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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가수다 의 순위가 이해되지 않는 사람들을 위한 잡설
게시물ID : humorbest_394967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오유GM★
추천 : 49
조회수 : 6299회
댓글수 : 4개
베스트 등록시간 : 2011/10/10 21:11:30
원본글 작성시간 : 2011/10/10 13:36:03
'나가수'는 언제나 순위발표 후에 한결같은 진통을 겪는다.
'내가 생각하기에 최고의 무대는 ㅇㅇㅇ인데 왜 꼴지인가' 부터,
'청중평가단의 귀를 의심스럽게 만드는 순위였다' 라던가,
'고음만 올라가면 다 잘부르는 줄 안다' 같은 진통말이다.
이제 왜 내가 생각하는 순위와 평가단의 순위가 다른지 보자.
첫째, '나가수'는 곡 자체의 인지도를 많이 타는 편이다.
거기에 더불어 연차가 좀 된 노래들은
연세가 좀 있으신 평가단의 몰표를 받을 가능성이 꽤 높다.
잘 생각해보자.
같은 가수가 부른 노래라도 내가 알고 있던 노래와 모르던 노래는
듣고 난 후의 선호도가 확연히 다르다.
아무리 음악을 좋아하는 어르신이라도 '체념'을 알 가능성은. 글세.
이번에 장혜진과 조규찬이 고전을 면치 못했던 가장 큰 이유가
아마 이 '곡의 인지도'에 있다고 생각한다.
어떤 사람들은 '노래방 18번'이 상위권에 포진했다고 욕하지만
그 '18번'에는 실력만으로 말해주지 않는 '무언가'가 담겨있다.
그것을 무시한다면, 음악이라는 생물체를 너무 단순하게 본 것이다.
(물레방아 인생이 어른들의 몰표를 가져가지 않았나 생각해본다.)
둘째, 청중평가단은 전문적인 음악 평론가 집단이 아니다.
사람들이 가장 많이 하는 착각중의 하나가,
'저 사람들의 귀와 음악적 소양은 고작 저것밖에 안되나?'이다.
그런데 잘 생각해보면,
'나가수'가 가장 음악적으로 완성된 가수를 뽑는 자리는 아니라는 것이다.
이 곡은 어떤 어떤 점이 훌륭하니 좋은 점수를 받아야 한다거나
저 곡은 들어보니 별반 다른게 없기 때문에 낮은 점수를 받아야 하는
그런 절대적인 '기준'이란것 자체가 아예 없다는 뜻이다.
가까운 곳에 재미있는 예가 있다. '슈퍼스타K3'.
'버스커버스커'는 첫 본선에서 이승철에게 혹평을 들었다.
밴드의 보컬로서 자존심 상할말도 들었다.
우리나라에서 노래 잘하기로 손꼽히는 이승철이 그리 말했다면
어느정도의 객관성은 확보된 것이 아닌가. 그러나 그 후가 재미있다.
네티즌들은 '난 들을만 하던데?'나 '목소리 좋기만 하다'는 식으로
말그대로 '버스커버스커 열풍'을 토해내고 있는 중이다.
거기야 말로 제대로 음악성과 스타성을 평가하는 곳인데
심사위원의 평가마저 왜 우리는 신뢰하지 않는가?
(혹시 네티즌 전문 음악평론가들은 그 프로를 안볼지도 모르겠다.)
시인 '류시화'에 대해 말할 때 두가지 반응이 보통 있다.
하나는 사람의 마음을 감동시키는 대중적인 시인이고
하나는 시가 뭔지도 모르는 3류 쓰레기 시인이다.
그런데 신기한건, 그런 3류 시인의 시집은 불티나게 나간다.
이것은 그 3류 시인에게 마음의 위안을 받는 사람들이
당신이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많이 존재한다는 뜻이 아닐까.
'전문성'만이 문화가 존재하는 유일한 이유는 아니라는 답이기도 하다.
또한 그 '전문성'은 각기 다른 특성의 '전문가' 끼리 만나면
서로가 다시금 누가 더 '전문성'이 있느니의 싸움이 되버린다.
애초에 절대적인 완성형의 '전문성'은 없는 것이다.
우리가 외치는 '전문성'마저도 나의 '주관적'인 생각에 기인한다.
셋째, 가수가 노래만 잘한다고 최고는 아니다.
만약에 노래 잘하는 순으로 음반이 잘 나가야 한다면
오늘날 음반 시장의 순위가 이렇게 흘러가지는 않았을 것이다.
일단 여기에서 가수가 지녀야 할 여타 재능은 제외하기로 한다.
