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번에 정환이와 동룡이가 마지막회 끝에 현재 시점으로 등장하지 않는 이유에 대해 글을 쓰고 베오베에 갔었는데요..
댓글 중에 어떤 분께서 이런 댓글을 남겨주셨습니다.
그래서 좀 더 찾아봤습니다.
위키피디아에서 정환이 소개를 보면
- 1971년생, 당시 18세 / 1994년 기준 24세 / 2016년 기준 46세. 성균과 미란의 둘째 아들
- 별명 개정팔. 쌍문고 2학년 → 3학년 → 공군사관학교 42기 → 공군 소위(1994년 기준)
이렇게 나와 있습니다.
42기로 나오더군요. 제가 공군사관학교에 대해서는 잘 모르지만, 소위 임관은 응답하라에서 구체적으로 나오진 않은 것 같습니다.
교육 때문에 서울에 왔다는 거 제외하고. (만약 소위 임관이 언급됐다면 댓글에 말씀해 주세요)
그리고 김동철 소령님을 검색해 봤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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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랬더니... 실제로 김동철 중령(아마도 순직하시고 추서되신 듯)이란 분이 계셨습니다.
고 김동철 중령.
<고 김동철 중령>
고 김동철 중령은 서울이 고향이다. 공사 42기로 지난 92년 공군사관학교를 졸업하고 소위로 임관, 99년부터 3년간 공군 제 3훈련비행단 중등비행교육 교관을 역임했다. 이후 지난 2002년 공군 제 17전투비행단 156비행대대 3·1편대장으로 재직해 왔다.
모든 조종사들이 반드시 통과해야 할 관문인 중등비행교육과정 교관 출신으로 17전투비행단의 장교 조종사들이라면 그의 가르침을 받지 않은 이가 없을 정도이다. 그의 비행시간 또한 2500시간에 이를 만큼 베테랑 조종사로 10년 가까운 경력을 자랑하고 있다.
강도 높은 비행교육으로 소문난 교관이지만 늘 따뜻함을 잃지 않아 학생 조종사들 사이에는 '아빠'라는 애칭으로 통하기도 했다. 고 김중령의 이런 노력은 지난 2003년 9월19일 비행안전 유공자로 공군참모총장 표창을 받기도 했다.
고 김중령은 대대 동료들의 회식자리도 마다하고 가족을 찾을 만큼 누구보다 자상한 가장으로 소문이 나아 있기도 했다.
2005년 7월 13일에 이런 안타까운 일이 일어났더군요.
f-5를 조종하셨는데, 연쇄 추락으로 같이 4분이나 순직하셔서
언론에서도 당시에 꽤 크게 보도를 했었네요. ㅠㅠ
다시 한 번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저도 이 중에 누구 하나 이미 유명을 달리했을 거란 생각이 든 이유가
마지막 장면에서 철거된 쓸쓸한 쌍문동 골목을 카메라가 유영하듯 들어오면서 (마치 영혼이 유체이탈해서 움직이는 듯한 카메라 워크)
덕선이가 택이 방에 모인 친구들을 보면서 울면서 한 외마디 대사 때문이었습니다.
(철거 예정이라고 된 쌍문동 골목길에서 택이 방에 모인 친구들)
(특공대 빨리 빨리 안 다니지? - 정환이가 제일 먼저 대사를 치죠... ㅠㅠ 이런 생각을 하고 보니 더 슬픈 정환이 얼굴)
(친구들이 각자 한 마디씩 하고... 눈물을 흘리며 쳐다보는 덕선이)
"니들이 왜 여기 있어?"
이 때 흐르는 김창완 청춘의 가삿말이.. 참 의미 심장했습니다.
"언젠간 가겠지.. 푸르른 이 청춘. 지고 또 피는 꽃잎처럼.
달 밝은 밤이면 창가에 흐르는 내 젊은 연가가 구슬퍼"
이게... 저는 죽은 친구를 보낼 때 부르는 송가, 혹은 장송곡처럼 굉장히 슬프게 느껴졌습니다. ㅠㅠ
아.. 뭔가 싸한 것이.. 등골에 느껴지더라구요.
그리고 이후 장면에서 어머니가 밥 먹으라고 부르는 소리에 친구들이 하나 둘 떠나는 장면이 나옵니다.
