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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고향 바닷가
게시물ID : readers_3912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상티엘
추천 : 2
조회수 : 323회
댓글수 : 0개
등록시간 : 2012/10/16 13:08:01





작은 조가비. 더 작은 조약돌. 더더 작은 모래알갱이 틈으로 스며드는 더더더 작은 물방울들. 내 고향 바닷가는 커다란 바위. 바위가 뒹구는 해변가. 해변을 안마하는 파도의 부스러기. 내 고향 바닷가는 따뜻한 햇살. 세상 누구보다 더 먼저 보는 뽀얀 태양. 예고 없이 골목에서 낯선 사람들이 지나치는 곳. 낯선 이들은 말이 별로 없었고 낯설지 않은 이들은 욕이 아닌 말이 별로 없었던 곳.

내 고향 바닷가는 기차와 버스를 갈아타야 하리라 짐작만 하는 곳. 내 고향 바닷가는 이름 모를 아버지가 어머니에게 나를 남겨둔 곳. 내 고향 바닷가는 나와 내 어머니가 살던 곳. 내 고향 바닷가는 내 어머니가 죽은 곳. 내 고향 바닷가는 물방울보다 잘게 갈려진 어미의 재를 날려보낸 곳. 며칠 후 그녀가 내게 내일 은 학교 나올거니 라고 물어본 곳. 그 말이 내가 처음으로 좋아했던 여자에게 들은 마지막 말인 곳. 고등학교 1학년의 마지막 교복을 입었던 곳. 어미를 태워 날려보낸 곳. 교복을 벗은 곳. 좋아하는 여자에게 대답 대신 고개만 끄덕인 곳. 끄덕인대로 하지 않은 곳. 떠날때 기차와 버스를 갈아탔기에 돌아올 때도 그러해야겠거니 생각만 했던 곳.

내 고향 바닷가는 고향이 어디냐고 물어볼 때만 기억되는 곳. 하지만 말하지 않는 곳. 그래서 내 고향 바닷가는 고향이 어디냐고 물어볼 때마다 항상 다른 고향을 만들내게 하는 곳. 더 이상 지어낼 고향이 없어질 때마다 양지 수첩 맨 뒷장 지도의 작은 글씨를 보며 익숙치 않은 지명을 찾게 하는 곳. 그래서 내 고향 바닷가는 어느날 곰팡내 나는 노래방 구석에서 그녀를 만났을 때 혹시 고향이 바닷가가 아니냐고 물어보게끔 만든 곳. 내 고향 바닷가는 내가 처음으로 좋아했던 여자 아이와 닮은 여자를 타향의 노래방에서 만나게 해준 곳. 곰팡내가 갯내음으로 변하게 해준 곳. 그녀의 가슴을 더듬을 때 주인공 없는 코러스가 파도소리처럼 들리게 해준 곳. 다음주에 월급탄다고 했더니 그럼 오빠 시간 많이 끊어줘 라고 말했던 그녀가 살았으면 좋았을 내 고향 바닷가. 그래서 전처럼 말없이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었던 내가 살았던 내 고향 바닷가.

짐작대로 내 고향 바닷가는 기차와 버스를 갈아타야 했던 곳. 내 고향 바닷가는 기차표를 끊기 전에 한 시간당 만원으로 쇼부치고 그녀의 시간도 끊어야 했던 곳. 작은 조가비 더 작은 조약돌 더더 작은 모래 알갱이 더더더 작은 물방울들 외에는 내 기억과 끊어졌다는 것을 확인한 곳. 예고 없이 날 낯선 사람으로 만든 곳. 나는 별로 말이 없었고 나 아닌 그녀는 오빠 회먹자 외에는 말이 별로 없었던 곳.

그래서 내 고향 바닷가는 돌아오는 기차에서 양지 수첩을 들춰보게 만든 곳. 들어보지 못한 도시와 마을의 깨알같은 이름을 찾다가 멀미를 한 곳. 덜컹거리는 새마을호 화장실에서 울렁이는 위장을 오바이트로 달랜 내게 이유 없는 눈물 한방울을 내게 선물한 내 고향 바닷가. 갯내음이 편도선을 스치는 위산처럼 칼칼했던 곳. 그녀의 어깨에 기대어 잠들던 어둑어둑한 열차에서 고향을 떠나던 날의 꿈을 꾸던 곳. 기차표를 사기 위해 줄을 선 꿈 속의 매표소에서 내 뒤로 골목에서 보았던 낯선 자들과 욕을 좋아하던 낯익은 사람들이 길게 줄을 서 있던 곳. 눈 옆에 큰 점이 있던 매표소 아저씨가 오늘 무슨 날이야? 하고 물었던 곳. 오늘은 고향이 이사가는 날이에요 라고 꿈 속에서 대답했던 곳.

그래서 오바이트를 할 때마다 묻지 않아도 생각나는 곳. 그날도 오바이이트를 하다가 생각났던 곳. 그러다 우연히 그 앞을 지나가게 된 곳. 끊어져가는 필름 속의 커다란 횟집 간판. 환하게 빛나던 네온사인으로 그려진 고향의 이름. 이대로 집에가 잠이 들면 다시는 그 곳을 기억하지 못할까봐 기차와 버스를 갈아타듯 더듬거리며 찾았던 가까운 벤치. 해변처럼 차갑게 식어버린 벤치. 꿈도 없이 깊이 잠들었다 깨어난 그곳은 옆동네 횟집 앞. 동틀녘의 불꺼진 네온사인으로 씌여진 오래된 내 고향의 이름.

꿈 속에서도 한번 떠났던 내 고향 바닷가는 이제는 단골이 된 동네 횟집. 파리똥만한 크기로 지도에 박혀있던 고향의 이름은 이제는 횟집의 커다란 간판. 쓰끼다시를 성실하게 재활용하는 여사장의 눈웃음에 돌이끼처럼 비비크림이 자라는 곳. 무역선과 활어차를 갈아타고 고향을 떠나온 중국산 광어회가 겨우 이만오천원인 곳. 사리면을 하루에 두박스도 넘게 뜯어내는 변두리의 명소. 회사의 출근부를 한달을 끊을 때쯤이면 '오빠 회먹자' 와 항상 오는 곳. 시간을 끊어서 데리고 온 그녀가 필름이 끊기면 오빤 고향이 어디야 라고 항상 물어보는 곳. 고향이 어딨어 여기가 고향이지 씨발 이라고 항상 대답하는 곳. 내 고향 바닷가. 동네 횟집의 커다란 간판에서 환하게 번쩍이는 내 고향 바닷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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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유문학상 한다고 해서 오랜만에 별 의미도 없는 짧은 글 써봤는데 어떤가요? 
맞춤범이나 띄어쓰기 지적질 해주시면 정말 감사히 듣겠습니다. 젬병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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