로 한 '에텐라쿠' 와 일본제국에 의해 괴뢰정권인 만주국이 세워진 일을 기념한 '만주국 축전곡' 등을 작곡했다는 기록도 발표되었다.
2000년에는 음악잡지 '객석' 의 베를린 통신원이었던 진화영이 안익태의 베를린 필 지휘 기록이 종전의 1940년이 아닌 1943년이며, 단 한 차례 뿐이었다는 기사를 발표했다. 같은 해 발굴되었다는 안익태의 지휘 모습이 담긴 기록 영화가 2006년에 독일에서 음악을 공부하고 있는 송병욱에 의해 만주국 축전 음악회의 실황 녹화였다는 사실이 밝혀져 국내 음악계에 충격을 주기도 했다.
2006년 11월 19일에 송병욱의 강연회를 통해 만주국 축전 음악회의 기록 영화가 한국에서 처음으로 공개 상영되었으며, 2007년에는 음악학자 이경분이 독일과 스위스 등지의 문서 보관소 등에서 찾아낸 자료들로 안익태의 1938-44년 활동상을 정리한 책이 출간되었다.
2008년 발표된 민족문제연구소의 친일인명사전 수록예정자 명단 중 음악 부문에 선정되었다. 이에 대해 안익태기념재단 측은 "당시 본인 선택과 상관없이 국적을 잃은 안 선생은 일본인으로 활동할 수밖에 없었다"고 해명하였다.[1][2] 이 명단의 군 부문에는 형인 안익조도 포함되어 있다.



어떻게 생각함?
심지어 기념 재단조차 친일행적을 인정하고,
어쩔수 없는 것이라고 합리화하는 실정인데?
또한 자주 반박하는 3.1운동때 애국가가 쓰였다는건 가사고,
멜로디는 36년에 안익태가 작곡한거. 
그 음악을 우리나라가 애국가로서 쓰고 있음. 
뭐, 작사도 윤치호라는 쓰레기같은 변절자가 만들었다는 설이 있어
별로 달갑지 않지만. 
당시 예술계도 존나 먹고살기 힘들어서 변절 존나 많이 한건 알아. 
근데, 그런 만큼 지조를 지킨 사람도 있기 마련이지. 
그 파르티잔들의 넋을 위로하기 위해서라도
적어도 그런 변절자나, 부역자들이 작곡한 음악을 국가의 상징곡으로 사용하면 안 되지. 
우리 독립한지 채 일백년도 지나지 않았어. 
아직도 위안부 피해자 할머니들은 시위를 하고 있고
일제의 잔재는 우리 생활 곳곳에 박혀있는데
그것을 없애지 못할망정
그나마 보편적이니 유지시키자는것은 아니지. 

임을 위한 행진곡이고 뭐고 간에
적어도, 국가를 상징하는 노래는
그런 변절자들의 혼이 깃든 음악은 아니었으면 좋겠다.
개인적으론 독립군가가 참 좋지만 말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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