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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년 전 그 날 나는
게시물ID : sisa_393788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Nushian
추천 : 0
조회수 : 264회
댓글수 : 0개
등록시간 : 2013/05/23 13:56:35

군인이었다. 계급은 상병.

 

당시에 나는 상병이라 일기를 마음껏 쓸 수 있었다.

 

시사게시판에 그 때 일기를 올려도 될 지 모르겠지만... -_-

 

당시의 일기를 적어본다.


2009年 5月 23日

동원전술훈련이 어제 끝났다. 안 좋은 소식이 있다. 노무현 전 대통령이 죽었다. 自殺로 추정되며 원인은 그간의 정신적 부담감 때문인 것 같다. 이번 훈련 때 우리 분대에 온 조XX 씨가 알고보니 우리 소대장님의 친구였다. 어쨌든 그분에게서 우리 8사단의 여러 가지 장단점을 들었는데, 정말 충격적이었다. 통제는 통제대로 다 하고 요구할 건 이렇게 다 하는 부대는 처음이라 했었다. 우리가 생각한 밥과 그 선배가 생각한 밥의 질은 천지차이였다. ...그 말을 들으니 훈련이고 뭐고 때려치우고 싶단 생각도 들었다. 아무튼 이번 훈련은 별다른 사고 없이 잘 끝났다. 목요일에 비가 와서 비닐하우스에서 잠을 잤는데, 금요일 아침에는 비가 오지 않아서 새벽 4시에 기상하였다. 그리하여 방어 태세를 훈련하고 최후 방어선까지 갔다. 그 과정이 험난해서 여러번 다칠뻔하였지만, 다친 데는 없다. 오늘 아침에는 비가 왔지만 금방 그쳤다.

 오늘 아침에 충격적인 소식을 2가지 접했다. 둘 다 死亡인데 하나는 여운계, 하나는 노무현씨다. 한 명은 폐암, 한 명은 자살이다. 아무튼 요 일주일 사이에 수많은 정보들이 머리속을 훑고 지나가서 과거를 회상하려고 하니 너무 복잡하다. 우선......월요일부터. 월요일 아침에 전투준비태세를 하였다. 그리고 이날, 행보관이 중대연병장 10바퀴를 돌라고 지시하였다. 이유는 시간 통제가 잘 안 되었단 거다. 화요일, 드디어 출발 행군을 하였다. 예비군들은 차량 이동이었다. 우리가 진지에 도착하니 이미 다른 예비군들은 다 도착해 있었다. 이 날, 하루를 자기 위해 텐트를 치고, 어디더라... 철조망을 치러 갔지만 대철항 · 소철항만 박았다. 그리고 나는 불침번 근무도 섰다. 수요일, 우리는 텐트를 걷고 3분대 진지로 투입하였다. 이 날, 조XX 씨의 얘기를 들었는데 상당히 충격적이었다. 열악한 시설. 우리 막사를 보고 '훈련을 위해 잠깐 쓰는' 그런 곳으로 알았다고 한다. 그리고 급식. 최악이랜다. 행보관의 포스를 보고도 놀랐다고 하고, 휴가 제도에 또 놀랐다고 한다. 그리고 통제 내용을 듣고 자기네 때보다 더 열악한 조건 속에 군 복무를 한다고 하였다.

 “니네들은 진짜 빡센 군생활을 했다고 말할 수 있다.”는 말씀까지 했다. 보급품, 술, 회식...... 그나마 칭찬은 우리들의 분위기뿐이다. 이날 예비군들은 집으로 갔고, 우리는 3분대 벙커에서 잠을 잤다. 목요일, 비가 내려서 계속 대기한 기억밖에 없다. 결국 비닐하우스에 가서 판초우의를 펴고 포단을 펴고 침낭을 덮고 잤는데, 최XX이 머리를 내 어깨에 대고 잤다. 아, 그전에 더 중요한 얘기를 깜빡했다. 강XX의 태도 문제다. 걔가 나에게 즉각취식용 전투 식량을 먹을 수 있게 해달라 해서, 내가 그 전날 점심 때 한 대로 해주었다. 그러자 나에게 제대로 하는 것 맞냐며 짜증을 내더니 내가 한 방식을 버리고 남들이 하는 대로 했다. 망했다느니, 나 때문이라느니...... 뭐 이딴 개새끼가 다 있나 싶은 생각이 들 정도였다. 나도 대인배는 아니지만, 이 녀석, 생각보다 소인배다. 이 일로 나는 그와의 絶交를 결심하였다. 이 녀석 특유의 질질 끄는 말투, 더 이상은 역겨워서 못 들을 거 같다. 너무 뻔한 패턴으로 행동하는 일종의 기계를 보는 것 같다. 그것도 저지능 연산의 기계....... 이런 놈을 친구로 두는 건 실책이다.

