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개 안개는 조금씩 지쳐갔다. 안개를 등에 진 가로등 불빛은 점점 무겁게 내려앉고 있었다. 이별을 내뱉던 입가엔 약간의 술내음이 맴돌았고 나는 간간히 입맛을 다시며 어두운 골목에 들어섰다. 나를 태운 버스가 뒷전에서 멀어져 갔다. 다음 정거장이 보이지 않는 길을 버스만 달리고 있었다. 목 젓에서 울던 신음이 신물처럼 올라왔다. 가파른 골목 끝자락엔 어둠과 안개와 그리고 기다림 없는 좁다란 방 한 칸이 있을 것이다. 언제나 슬픈 것들은 끝자락에 있다. 겨울은 계절 끝에 있어 하루는 밤 끝에 있어 높다랗게 하늘로 치솟은 길 끝에서 저마다의 어둠을 풀어 놓으며 울고 있다. 나는 길 끝으로 다시 어두워 질 것이다. 저 언덕 골목 끝자락, 그 깊은 곳이 태생인 그 많은 밀어들이 거슬러 올라왔다. 미처 방생시키지 못한 것들이 발끝에 치였다. 딱딱한 담 벼락을 짚으며 마지막으로 마지막으로 너의 모습을 생각했다. 소주잔이 놓인 테이블 넘어로 아슬하게 불빛을 걸친 너의 얼굴을 침묵에 주저하며 방황하던 손가락을 세상 모든 언어를 잃은 이별을 그리고 그 모든 것이 담긴 너의 눈빛을 우리 이젠 사랑하지 말자. 새벽이 될수록 안개는 옅어졌고 나는 도망치듯 방으로 돌아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