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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살아서 누군가를 사랑할 수 있게 될까
게시물ID : gomin_387824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luckyΩ
추천 : 2
조회수 : 394회
댓글수 : 5개
등록시간 : 2012/08/21 01:47:19

 난 내가 다 가진 줄 알았다. 그렇다고 착각하고 살았다.

사업 때문에 떨어져 살지만 언제나 서로 사랑하는 부모님

똑똑하고 다정한 오빠

무뚝뚝하지만 늘 속깊은 동생

학창시절 내내 칭찬만 듣고 살았고, 못생겼다 소리는 들어 본 적 없는, 누구에게 미움받아 본 적도 없었던

 

 

 

그런데

2010년 6월을 기점으로 

내 인생이 그렇게 바뀔 줄 몰랐다.

아니, 그렇게까지 망가질 줄 몰랐다.

 

 

 

살아 평생 적지 않은 나이에도 한 번도 연애를 해 본 적 없는 내 앞에 나타난 그는

나를 6개월간 쫓아다닌 남자였다.

처음부터 나와 결혼 할 거라고 했다.

나는 그저 웃었다. 영원한건 없다고, 영원이란 단어를 어떻게 그렇게 함부로 쓰냐고 핀잔도 주었지만

그렇게 유치한 중학생 여자아이가 일기장에나 쓸 법한 말도 안되는 꿈으로 나를 6개월간 쫓아다니던 그는 6개월 후 나의 남자친구가 되었다.

 

한 번도 연애를 하지 않았다는건 좋아하는 사람이나 썸씽이 아예 없었다는 말이 아니라

그게 연애로 직결되지 않았을 뿐이다.

그리고 내가 남자에 그다지 관심이 없었던 것도 한 몫 하겠다.

 

외국에 살면서 조금만 노출 있는 옷 입고 지나가면 가슴예쁘네! 를 연발하던 백인놈들이나

한국에 왔더니 외국 살다 온 애라고 개방적이거라고 지네 멋대로 상상하면서 야한 농담을 지껄이던 한국 남자들이나

내겐 그다지 다를 것도 없었고, 다르게 볼 필요도 없었다.

 

 

주위엔 늘 많은 사람들과 많은 일들이 있었고, 심심할 틈도 심심해야 할 이유도 없었다.

그래서 굳이 남자친구를 만들지 않았다.

 

 

그래서 나는 첫사랑을, 나를 6개월간 쫓아다닌 그와 시작했다.

 


그는 나를 너무 사랑했고, 나또한 그랬다. 그 외에는 아무것도 중요해지지 않았고, 그가 걸어올 때면 그를 제외한 모든 풍경이 녹아내렸다.

그와 첫키스를 하던 날, 첫눈이 내렸고

눈이 핑크빛으로 내리는 신기루를 경험했다.

 

 

그와 나는 열렬히 사랑했고, 아꼈고, 미래를 약속하며 행복했다.

사랑한다는 말을 처음 들었을 때 너무 벅차서 나는 그만 울어버렸고

내가 결혼할 생각이 없다고 하자 그도 울었다.

우리는 그렇게 유치하고 열렬하게 그리고 이기적으로 서로밖에 모르며 '보고있어도 보고싶다' 라는 말을 실감하며 연애를 했다.

 

 

그런데


그가 나를 의심하기 시작했다.

내가 한 번도 남자친구가 없었다는 사실을 말 할 때 다들 믿지 않았듯이 그도 믿지 않았다.

그전엔 누가 믿고 안 믿고가 중요하지 않았으니 변명도 해명도 하지 않았지만 그는 내게 중요한 사람이었기에 그가 생각하는건 내게 중요했고, 그래서 나는 변명을 하고 해명을 했다.

그 변명과 해명을 들으며 그는 더욱 더 나를 믿지 않았다.

 

 

사귄지 석 달이 넘어 내가 외출하고 핸드폰 배터리 문제로연락이 안되던 날, 그는 무료가 극에 달했던지 내 싸이를 해킹해서 2005년부터 적힌 방명록을 다 읽어보았다.

그리고 내 방명록에 흔적을 남긴 이름을 종이에 죄다 적어 씩씩거리며 내 집 앞에 찾아온 그를 눈을 크게 뜨고 쳐다보던 나는

그 종이에 맞았다.

 

 

 

2005년부터 그가내 싸이월드를 해킹하기까지 내게 있어 싸이월드는 한국을 마음껏 그리워 할 수 있는 공간이었고

얼굴도 모르는 사람들이지만 내 문화와 내 민족과 소통 할 수 있는, 향수병을 어느정도 달랠 수 있는 곳이었다.

 

 


거기엔 물론 남자들도 끼어있었다. 그런데 얼굴도 한 번 본 적 없는 사람들이었고 그 때는 싸이월드 방명록, 방문자 수 올리려고 아무에게나 친절하게 굴던 시절이었다. 

귀국해서 내가 싸이를 통해 연락해 만난 사람은 세명, 전부 여자였다

 

 


그는 우습게도 내가 그 남자들과 다 잤다고 생각했다.

