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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방사연표를 통해 확인한 5.18북한침투 부정.
게시물ID : sisa_391243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SowHat
추천 : 2
조회수 : 246회
댓글수 : 0개
등록시간 : 2013/05/18 10:58:40

국방사연표는 1994년에 발간되었고,국방부는 당시 5.18에 대한 입장정리를 하지못해 광주사태로 적어놓았으나,1995년 발간된 국방정책 변천사에서는 민주화운동이라고 정립시켜 놓았습니다.


국방사연표에서는 그동안 한국의 주요국방사건들과 간첩선침투와 무장게릴라의 침투를 적어놓은 사료입니다.이런 자료에도 부정되는 5.18북한 간첩침투설인데 논리도 없고 장광설이 의한 5.18북한게릴라 침투론을 주장하는 사람들에게 경종을 울립니다.


1980년 3월

1일 팀스피리트 80 한미연합작전 훈련개시( ~4월10일)

6일 박정희대통령 시해사건으로 사형확정된 박흥주(41세) 대령 총살형 집행

8일 국방부 전사편찬위원회 규정 개정 (대통령령 제9804호)

14일 한.미 제1군단을 한미연합야전군사령부로 개편

18일 남북총리회담을 위한 남북실무대표회의 4차 접촉 가짐

23일 한강하구 침투 무장공비 3명 사살-포인트 무장게릴라는 이렇게 포착 가능합니다.

25일 포항 근해에서 북한간첩선 1척을 해공군합동작전으로 격침,아군2명 사상,어부 4명 사망 및 실종

27일 무장간첩 3명 금화 부근 침투 교전(간첩1명 사살,1명 도주,아군1명 전사,1명 부상)


1980년 4월

3일 육군사관학교 제36기 졸업식

6일 공군사관학교 제28기 입교식

8일 첫 국산구축함 울산함 진수식

9일 해군사관학교 제34기 졸업식

11일 한미 항공회담(워싱턴)에서 미국 항공기의 서울경유 중공행을 허용

12일 월남의 사이공함락 때 당했던 외교관 3명이 5년만에 석방되어 귀국

14일 최규하 대통령,중앙정보부장서리에 전두환 보안사령관을 임명

16일 한국 최초의 청평 양수발전소 준공 (용량 20만KW 발전기2대)

21일 예비군동원훈련실시(80 쌍용훈련,~26일)

강원도 정선군 사북면에서 광부 700명 유혈난동 어용노조대결,임금인상 문제로

30일 계엄사령부,전군지휘관 회의 개최,노사분규 학원소요의 폭력의 엄단결의(헌법위반 사례-국내치안을 담당하고 있는 내무부장관에게 통보없이 군이 독자적으로 회의를 주도했음)


5월

1일 정부,남태평양의 키리바티 공화국과 대사급 외교관계를 수립

3일 79년도 우리나라 조선수주는 222만 1,555톤으로 세계 2위라고 수출입은행이 발표

4일 코암.일본석유 한.일 대륙붕 5소구에 대한 시추 착수했다고 발표

5일 몰디브 공화국 자밀 수상 내한

7일 육본 11,13특전여단 이동지시

11일 최대통령 중동방문 (~15일)

17일 비상계엄령 전국확대,광주에 학생,시민 대규모 사태 발생

18일 광주사태 발생(~27일)

19일 계엄군출동(특전4개대대,제11병참경비대대)

계엄사 정치활동 중지발표

21일 정부,국무총리 서리에 박충훈,부총리겸 경제기획원장관에 김원기등 새 내각 발표

이희성 계엄사령관,광주사태에 이성을 회복하고 질서유지 당부

진도개 "둘" 발령

24일 10.26사태의 김재규,박선호,이기주,유성옥,김태원등 5명 교수형 집행

25일 특별담화 발표(22:30),육군본부 작전지침 하달,광주진입

27일 계엄군 작전개시(03:20),08:00 정상회복

30일 계엄사령부,전군 지휘관회의 개최,노사분규,학원소요의 폭력은 엄단하기로 결의

경계태세 변경,진도개 "셋"(18:00)

31일 대통령 보좌기구로 국가보위 비상대책위 신설

계엄사발표 광주사태 희생자 민간인 144명,군인22명,경찰41명사망-오기다 4명사망,재산피해 5,200만달러추정


6월

2일 전두환 중정서리 사표, 국군보안사령관,국보위 상임위원장만 경임

정부 일본교도통신 서울지국 폐쇄(5.18진실보도 관련하는 은폐)

5일 최규하 대통령,국보위 상임위원 30명(장성18,국무위원12)임명 13개 분과위 설치

계엄사령부 광주사태 당시 사망자148명이라고 명단 발표,사회불안 배후조종자 21명을 지명수배

9일 제5회 한.미 경제협의회 개막(~10일 서울)

12일 경제기획원, '79년말 우리나라 총인구는 3,760만5000명(남자 1,896만 2000명, 여자1,864만 3,000명)

17일 계엄사령부,부정축재,국기문란 혐의로 329명 지명수배

18일 계엄사령부 김종필,이후락,이세호,김진만,김종락,박종규,이병희,오원철,장동운등 권력형 부정축재자 수사결과 발표,축재금액 총 853억 1,154만원

20일 정부 행정자문위원회 신설

21일 서산앞바다 무장간첩선 격침(간첩8명 자폭,1명 생포)-무장간첩선 격침

22일 세계은행,한국의 국민학교 취학율은 100%로 개발도상국 중 1위라고 발표.

