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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호 아이들. 수의사를 꿈꾸던 슬기의 이야기입니다
게시물ID : sewol_39270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홍조띈곧휴
추천 : 20
조회수 : 572회
댓글수 : 1개
등록시간 : 2015/02/03 01:18:38
수의사 꿈꾸던 슬기에게 이모가

안녕. 내 조카 슬기야.

아직도 이 세상에 슬기가 없다는 게 믿어지지가 않는다. 집에 가면 방에서 금방이라도 나올 것 같고, 외식을 하면 오기 싫어서 집에 있겠거니 하는 생각이 든다. 그러면서 문득 깨닫게 되지. 슬기가 이 세상에 없다는 걸. 그래서 더욱 그립고 보고 싶은가 봐.

잠들기 전 눈을 감으면 네 생각에 마음이 너무 아파. 깜깜한 배 안에서 얼마나 무서웠을까. 얼마나 공포심에 떨어야 했을까. 불 끈 방에서 눈을 감으면 엄마, 아빠를 부르며 울부짖었을 너의 모습이 생각나며 가슴이 답답해지고 먹먹해진다. 그나마 가끔 이모 꿈에 나타나 놀다 가기도 하지. 얼마 전에는 꿈에서 떡볶이도 해주던 슬기 모습이 현실과 혼동되기도 했어. 최근에는 꿈에 나와 배에서 탈출했다며 밥을 제대로 못 먹었다고 허겁지겁 밥을 먹기도 했지. 너희 엄마한테 따뜻한 밥 한 공기 해주라고 했는데 잘 먹었니?

아직도 너희 엄마는 네 사진을 넘기며 눈물짓고 있더라. 이사를 했으면 좋겠는데 그 집이 왠지 마음이 편하대. 너의 죽음을 받아들이지 못하고 꼭 다시 문열고 들어올 것 만 같은가 봐. 아빠도 축 처진 모습이 보기 안쓰럽다. 가는 곳마다 보는 것마다 모두가 슬기랑 함께했던 것들이라 모든 것이 슬기를 떠올리게 하네. 이모가 미안해. 잘해주지 못해서 정말 미안하다.

마지막 여행을 갔을 때 강원도에서 돌아오는 길에 이모는 운전하고 슬기는 조수석에 앉아 졸음을 떨치고 있었지. 대학 진로를 결정하지 못해 고민하던 슬기. 강아지를 좋아해서 수의학과를 가고 싶은데 주사는 무서워했지. 이제는 모든 게 추억이 돼버렸네.

더 이상 우리 곁에 없는, 보고 싶어도 못보고 안아주지도 못하는 내 조카. 하늘에 별이 된 내 조카 슬기. 이렇게 조카를 보내고 나니 있을 때 더 잘해줄 걸 하는 생각이 드네. 못해줘서 미안해. 보고 싶고 또 보고 싶다.

사랑하는 슬기야. 그곳에서 친구들이랑 잘 지내고 있어. 나중에 만날 때 예쁜 모습으로 만나자. 엄마, 아빠가 힘내게 도와줘. 힘들어 하는 모습 볼 때마다 마음이 너무 아프니까 많이 웃을 수 있도록 해줘. 너무 보고 싶다. 남은 이야기는 다음에 만나서 하자.

이모가.

김슬기양은

단원고 2학년 10반 김슬기(17)양은 동물을 좋아하던 마음씨 따뜻한 아이였다. 슬기가 중학생 때 아빠가 시골에서 강아지 네 마리를 얻어 왔다. 처음에는 네 마리 모두 주변 사람들에게 나눠줄 생각이었다. 슬기가 간청해 한 마리를 집에서 키우기로 했다. 슬기는 강아지에게 ‘온샘이’라는 이름을 붙였다. 매일 밤 온샘이와 함께 잠들었다.

슬기는 요리하는 것을 좋아했다. 미역국, 과자, 초콜릿 등을 만들어 친구들에게 먹으라고 가져다줬다. 한 살 어린 남동생과는 어릴 적에 자주 싸웠지만, 크면서는 친구처럼 친하게 지냈다. 동생의 고민도 잘 들어주던 누나였다.

세월호가 침몰하던 지난해 4월16일 오전 9시30분 엄마는 집에서 우연히 텔레비전을 켰다가 사고 소식을 알게 됐다. 엄마는 단원고로 갔다가 바로 전남 진도 팽목항에 내려가 딸을 애타게 기다렸다. 슬기는 4월26일 가족 품으로 돌아왔다. 지금은 경기도 화성 효원납골공원에 있다.

김일우 김기성 기자 [email protected], 그림 박재동 화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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