(과대 해석 같지만.. 이 장면도 정말인지 다시 해석이 되더군요. ㅠㅠ 요즘같은 장수 시대에 혹시?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그리고 남겨진 택이의 모습..
(갑자기 어려진 택이 모습, 그리고 이어진 장면에서 모두 어린 아이들이 되어 있는 쌍문동 5인방..)
왜 이런 구성을 만들었을까...라는 생각을 해 봤습니다.
점점 과거로 회귀하는 모습이거든요.
그냥 단순하게 그 시절을 그리워 했을 거란 생각을 할 수도 있지만, 제가 좀.. 안 좋게 보는 것도 있어서..
저는 이렇게 추측을 했습니다..
2005년 정환이가 불의의 사고로 순직하게 되고 덕선이는 과거 친구들과 추억을 나눴던 쌍문동을 방문하게 됩니다.
그런게 가 보니 쓸쓸하게 철거 예정인 골목길이 나오죠..
그래서 과거를 회상하는 거죠.. 정환이가 제일 먼저 말을 거는 장면.. 그리고 왜 이제 와 라는 대사...
이게 정말 가슴에 사무치듯 아련하게 덕선이의 마음을 후벼팠다고 생각했어요.
그래서 좀 더 찾아보니...
이명박 전 대통령이 서울 시장인 시절에 뉴타운 사업을 진행했더라구요.
서울시에서는 2003년 3월 15일 “서울특별시 지역균형발전지원에 관한 조례”를 제정하여 균형발전사업을 “도시의 균형 있고 건전한 발전을 위하여 추진되는 제반 사업”으로 정의하고 그 중 뉴타운 사업은 “동일생활권의 도시기능을 종합적으로 증진시키기 위하여 시행하는 제반사업”으로 규정하였다.
이후 대한민국 정부에서는 2005년 12월 30일 “도시재정비 촉진을 위한 특별법”을 제정하여 재정비 촉진사업을 “도시의 낙후된 지역에 대한 주거환경개선과 기반시설의 확충 및 도시기능의 회복을 위한 사업을 광역적으로 계획하고 체계적이고 효율적으로 추진하는” 사업으로 정의하여 뉴타운 사업이 보다 활성화 할 수 있는 법적 근거를 마련했다.
(위키피디아 뉴타운 사업에서 발췌)
이미연 대사 중에서도 쌍문동이 많이 변했다고 10년 전에 가 봤을 때도 굉장히 많이 변했다는 대사가 나오는데..
이게 왠지 딱 맞아 떨어지는 느낌이더라구요..
시기적으로 뭔가가 다 맞물려 간다는 느낌..
지난 번 글에서도 말씀드렸지만, 저는 안방학동에서 태어나 고등학교 1학년까지 살았다가 이사를 갔거든요.
2009년에 다시 찾아가 보니 제가 살던 골목길은 아직 비슷하게 남아있었는데, 나머지는 정말 많이 바뀌었더라구요..
ㅠㅠ
신원호 피디가 약간 실존주의에 대한 생각을 가지고 있는 듯한 인상을 받았어요.
응칠에서도 응사에서도 꾸준히 장례식, 친구의 죽음, 가족의 죽음.. 부재에 대한 이야기들을 다뤄오는 걸 봤고..
특히나 이번 응팔에서는 그것이 아주 극대화되었다고 생각을 합니다.
선우 아버지의 부재, 택이 어머니의 부재, 덕선이 할머니께서 돌아가시고, 봉황당 아저씨 친구 분의 죽음..
정말 왜 이렇게 죽음이 많이 나오지? 라고 할 정도였으니까요..
그래서 막판에 정환이 죽음은 다루지 않고.. 그냥 부재 정도로 처리한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혹시나 저와 다른 생각을 하셨던 분들이 계시다면 약간 죄송하네요.
이건 어디까지나 제 생각이구 그냥 보잘 것 없는 추측입니다.
열린 결말이었으니.. 게다가 뫼비우스 띠처럼 루프로 돌아가는 결말이었으니
어쩌면 쌍문동 5인방은 아직도 거기서 잘 살고 있을 지도 모르겠습니다.
보잘 것 없는 글 읽어주셔서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