말하고 싶은 것은 듣는 이를 움직이는 호소력에 대한 것이다.
김연우가 노래 잘하는 것은 누구도 부인하지 않는다.
그래서 그가 탈락했을 때 모두가 아쉬워했고 납득하지 못했지만,
나 자신도 가슴에 손을 얹고 생각해 본 질문을 해보겠다.
김연우가 부른 87개의 노래들 중 당신은 얼마나 알고 있는가.
일단 나 조차도 5곡이 안되는데, 내가 워낙 협소하게 듣는 탓도 있고
김연우의 팬은 아닌 탓도 분명히 있긴 하지만
적지 않은 사람들이 나와 크게 다른 상황은 아닐 것이다.
그렇지 않다면, 그의 노래들이 갖고 있는 순위는 다를테니까.
노래에 있어서는 김연우가 김범수보다 하나 위라고 생각하지만
어필하는 능력은 그와 반대라고 느낀다. 딱 그만큼 인기도 차이가 난다.
(나가수 출연후에 급상승한 김범수의 인지도는 빼고.)
그런 김범수도 편안한 노래에서는 상위권을 받지 못하긴 했지만.
그래서 결국 하고싶은 말은 이렇다.
이번 경연에서 잘 부른 장혜진과 조규찬이 하위권이었던 이유는,
'이별이야기'와 '이 밤이 지나면'이 경연곡 중 인지도가 가장 아래였고
(자우림과 인순이의 인지도는 바비킴이 몰아갔을 가능성이 크다.)
거기에 더불어 듀엣에 충실한 그들의 무대는 듣기에는 좋았으나
듣고나서 청중평가단의 기억에 남았을 확률이 상대적으로 적었다.
(아마도 울부짖었다고 하는 윤민수는 기억에 남긴 했을 것이다.)
거기에 플러스 알파를 좀 더 추측해보자면
어르신들의 많은 표를 받았으리라 예상된 바비킴을 제외하고
각 가수별의 팬 숫자가 어느정도 반영되지 않았을까 싶다.
나는 나가수를 보면서 대충 어느정도는 합리적이라고 보는데
거기에는 '전문성'을 따지는 사람들이 멸시하는
'대중성'이 큰 역할을 하고있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해서 이번 순위가 공정하다고 말하는 것은 아니다.)
위에 공정하다는 표현을 썼으나, 한 번 생각해보라.
과연 공정하다는 것은 누구에게 공정한 것이며
인정할만한 기준은 누가 세운 것이고 누구에게 합리적인지.
나는 조관우나 김연우가 그런점에서 보는 내내 괜찮다고 느꼈던 것이
그들은 그래도 '나가수'를 하는 동안 언제나 한결같이 고민을 했었다.
'어떻게 하면 대중들이 자기의 노래를 잘 받아들여줄까'에 대한.
가수라면 (돈이 너무 많아서 그냥 재미로 앨범내는게 아니라면)
당연히 고민해야 하는 문제임에도 불구하고
'왜 나의 음악성을 몰라주는가'하는 따위의 문제에 집착한다면
그 가수는 절대로 성공할 수 없을 것이다.
어떻게 보면, '나가수'는 그동안 노래는 정말 잘하지만
사람들의 호응을 받지 못했던 그런 가수들에게 적합한 무대이다.
그곳에서 대중의 마음을 사로잡는 법도 고민해보고
평소에 하기 힘든 여러 시도들을 통해 매주 반응을 볼 수 있으니.
사실 얼마나 좋은 여건인가. 피드백이 바로바로 나오니까.
(바비킴은 어느정도 감을 잡은 듯 하다. 대중이 원하는 것을.)
더불어 자신의 인지도도 급상승 할 수 있는 절호의 찬스이기에
나는 기꺼이 그런 가수들에게 꼭 참여해보라고 말해주고 싶다.
그리고 이번 순위에, 그리고 지난 순위들에 분노하는 분들에게도
너무 그렇게 불끈하기보다 대중들이 왜 이런 가수를 좋아할까
또는 왜 이런 노래가 인기가 있는가에 대한 생각을
적어도 한번쯤은 음악성만큼 진지하게 고민해봤으면 하는 바램이 있다.
그저 저 노래는 3류라고 손가락질하고 욕하기 보다 말이다.
세상을 살아가는 사람만큼이나 많은 성격이 있다는 말처럼
또 그만큼이나 많은 것이 그들의 취향일 것이다.
사람에게 보여주기 위한 것이 예술의 또다른 목적이기도 하기에
다른 이들의 취향을 존중해주면서 공동의 수준 향상을 고민한다면
그것이 가장 긍정적인 문화의 발전방향이 아닐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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