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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작 슛하나
게시물ID : gomin_473550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흰바람벽
추천 : 1
조회수 : 117회
댓글수 : 0개
등록시간 : 2012/11/12 23:19:41

  공이 탑코너로 빨려 들어가는 그짧은 시간동안 하루키가 작가가 되기로 결심했다던 일화가 생각났다.

 

 진구구장 외야석에서 시원하게 뻗어가나는 2루타를 지켜보던 하루키는 문득 소설을 써야겠다고 결심했고 본인의 인생은 그하루를 계기로 완전히 달라져 버렸다. 누군가에게 자신이 소설을 쓰게된 계기를 얘기할때에도 하루키는 그날의 그2루타가 없었더라면 자신은 글을 쓰지 않았을 거라고 했다.

본인의 수필집에서 본 얘기다.

 

 도대체 그런 사소한 것이 어떻게 촉매제가 되어 한 사람의 운명을 바꿔 놓았을까?

 

 본인의 대답으로는 지금도 생생히 기억하는 그날의 바람, 그날의 날씨, 그날 외야석에서 마신 맥주의 맛, 그리고 그 2루타가 그려낸 공의 궤적, 그 모든 것들이, 말하자면 '우발적으로' 자신의 안에 뭔가를 깨울수 있게끔 딱 들어 맞았을 뿐이었다는 것이다.

 

 '과연 그런 아무런 맥락없어 보이는 일이 벌어져 한사람의 삶을 바꿀 수 있을까? 아마도 자신이 그런 선택을 해야했던 계기를 일부러라도 만들고팠던 것은 아닐까? 설령 그것이 조금도 설득력 있어 보이지 않을지라도 말이지'

 

 그때 그글을 읽을 당시엔 이런 생각으로 무심히 책장을 넘겼다.

 

 그런데 특별히 기억에도 남을만한 것도 없던 그 일화가 눈이 공의 궤적을 따라가는 그찰나의 순간동안 무언가의 계시처럼 머리속에서 번득였다.

 

 

 

 나는 박스안에 진입하기 전엔 거의 슛을 쏘지 않는다. 나의 역할은 '전달'에 있지 '결정짓는 것'이라 생각치 않았기 때문이다. 사실 그 생각에는 지금도 변함이 없다. 종종 따로 킥이나 슛연습을 하긴하지만 나는 그것이 어디까지나 예외적인 경우를 위해서라 생각했다.

 

 한데 어째서 그 순간이었을까?

 

 공을 트래핑한후 한명을 제쳐냈을 때, 나는 수비 뒤로 돌아나가는 공격수의 발밑을 보고 있었고 슛을 하려는 생각은 조금도 없었다. 언제나처럼 패스를 할생각이었다.

 

 그러나, 그때 팀의 누군가중 한명이 '그냥 때려'하고 짧게 외치는 것이 들렸다. 누군가의 목소리인지는 잘기억이 나지 않는다. 다만 무언가에라도 홀리듯이 나는 자연스럽게 발등으로 슛을 날렸다.

 

 생각해보면 특별히 슛을 하지말아야할 순간도 아니었지만 그렇다고 굳이 슛을 할 순간도 아니었다. 요컨대 전혀 유익하지도 무익하지도 않은 타이밍이었던 것이다. 뿐더러 직접 슛을 하기엔 박스에서 꽤나 멀리 떨어진 곳이었다. 그러나 발을 떠난 공이 그리는 일직선의 궤적은 무척 그럴싸 했다. 내가 한것인가 싶을정도로 말이다.

 

 그리고 그 짧은 순간 나는 그동안 내가 너무나 많은 것들에 있어 내가 할 수 있는 것과 할 수 없는 것으로 나누어가며 살아왔다는 것을 깨달았다.  패배감에 물들어있던 나의 단상이었던 걸까?

 

 나는 살아오면 얼마나 많은 순간 내 스스로 나자신을 내팽겨치고 내게 주어진 기회들을 부정했을까?

 

 스스로는 이타적이라 생각했다. 부분전술이나 팀원과의 연계플레이없이 무차별적으로 쏘는 슛은 아무런 의미가 없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러면서도 나는 '스스로 결정짓는' 플레이를 갈망해왔다. 무척 오랫동안.

 

 어쩌면 수많은 기회들이 나를 스치고 지나갔을지 모른다. 그러나 나는 그때마다 누군가에게 '패스'를 했다. 갈망은 하지만 내가 할수 없는 것이라 무의식적으로 여기고 있었기 때문이었으리라.

 

 만 스물 일곱의 해, 언제나 그렇게 '선'을 그으며 살아온 인생이었다. 내게 온 기회와 삶의 관문들은 그렇게 나를 지나쳐갔다. 그리고 티비에서나 볼법한 그런 슛이 내 발등을 떠나 골키퍼가 손도 댈수 없는 탑코너로 빨려들어갔을 때에야 나는 비로서 깨달았다. 언제나 갈망할뿐 부딪히지 않고 외면하기만 하는 동안엔 결코 '그순간'이 오지 않는 다는 것을. 그리고 무언가를 할 수 있고 없음은 결코 내안에 내재되어 결정된 것이 아님을.

 

 어제 내리던 그비, 질퍽한 땅, 발등에 공이 얹히던 느낌, 그리고 공이 그려낸 일직선의 아름다운 궤적.

 

 그모든 것들이 생생하게 내게 말해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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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에 스스로 실망도 많이 하고 자괴감을 느끼며 지냈었는데, 어제 문득 축구팀에서 축구를 하다가 문득 뭔가 깨달았달까 하는 게 있어서 이렇게 글을 남기게 되네요. 그동안 너무 소극적으로 살아온게 후회스럽기도 하고, 하지만 나 스스로 충분히 가능성이 많은 사람이다고 생각할수 있게된 계기였던 것 같아요. 고작 슛하나였지만요,, 횡설수설 말이 많았네요. 안녕히들 주무시고 내일도 좋은 하루되세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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