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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꽁트]재수생 농장에 가다(행신고8인방 휴먼스토리)
게시물ID : bestofbest_39219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위덕후
추천 : 179
조회수 : 11095회
댓글수 : 0개
베오베 등록시간 : 2010/08/10 16:17:54
원본글 작성시간 : 2010/08/10 01:06:46
말없이 모니터를 응시하던 나의 귓가에 이제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4년째 쓰고 있는 낡은 컴퓨터에서 기분 나쁘게 들리는 기계소음도, 매일 밤마다 골목 어귀의
학원에서 애들이 웅성거리는 소리도 이 순간 나에겐 들리지 않는다. 
분노, 배신감, 자괴감 이런 단어들을 떠올리는 것 조차 허락되지 않는 진공의 시간이 얼마나 흘렀을까,
어디선가 흐느끼는 듯한 환청에 문득 정신을 차려본다. 

엄마였다. 방문을 잠그지 않았던가. 어느새 엄마는 방안에 들어와 있었다.
책상에 앉은 내 어깨에 엄마의 슬픔이 내려 앉는다.
엄마는 울고 있었다. 그건 돌아보지 않아도 알 수 있다. 나도 울고 있었으니까.
엄마의 손이 내 어깨를 스치는 순간, 난 가슴이 터져 버림을 느낀다.

"미안해 엄마." 입술을 깨물며 겨우 토해내듯 한마디 뱉어 본다.

엄마는 울음인지 웃음인지 모를 이상한 소리를 내면서 울고 있었다. 

전화벨이 울렸다. 
아마 용석이일 것이다. 녀석도 확인을 했을 것이다. 받아야 하나...
엄마를 내쫓듯 보내고 통화 버튼을 누른다. 버튼을 누르는 것도 이젠 힘겹다.
"왜 임마?" 

수화기 건너편에서 용석의 풀죽은 목소리가 들려온다.
"너... 됐냐?"
"너는?"

서로 먼저 자기 패는 까기 싫은 거겠지. 그래도 용석이는 가장 맘이 통하는 놈이다.
"나 떨어졌다." 먼저 자수를 했다.
"그래? 새끼. 꼴 좋다. 나랑 똑같네." 용석의 목소리에 부쩍 힘이 실린다.
"이제 어떻게 되는 거냐?"
"낸들 알어? 학교에 가 봐야 알겠지. 씨발."

결국 나는 경북 영덕에 있는 동충하초 농장으로, 용석이는 전남 곡성에 있는 돼지농장으로 
배정이 떨어졌다. 아버지는 구청을 몇 번이나 찾아다니시며 외가가 있는 충북 쪽으로 보내줄 것을
탄원하였지만, 구청에서는 재수생 지역배정은 철저히 추첨식이라며 불가하다는 입장을 보였다.

행신고 8인방 중에 대학에 합격한 3명을 빼고 결국 5명이 지방행 열차를 타게 된 셈이다.
나와 용석 이외에도 상수가 강원도 철암마을 탄광촌으로, 희룡이는 강원도 화천의 흑염소 농장으로
가게 되었고 여자인 탓에 좀 편한 곳으로 빠질 줄 알았던 여옥이는 서울로 배정되었단 말에 잠시
환호했지만 서울지하철 7호선 연장 704공구 현장으로 배치되어 잔뜩 울상이 되었다.
몸무게 40킬로 밖에 안되는 여옥이는 어릴 때 천식이 있어 지하철 공사현장은 어렵겠다는 
여옥이 부모님의 항의가 있었지만, 정부방침 상 예외나 배려는 없으며 서울 지역을 포기하는 
사람의 경우는 근무기간을 3개월 더 늘려서 원양어선을 타야 한다는 으름장에 결국 여옥이 
부모님도 포기하고 말았다.

지방으로 떠나기 전날, 8인방은 화정에 있는 돼지부속 집에 모였다. 
대학에 합격한 세 놈이 우릴 위로한답시고 주선한 자리라는데, 막상 가보니
준표는 얼굴이 보이지 않았다. '꼴난 전문대 붙었다고 이제 우릴 배신해' 용석의 실없는 농담에
상수가 어두운 표정으로 댓거리 한다. 
"너무 그러지 마라. 준표 그 새끼, 걔네 엄마가 3대 독자 2년 동안 농장 어떻게 보내냐고
전문대 억지로 붙여준 건데, 걔도 맘이 불편하겠지."

결국 고3 때 맥주 몇 번 먹어본 게 전부인 우리는 그날 새벽 4시까지 못 이기는 술 먹느라
개고생을 했다. 술이라고는 입에 대 본적도 없는 착한 희룡이 녀석은 8인방 모임 총무를 
맡으라는 친구들의 말에 갑자기 오바하면서 혼자 필 받고 달리더니 결국 아스팔트에 넘어져 
안경도 깨지고 집에 오는 택시에선 결국 오바이트까지 가관이었다.

헤어지면서 모두 몸은 멀리 떨어져 있지만, 기죽지 말고 건강하라고 덕담을 건넸다.
들리는 말로는 나쁜 농장 주인 만나면 일만 죽도록 부려 먹고 평가도 뭣같이 해서 엿 먹이는
수가 있다고 하니, 그런 일이 생기면 서로 연락하라고 배짱도 부려 보았다.

농장에서, 탄광에서 일하면서도 수능은 또 따로 봐야 하니, 아무리 일과가 피곤해도 밤마다
영어단어 10개 숙어 10개 씩은 꼭 외우자고 격려도 해 본다. 서울에서 일하게 된 여옥이가 
그래도 지는 인서울이라고 우리 손을 붙잡고 울어 준다. "야~ 니네 멀리 간다구 나 잊지 말구
대학입학에 대한 꿈 잃어버리지 말구, 우리 모두 대학 가서 멋지게 캠퍼스 생활 하는 거야!.
지금 비록 고생스럽지만, 그래도 이 경험이 나중에 우리 대학졸업하고 중소기업 가면 다 좋은
경험이 될 거야. 그래서 우리 모두 언젠가 대기업에서 함께 하는 거야. 알았지? 꼭이야 꼭!"

착한 여옥이. 얼굴만 못생기지 않았어도 정말 사귀고 싶은 아이다. 

결국 그렇게 우리는 길을 떠났고 자리에 동참하지 못한 준표까지 해서 영원한 행신고 8인방은
2년 후 오늘 여옥이가 만들어 놓은 서울지하철 7호선 연장구간 종점에서 만나기로 약속을 했다.

어떠한 어려움이 있던지 우리는 가리라. 행신고 8인방 포에버!~

[끝]

추신) 글 솜씨 없는 저에게 작은 글 소재를 주신 이재오 특임장관 내정자께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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