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eorge 포먼(George Edward Foreman)
1949년 1월 10일 (미국)
1995년 WBA 헤비급 챔피언 (1994~1995)
별명 : Big George
George 포먼은 거리의 부랑아로 떠돌다가 직업학교에서 복싱에 입문한다 68년 19세의
나이에 멕시코 올림픽 금메달을 따고 이듬해 프로로 전향해 승승장구,
73년 세계 챔피언 조 프레이저를 꺾고 왕좌에 오른다 .그러나
이듬해무하마드 알리 의 ‘로프에 기대기’ 작전에 휘말려 8회 KO패를 당한다.
당시 로프가 지나치게 느슨한 것이 패인의 하나라고 한다 그는 분노 속에서
절치부심 왕좌 탈환을 노렸지만 77년 지미 영 에게 패하고
‘죽음 직전’ 을 경험하면서 링을 떠났다..
이후 기독교로 귀의해 목사로서 10여년간 새 삶을 시작한다
그토록 미워했던 알리와 친구가 되고 실패를 삶의 소중한 부분으로 받아들인다..
청소년 센터도 설립해 갈곳없는 청소년들도 선도 하였다.
하지만 열악한 지원과 제정란에 센터운영은 쉽지 않았다.
센터를 운영하는 자금도 다 떨어져 폐쇠될 위기에 쳐햇다.
하지만 청소년 를 부랑아로 내몰순 없었다...........
[자신의 과거 처럼 거리의 부랑아로 자랄것이기 때문이다.]
그대로 청소년들이 거리로 나가면 어떻게 될지는 불보듯 뻔했기 때문에 포먼은
필사적으로자선 단체에 지원을 요청하고 여러가지 방법을 섰지만 청소년 센터를 다시
운영하는덴 역부족이였다. 이에 포먼은
청소년들을 위해서 다시 링으로 복귀한다.
1987년 10년의 공백을 뒤로 하고 38세에 링 복귀를 선언했을 때 몸무게는
140㎏이었고 주위에서는‘할아버지 복서’라고 놀렸다...
포기를 모르는 포먼 때문에 청소년 센터도 겨우 운영 할수 있었다.
이후 1994년 미국 라스베이거스의 특설 링에서
45세의 George 포먼이 온 세계 권투 팬들을 놀라게 했다.
그는 WBA, IBF 헤비급 챔피언이었던 29세의 마이클 무어 에게 도전했지만
대다수 스포츠평론가의 예상대로 시종일관 고전했다.
그러나 10회 회심의 오른 주먹 한 방으로 챔피언을 고꾸라뜨리고
역대 최고령의 챔피언, 그것도 20년 만에 챔피언
벨트를 되찾았다는 두 가지 기록을 세웠다...
포기할줄 모르는 그의 용기가 불러온 성과였다.
이후~~역전의 노장이였던 포먼은
사업가로 대변신 미국 후라이펜 업계 굴지의
(George 포먼 그릴) 을 만들어 엄청난 재벌이 됬다...
1995 WBA 헤비급 챔피언 (1994~1995)
1995 IBF 헤비급 챔피언 (1994~1995)
1974 WBC 헤비급 챔피언 (1973~1974)
1974 WBA 헤비급 챔피언 (1973~1974)
1968 멕시코시티 올림픽 권투 헤비급 금메달
출처 : http://cafe.naver.com/comfortablerelative
원문 : http://cafe.naver.com/comfortablerelative/그남자의뒷모습
p.s 필터링의 문제로 George 포먼 이라고 표기 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