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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식적이지 않은 이야기.
게시물ID : military_38964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aeio
추천 : 61
조회수 : 8264회
댓글수 : 36개
등록시간 : 2014/02/24 11:58:02
 
내가 스스로 나를 평가 했을 때 나는 그렇게 똑똑한 편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남들보다 머리가 비상한 것도 아니고
특출난 재주가 있는것도 아니다. 대부분의 사람들 처럼 평범한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1년 넘게 군생활을 하면서 느낀점은 머리가 좋고 나쁘고는 군생활에 그리 큰 영향을 끼치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물론 군대에선 이것저것 외울 것이 많다. 하지만 습득시간의 차이일 뿐 언젠가는 다 외워지기 마련이었다.
오히려 그런 두뇌회전 보다는 눈치나 성실함이 군생활에 적응하는데 더 큰 도움이 된다는 것이 나의 생각이었다.
녀석을 만나기 전까지는.
 
신병이 전입오면 가장 먼저 외우는 것이 선임들의 이름이었다. 하지만 일주일이 지나도록 녀석은 소대원의 절반조차도 외우지를 못했다.
그때까지는 그리 큰 걱정을 하진 않았다. 어차피 개인차가 있는거고 남들보다 조금 더딜 뿐이니 시간이 해결해 줄거라 믿었다.
하지만 훈련소에서 배웠을 것이 분명한 복무신조와 군가조차도 제대로 외우지 못하는 녀석을 보면서 나는 조금씩 불안해지기 시작했다.
시간이 지나면 지날수록 그는 나에게 놀라움 만을 안겨 주었다. 녀석은 내 상상을 초월하는 인물이었다.
지금이야 군대에 암기강요가 사라졌다지만 내가 군생활을 할때까지만 해도 정말 시시콜콜한 것 까지 암기를 강요하는 경우가 많았다.
하지만 소대원 이름을 외우는 데만 2주 이상이 걸린 녀석에게 그 이상의 것을 기대하기는 힘들었다.
총기제원 같은 경우는 이미 포기수준이었고 그저 사람있는쪽에다 쏘면 안된다는 것만 기억하라고 할 정도였다.
하지만 근무를 설 때 필요한 적 침투 방법이나 경계요령 같은 경우는 외워야 했고 거기서 첫번째 고비가 찾아왔다.
 
처음엔 다그치면 조금해져 오히려 역효과가 날까 좋게좋게 얘기하고 틀려도 괜찮다고 기운을 북돋아 주기도 했다. 하지만 이런 인내도 금새
바닥나 결국엔 맨투맨으로 붙어 과외를 해줘야 하는 지경에 이르렀다. 말로만 하면 금방 잊어버려 하나하나 직접 글로 작성해 노트를
만들어 주었다. 오기가 생기기 시작했다. 이제는 녀석만의 도전이 아니라 나에게도 큰 도전이었다. 수능을 칠 때도 그렇게 열심히 필기한
적이 없었다.그리고 일주일 후 테스트를 볼테니 그동안 적어준 노트를 보고 공부하라고 말했다. 그리고 일주일이 지났다.
내무실에 긴장된 기운이 감돌았다. 그동안 공부를 열심히 했는지 녀석의 얼굴은 사뭇 자신감에 차 보였다.
내심 기대하는 마음으로 나는 첫번째 질문을 던졌다. 일단 처음이니 쉬운것부터 시작해볼 요량으로 내가 던진 질문은 수하 요령이었다.
설마 이건 외웠겠지라고 생각했지만 녀석은 쉽사리 대답하지 못했다. 한참동안 고심하다 녀석의 입이 열렸다.
정지! 정지! 손들면 쏜다! 움직여!
..... 그럼 그냥 가라는 얘기인가? 울컥하는 마음을 가라 앉히고 그래 긴장해서 그랬겠지라고 스스로를 다독거리며 다시 물었다.
자기도 무언가 잘못되었다는 걸 느꼇는지 곰곰히 자신의 말을 곱씹어 본 후에야 녀석은 올바른 답을 말할 수 있었다.
하지만 왠지 다음문제를 내기가 겁이 나기 시작했다. 다음에 낸 문제는 적침투방법중 모자선 침투방법에 대해 설명하시오 였다.
모자선 침투방법이란 어선으로 위장한 모선에서 자선이 분리되어 인근해안으로 침투하는 방법이었다.
하지만 녀석은 금시초문이라는 얼굴이었다. 나에게 이런 인내심이 존재한다는 사실이 새삼스럽게 놀라웠다.
내가 한 말에 답이 있으니 잘 생각해보라고 얘기했다. 모자선이라는 단어를 잘 생각해보라고 힌트를 줬다.
또 한참을 생각하다 문득 떠올랐는지 녀석이 입을 열었다. 하지만 버벅거리기만 할 뿐 제대로 된 설명을 하지 못했다.
답답해진 나는 말로 설명하기 힘들면 여기다 그리라고 노트와 펜을 내밀었고 녀석은 열심히 무언가를 그리기 시작했다.
녀석이 그린 그림은 모자처럼 생긴 배였다. 마침내 내 인내심의 끈이 끊어졌다.
이게 뭐야? 모자? 아! 코끼리를 삼킨 보아뱀이구나! 그렇지? 너 지금 나 놀릴려고 그러는거지? 이 어린왕자 새끼야.
후임들이 날 뜯어말렸고 결국 그날의 테스트는 그렇게 마무리 되었다.
 
하지만 역시 군대에선 안되는 불가능한 일이란 없었다. 녀석 하나에게 다들 달라붙어 가르친 결과 마침내 녀석은 모든 내용을 외울수 있었다.
그리고 날 또 놀라게 한건 일반인으로썬 범접할수 없는 녀석의 상식세계였다. 박학다식까진 아니더라도 보통사람들 수준의 상식을 기대했지만
그런 나의 기대는 모두 부질없는 짓이었다. 녀석은 자유로운 사고방식의 소유자였다.
FM훈련이 오후에 하는 훈련이라고 알고 있는 녀석을 본 후 난 절대 그에게 무언가를 강요하지 않으리라 다짐했다. 더이상은 NAVER...
이제는 해탈의 경지에 이르른것 같았다. 부대 안에 보리수나무가 있었다면 아마 난 그자리에서 불가에 귀의했을 것이었다.
어느 날 부대내 사고로 헌병이 방문했다. 연병장에 앉아서 구경을 하다 헌병 하이에 써진 MP라는 단어를 보고 문득 그녀석에게
MP가 무슨뜻이냐고 물었다. 녀석은 그정도는 알고있다는 듯이 당당하게 밀리터리 파워라고 말했다.
녀석이 대견스러웠다. 그래도 반은 맞췄으니. 메가파워라고 하지 않은것이 어디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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