24일 남북총리회담 개최위한 제9차 실무대표 접촉

29일 북한주민 이영우(35) 한강하구로 귀순


이 자료는 광주민주화운동에 대한 군의 정립이 되지않은채 사료로 발간된 책으로 당시사료를 가지고 작성되었습니다.그러나 국방사연표에는 무장공비나 무장간첩선의 침투는 모두 기록되어 있습니다.어디에도 보아도 북한무장게릴라가 광주로 대규모로 남파되었다는 기록은 눈을 보아도 없습니다.


바보들이 증명도 못하면서 주장만 하니 내가 국방부자료를 동원해서 깨버리겠습니다.







광주 시민 열 명 중 넷 '5월 증후군'

http://joongang.joinsmsn.com/article/aid/2013/05/18/11153252.html?cloc=olink|article|default







그리고 마지막으로 동아일보의 오래전에 쓴 자신들의 사설 입니다.

이랬던 동아일보가 시청률 때문에 뒤엎어버리네요.




광주의 교훈을 살리자

동아일보 1989.05.18 사설

진실규명과 문책도 빨리 매듭지어야

동아일보는 지난 80년 5월24일 [유혈의 비극은 끝나여 한다]는 제목의 사설로 [광주]에 대한 첫 소견을 밝혔었다.

비상계엄과 검열아래서 실로 참담한 심경으로 5월19일부터 23일까 닷새동안 [사설없는 신문]을 발행했던 우리는
이날 사설에사 [정부는 사태를 직시하여 과감한 결단을 내려야할 것이며 대경대도아닌 미봉책은 금물임]을 강조
했다.아울러 우리는 [비극적 상황속에서도 시민들이 이성을 잃지않고 무기를 회수하고 질서를 유지하는데 힘을
기울이고 있는 것은 높이 평가되어야 한다]는 견해를 덧붙였다.

계엄령하에서 [광주]에 대한 논평으 자유롭게 밝힐 수 없었던 [그때]의 아픔을 되새기면서 [5.18] 9주년을 맞는
우리의 감회는 착잡하다.

광주항쟁의 대한 평가는 엄청난 변화의 과정을 겪었으며 앞으로도 그 진정한 의미는 다양한 역사적 시각으로
거듭 음미될 것이다. [폭도들이 빚은 난동]이른 부정적 평가에서 [자유시민들의 민주화운동]이라는 긍정적
[정명]
이 나올때가지의 기간이야말로 한국 민주화운동의 암흑기 였다.

그러나 그 암흑기가 사라지는 여명의 진통이 너무도 가흑한 오늘의 사태를 우리는 우려하고 있다.
[광주민주화운동]이라는 이름에 합당한 역사적 마무리가 지연되는 것은 우리 모두의 잘못이요 부끄러움
일수밖에 없다.

특히 여야정치인들은 광주현지에서 이루어지고있는 여러기념행사에서 아직도 [진상규명]과 [책임자처벌]이
강조되고있는 현실에 대해 깊은 자책을 느껴야 할 것이다.

여야는 이제 더 이상 지체하지말고 전두환,최규하씨등의 국회증언을 실현시켜야 한다.그들 또한 자진하여
국민앞에 증언한다는 역사적 의식을 갖고 사태의 진상을 밝혀주기 바란다.

정치보복의 차원이 아니라 비극의 되풀이를 막기위한 역사의 교훈을 위해서 그들의 참된 증언은 불가결한
것이다.

또한 그 [참된] 증언을 바탕으로 국민적 심판은 마무리되어야 한다.책임자는 마땅히 [심판]을 받되 관용으로
매듭지어 [진실]과 [화해]를 증명해야한다.그러기위해 당사자들의 겸허하고 양심적인 참회가 있어야하고 6공의
결단이 있어야 한다.지금 진행되고 있는 국회의 여야중진회담에서는 [광주청산]을 위한 정치적 결단이 기필코
매듭지어지기를 촉구한다.이같은 청산과 더불어 광주민주화운동은 우리 역사전개과정에서는 다시는 군사통치가
용인될 수 없다는 교훈임을 우리는 명심해야 할 것이다.무엇이든 저리르면 되고 불의도 폭력으로 수습할수
있다는 버릇은 고쳐야 한다.

광주민주화운동의 참뜻은 이같은 교훈을 우리와 우리 후손들에게 일깨워줌으로써 역사속에서 영구히 빛날
것이다. 원인규명 명예회복 사법조치 민주화 화해의 논리만이 광주를 풀수있다.

1789년의 프랑스 대혁명은 [반동]으로 인한 역사적 시련을 거듭했다.그러나 2세기를 지난 오늘,광주의 비극은
한번 으로 충분하다.광주와 같은 유혈의 비극은 끝나야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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