보라고, 너는 이런 애라고, 넌 남자 엄청 좋아하는 애라고, 아닌 척 하지 말라고 그간 남자친구 몇 번 사겼냐고 솔직히 말하라고 소리를쳤다.

그리고 내 눈이 야하게 생겼다고 했다.

내 코가, 내 입술이, 내가 짓는 표정 내가 입는 옷차림 전부가 남자를 꼬신다고 했다.

무슨 근거인지 모르겠지만 아무튼 그는 그렇다고 했다. 아니라고 했지만 그는 맞다고 했다.

끝없는 의심과 집착이 시작되어 나를 옭아매기 시작했다.

끝내 그는 나를 잊을거라 유학길에 올랐고 학기 중간에 다시 돌아왔다. 

내가 자기를 배신하고 다른 남자를 만날까봐 두려워서.

 

 


그리고 더 심학 집착하기 시작했다.

있지도 않은 일을 혼자 상상해서 사과하라 다그쳤고 화장도 못하게 하고 밖에도 못나가게 했다. 

친구는 참 너도 미친년이지만 그놈은 더 미친놈이라고 했다.

그가 찾아오면 문을 열어주지 않았지만 역시 나는 미친년이었다. 친구 몰래 그 미친놈을 만나러 나갔으니까.

 

 


그렇게 버티고 버티다 내가 헤어지자고 했다.

그가 자해를 하고, 피를 보자 너무 무서워져서 그러지 말라고 빌었다.

 

 


그는 보라고, 내가 너땜에 얼마나 아픈지 보라고 어떻게 니가 감히 나에게 헤어지자고 할 수 있냐고 너같은걸 사랑한걸 후회한다고 했다.

이 말은 요즘도 종종 그가 꿈에 나와서 하는 말이다.

 

 

웃긴건 

나는 다들 그렇게 연애 하는 줄 알았다.

내가 다 이해해야 하는 줄 알았다.

다 이해하고 다 참고나면 우리가 서로밖에 몰랐던 좋았던 때로 돌아 갈 수 있을거라 생각했다.

그래서 다 참고 견뎠다.

그는 그게 우리가 사랑하는 방식이라 말했다. 그게 맞는 줄 알았다.

 


그런데 그는 그렇게 나를 헤집어놓고 끝내 미친년 씨발년 소리를 하며 서울역에서 나를 무릎 꿇어 빌게 했다. 사람들이 사진을 찍었다. 웅성댔다. 나는 뭘 잘못한지도 모른채 그에게 빌어야했다.

그리고 먼저 떠난건 그였다. 너같은걸 사랑한걸 후회하고 미래의 자기 사람에게 미안하다고.

 

 

 

 

남은 나는 아예 병신이 되었다.

내 생에 내가 처음으로 그렇게 사랑해 본 사람이 그렇게까지 나를 미워하고 싫어하고 혐오하기까지 한다는 건 견딜 수 없는 일이었다.

그는 내게 계속 내가 망가졌다는걸 상기시켰다. 어디가서도 사랑 받을 수 없을거라고 누구도 너를 사랑해주지 않을거라고 그렇게 나를 사랑했던 자기조차 용서하지 못하는데 아무도 용서 할 수 없을거라고 그렇게 악담을 해댔다.

 

 

 

내 인생이

잘 굴러가던 내 인생이

누구보다 행복하던 내 인생이 갑자기 다 한순간에 무너져버렸다고 느꼈다.

부모님을 보는 것이 가장 무서웠다. 내가 이렇게 망가진걸 눈치챌까봐

잘 지내? 하고 물어보는 말에 거짓말 해야하니까.

 

 


친구는 망가진 나를 보면서 우리가 이렇게 사랑하는 너를 어떻게 그렇게 함부로 할 수 있냐고 화를 냈다.

주위 사람들이 다 나를 걱정하고 또 그렇게 걱정하게 만드는 내가 너무 싫어서 수면 유도제를 먹고 1주일 정도 잘 수 있기를 바랬다.

1주일 후에 일어나면 많은 것이 바뀌어 있기를 바라면서.

 

 

 

그러나 자고 일어나도 아무것도 바뀌어 있지 않았다.

 

 

 

그렇게 그가 없이 한달이 가고 두달이 갔다.

나는 방황했다.

한번도 필거라고 상상도 할 수 없던 담배에 손을 대고 길에 돈을 뿌리면서 놀았다.

밤에 화장을 하고 거리로 나가 놀고 아침에 들어와 내가 너무 한심하고 역겨워 울며 토했다.

 

 

그리고 밤에 깨서 또 똑같은 짓을 반복했다.

그리고 남자들을 만났다.

 

 

 

확인하고 싶었다.

과연 아무도 나를 사랑해주지 않을까? 내가 그렇게나 쓰레기일까?

그렇게 짓밟히고 나니 확인해 보고 싶었다.

 

 

진심은 통한다고?

통하지 않는다.

진심을 받는 상대방의 마음이 닫혀있다면 통하지 않는다.

나는 그걸 배웠다.