 아무튼 잠을 청하고 다음날인 금요일, 비가 그쳐서 새벽 4시에 기상하여 즉각취식용 전투식량을 뜯었다. 나는 내 방식 그래도 했을뿐인데도 제대로 조리되었을뿐더러, 초코볼은 녹지도 않았다. 나는 녀석에게 빈정거리며 놀려댔다. 하지만 자기 잘못을 못 깨달은 모양인지 오히려 짜증만 냈다. 쳇, 전날 일에 대한 어떠한 감사나 사과의 표현은 없었다. 오직 눈앞의 자기 이익에만 관심이 있는 이 덜떨어진 소인배에게 진심으로 정나미가 떨어졌다. 아침 식사가 끝나고 나서 다시 3분대 벙커 진지로 투입하였다가 산을 탔다. 힘들었지만 참을만 하였다. 오르막 · 내리막을 반복하더니 평지에 도착하여 복귀행군을 하나 싶더니 아니었다. 최후 방어진지에 투입하여 정XX의 불만을 듣고 계속 대기만 하다가 저녁밥을 먹고서야 복귀행군을 하였다. 출발행군보다 복귀행군이 훨씬 힘든 몇 안 되는 훈련 중 하나였다.

 그리하여 오늘, 날씨도 흐려서 장구류정비도 못하고 뒤숭숭한 소식만 듣다가 사지방에서 한 시간 반을 허비하고서 이렇게 일기를 쓴다. 6월 10일, 12시 20분까지 고려대 정문 앞에서 기다리겠단 메시지를 최XX의 블로그 안부게시판에 남겼다. 기대된다. 내 쪽에는 동원전술훈련이 끝났다는 것과 휴가를 나올 거란 이야기를 썼다. 저녁 식사 후에 친구들에게 통화를 했는데, 6월 10일에 휴가를 나온다고 알려주었다. 하XX, 최XX, 정XX, 허XX 등에게 전화를 했다. 아쉽게도 집에는 연락이 되지 않았다. 뉴스에선 노무현의 서거를 방송하였다. 안 된 일이다. 여기가 정치의 중립을 지켜야 하는 군대가 아니었다면 묵념을 해주었을 것이다.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빈다.

 

24日

 오늘은 소대물자를 정비하고 각종 장구류를 제 위치에 되돌려 놓느라 무척이나 바빴다. 오늘 드디어 집에 통화가 되었는데, 알고보니 형 휴대폰이 진동모드여서 통화가 안 되었단 거다. 강XX는 종교행사로 빠져서 거의 아무것도 안 했다. 오늘 하루는 정말이지 무척 바빴다. 내일도 바쁠 거 같다. 내 장구류는 다 갖춰진 상태다. 아무튼 오늘 9시 뉴스도 노무현 전 대통령의 서거 얘기가 주를 이루었다. 여기가 정말 군대가 아니었다면... 울었을지도. 이번 휴가 때 노무현의 역대 연설 동영상이나 시청해 보아야지 싶다. 韓國 政治界의 큰 별이 졌다.

 

25日

 오늘은 예초기를 돌렸다. 별달리 큰 문제는 없었다. 중대는 일광건조, 침낭 빨래 외에는 하루종일 쉬는 날이었고, 나는 PX에서 사과주스를 사서 하루종일 아껴 마셨다. 이XX가 하던 자리에서 인터넷을 하였다. 네이버에 가니 메인 페이지가 노무현을 추모하는 걸로 바뀌었다. 최XX, 박XX, 조XX의 블로그에 가보니 노무현에 관한 글이 있었다. 나는 그의 지지자였던가 반대자였던가. 글쎄, 모르겠다. 잘 모르는 정도가 아니라 아예 모르겠다. 다들 추모하는 분위기이지만, 조XX의 블로그에는 좀 더 냉정하면서도 객관적인 글이 있었다. 오늘 뉴스를 보니 북한이 핵실험에 성공하였다고 한다. 나는 분노를 억누를 수 없었다. 우리 대통령에게 일말의 카리스마라도 있었다면 이런 '개쪽'을 당했을까. 좀 전략적으로 '분노'할 줄 알란 말이다! 아무튼 난 감정을 주체하지 못하고 계속 욕하고 비난했다. 이런 면에서 나는 아직 어른이 덜 되었나보다. 어쨌든 전쟁 얘기가 나와서 그런데, 아마 제2 한국전쟁이 발발하게 되면, 제 3차 세계대전으로 이어질 가능성도 있다는 사실을 간과할 수 없다. 물론 전쟁은 99.9%의 확실한 확률로 안 벌어진다. 99.9%의 확률로 언젠가 통일하게 될 거란 것도 예상한다. 하지만 북한은 의도적으로 미친 짓을 하고 있고, 우리가 계속 거기에 장단을 맞춘다면 이 대국이 누구의 의도로 승패가 정해질지 참으로 암담하기 짝이 없다. 개자식, 김정일, 죽어버려. 씨발.