 

 

그렇게 놀다보니 어느새 같이 살던 친구도 멀어져 있었다.

내게 남은거라곤 쓸데없는 남자애들의 전화번호, 카드 청구서, 밤에 같이 놀 수 있는 언니들, 그 전보다 더 난도질 당한 내 자신 밖에 없었다.

하나하나 정리를 시작했지만 잘 되지 않았고

혼란스러워지기 시작했다.

 

 


2011년 10월

 

 

한 남자를 만났다.

그는 내가 도시 한가운데에 버려진 아기고양이 같다고 했다.

자기가 다치지 않으려고 한껏 손톱을 세우고 으르렁 거리고 있는 것 같다고.

그 말이 마음에 들었다.

나는 그를 딱 그냥저냥 적당히 친한 친구만큼 좋아했다.

전처럼 열렬히 사랑할 기운도, 그럴 마음도 없었다.

 

 

그는 일주일만에 나를 사랑한다고 했고, 나는 고맙다고 했다.

예전에 사랑을 말할때나 들을때면 그 단어가 너무 크게 느껴져서 가슴이 벅차 잘 하지도 듣지도 못하고 눈물 먼저 고였는데

그 말이 아무것도 아닌것처럼 들렸다.

그가 다른 여자에게 그 말을 하는 상상을 했다.

아무렇지 않았다.

 

 

내가 결국 그의 정성에 감탄해 마음을 열어주면 그도 종내는 나를 상처주고 말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나를 보호해야했다.

비겁하게 들릴진 모르겠지만, 나는 그 누구보다 그 땐 내가 중요했다.

그리고 그의 그 마음이 진심처럼 느껴지지도 않았다.

그도 내게 올인하지 않고 나도 그에게 올인하지 않고

우리는 그냥저냥 친한 친구처럼 만나서 밥을 먹고 시덥잖은 농담을 했다.

 

 

그가 잠자리를 요구했다.

나는 싫다고 했다.

 

 


첫사랑이 너는 아무에게나 입술을 주고 몸을 주는 여자야, 라고 하고 난 후로

난 정말 내가 그런 여자처럼 느껴져서 역겨웠다.

그와 자는 상상만해도 구역질이 났다.

 


얼마 지나지않아 그는 내가 지친다며, 다른 여자가 생겼다고 했다.

나는 차분히 그래, 어떤 여잔데, 응, 좋은 사람이었으면 좋겠다, 당신이 행복하길 바래, 했다.

그는 헤어지는 순간까지도 덤덤한 내가 무섭다고 했다.

다음에 마주치면 밥이라도 한끼 먹자고 하는 말에

니가 사는거지, 하면서 웃었더니 그가 어이없다는 듯이 웃었다.

 

 

 

2012년 4월

 

누군가가 내가 맘에 든다고 한다.

나는 그 마음을 받을 자신이 없었다.

여전히 첫사랑의 굴레는 너무나 두꺼웠고, 나는 그걸 깨고 나가기엔 너무 약했다.

 

술잔을 사이에 두고 그는

내게 마음을 더 줄까봐 무섭다고 했다.

내게 마음을 주고 내가 그것을 받아들여도, 첫사랑이 내게 손을 조금만 내밀면 끝일 것 같아서. 내가 뒤도 돌아보지않고 가버릴 것 같아서. 자기 자신 따위는 없던 사람이 될 것 같아서.


틀린 말이 아니었기에 나는 그저 웃었다.

 

 


그를 마지막으로 나는 아무도 만나지 않았다.

누구를 만나도 상처줄게 뻔하니까 피하게 되었다.

내가 다시 살아서 누군가를 사랑 할 수 있게 될까

아무것에도 무엇에도 가슴이 뛰지 않는다.

 

 

그렇게 재밌던 삶도 무료하고 그냥저냥 하루하루를 보내는게 일상이다.

그냥 그 때는 내 미래에 누군가 있게 된다는 것, 그게 내가 사랑하는 사람이라는 것, 그게 그냥 그렇게 막 벅차고 설렜는데

근데 그 꿈이 깨어지고 나서는 아무리 다시 그게 깨어지기 전처럼 그려보려해도 그 때의 기분조차 느껴지지 않는다.

 

 

어디에도 없으니까.

 

 

그와 내가 그렸던 미래라든지 아니면 그렇게 행복해하며 꿈꿨던 앞으로의 일이라든지 서로 같은 길을 보며 웃었을 때라든지 그게 아무데도 없으니까.

지금 내가 제일 슬픈건, 우리가 했던 약속이 전부 헛된 것이라는게 아니라,

우리가 결국 이뤄지지도 않을 꿈에 목숨을 걸었던거라는거다.

 

 

그리고

내가 이렇게 그를 가슴에 묻고 누구를 만나도 이렇게 행복하지 않을 것 같다는거다.


나도 다 잊고 다시 살아서 누군가를 사랑 할 수 있게 될까

차갑고 무덤덤해진 내가 너무 싫다.

 

 

 

 

 

 

나도 사랑하고싶어

따듯해지고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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