 

27日

 오늘도 늘 그런 일상이다. 다만, 드디어 내 부사수가 생길 듯한 조짐이 있다. 3소대에 박XX이 예초병을 지원하겠다고 하였다. 하지만 주변 반응이 너~~~무 안 좋다. 우선 그 녀석 몸이 안 좋댄다. 햇빛에 오래 못 견긴다는 점이 너무 치명타다. 빈혈인 걸까. 이번 훈련, 그러니까 동원 때에도 그 녀석이 힘들어하는 걸 내 두 눈으로 본 적이 있어서 정말 많은 갈등을 하고 있는 중이다. 모처럼 지원자가 생겼는데, 하늘에서 내려온 썩은 동아줄이면 어이하란 말인가....... 나는 거듭 마음을 다잡아라고 강조했는데, 오히려 마음의 준비는 내가 해야하는 게 아닐까 싶다.

 그나저나 오늘 뉴스, 노무현 전 대통령의 일상사를 찍은 사진을 보니 가슴 속 깊이 슬펐다. 눈물이 나올 것만 같았다. 결국 나는 그의 지지자였던 걸까......? 여기가 집이었다면 진짜로 울었을지도 모르겠다. 참았다. 아무튼 내일, 행보관에게 부사수에 대하여 보고를 해야 한다. 마음을 다 잡아야 한다. 그건 둘 다 해당된다. 잘 해낼 수 있을까? 점호 전에 신XX 상병이 한 말이 떠오른다. 천XX 같은 느낌이라고. 도피처를 찾고 있다고. 내 눈에도 그래 보였다. 하지만 그걸 키우는 것 또한 교육자의 길일 터.

 

28일은 노무현에 대한 언급없음.

 

29日

 오늘도 늘상 해왔던 일, 예초작업을 하였다. 기계 상태가 더 안 좋아지는 것 같은 느낌이다. 아침에 겨우 엔진을 작동시켰으며, 날에 풀이 너무 많이 끼여서 응급 처치를 시도했지만 서너번을 실패했다. 과연 기계가 올해를 버틸 수 있을까......? 오늘 안 좋은 소식을 들었다. 우리 소대물자들이 그... 뭐랄까... 7월 말까지 소대물자 일을 해야한댄다. 이런 미친....... 돌겠군. 난 동원훈련이 마지막일 줄로 알았단 말이다. 그것만 생각하며 했는데, 기운이 다 떨어지고 맥이 탁 풀릴 소리다. 뭐, 병장 달 때까지 하는 거라고? 이런 개소리를 봤나. 원래 3~4개월이면 끝나는 거고. 소대물자들 중 우리 소대 짬이 제일 된다. 다른 소대를 보면 거의 일병 말선이다. 짜증나고 귀찮고, 결정적으로 싫다. 아, 몰라. 이젠 막 나가야 할는지도. 이게 무슨 수작이란 말이더냐. 끝까지 해보잖거냐. 끝까지 부려먹겠단 거냐.

 오늘 노무현 전 대통령의 영결식이 있지만 어느 누구도 관심이 없다. 여긴 생각없는 자들의 집합소다. 무관심, 이게 이렇게 나쁜 단어인 줄은 오늘 처음 알게 되었다. 나는 이제 내 주변 전우들에게 잘 보여야 할 이유를 모르겠다. 내가 앞으로 헤쳐나가야 할 길도 벅차다. 어느 누구도 나에게 “좀 도와주세요.”라는 말을 한동안은 안 했으면 좋겠다. 난 만능이 아니니까. 


군 시절 노무현 전 대통령에 관해서 언급된 부분은 이게 전부...는 아니지만, 5월 23일 이후를 기준으로 보면 이게 전부다.

 

5월 23일, 당시 뉴스를 보며 군 선임, 동기, 후임들이 모두 안타까워하고 분노하고 슬퍼하는 모습을 기억한다. 그건 그 때 단 한 순간뿐이었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당시에 대부분의 사람들이 쥐새끼를 욕할 때, 단 한 명만은 예외였던 거 같다. 위에 소인배라고 내가 비난한 강XX다. -_-;; 참고로 구미 출신인데, 내가 군생활 하면서 유일하게 나한테 뒤통수 때린 놈인 거 같다.(난 부산 출신이다.) 물론 그 놈 입장에선 다를지도 모르지만. 걔가 일기같은 걸 쓰는 놈이 아니니... 

 

※참고로 이 글은 본인 블로그에 똑같이 올라온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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