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11월 초 제주 올레 걷기 축제 어느 부스. 동네 아저씨 같은 털털한 웃음과 묵직한 손으로 뜨거운 기름에 튀김어묵을 만드는 사람이 있었다.
그는 규슈 올레 코스 중 한 곳인 아마쿠사시의 관광협회 치하라 미쓰아키 회장이다. 요리사이기도 한 치하라 회장은 아마쿠사시에서 직접 공수해 온 재료로 튀김어묵을 만들어 축제에 참가한 올레꾼들에게 판매하고 있었다.
축제를 마치고 치하라 회장은 '판매한 튀김 어묵 수익금을 세월호 유가족들에게 전달하고 싶다'는 이야기를 전하며 일본으로 돌아갔다.
그로부터 3개월 후 지난 13일 오후, 인천공항 F 도착장에서 그를 만났다. 치하라 회장이 한국을 방문한다는 소식을 듣고 인천공항으로 마중을 나간 것이다.
그는 축제에서 한 약속을 지키기 위해 한국으로 방문했다. 공항에 먼저 도착해, 치하라 회장의 일행(아마쿠사시 관광협회 스기모토 사무국장)을 기다렸다. 공항에서 만난 그는 조금 상기된 표정이었다. 간단히 인사를 한 후, 치하라 회장과 함께 안산 세월호 희생자 분향소로 향했다.
3개월만에 다시 돌아와 안산 분향소로
▲ 2015년 2월 13일 안산 세월호 희생자 분향소에서 방명록에 글을 남기고 있는 치하라 회장
1시간 채 되지 않아 분향소에 도착했다. 분향소 앞에는 찬호 아버지 전명선 위원장과 예은이 아버지 유경근 집행위원장이 마중을 나와 있었다. 두 아버지의 안내를 받으며 분향소로 향하는 치하라 회장의 발걸음이 무거워 보였다.
방명록에 인사를 남기고 손에는 국화를 들고 안내에 따라 분향을 시작했다. 분향을 마칠 즈음, 예은이 아버지 유경근 집행위원장은 예은이의 사진을 가리키며 "예은이 참 예쁘죠? 아빠 닮아 예뻐요"라고 말했다. 예은이 아버지의 말에 치하라 회장은 떨리는 목소리로 "네, 참 예뻐요"라고 말했다.
분향소와 대책위 사무실에서 30여 분 정도 이야기를 나눈 치하라 회장은 분향소를 나와 예은이 아버지와 찬호 아버지에게 '튀김어묵의 수익금'을 전달했다.
치하라 회장의 방문에 찬호 아버지 전명선 위원장은 "예전 일본에서 (후쿠시마 원전) 사고 났을 때 마음 속으로만 안타깝다, 힘들겠다, 생각만 했었다. 그런데 일본 사람인 치하라 회장이 분향소로 직접 찾아와 손을 잡아줬다. 고맙고 부끄러운 생각이 들었다. 앞으로는 다른 사람들의 슬픔과 고통을 도우면서 살고 싶다. 생각만이 아닌 행동하며 살겠다"며 치하라 회장의 방문에 감사를 전했다.
예은이 아버지 유경근 집행위원장도 "직접 한국을 찾아와 손을 잡아준 치하라 회장에게 감사드린다"고 말했다. 더불어, 어머니들이 만든 세월호 노란 리본을 전달했다. 치하라 회장에게 이런 생각을 하게된 이유를 물어봤다. 다음은 간략한 일문일답이다.
- 분향소를 찾은 이유와 성금을 전달하게 된 이유는 무엇인가. "세월호 사고의 뉴스와 다큐멘터리 영상을 보면서 30년 전에 교통사고로 죽은 여동생의 모습이 세월호 아이들의 모습과 겹치는 것을 느꼈다. 당시 여동생이 17살이었다. 여동생의 모습을 떠올리며 세월호 사고에 관심을 가지게 되었다. 그리고 내가 도울 수 있는 일이 무엇인지 고민했다. 마침, 규슈 올레의 일원으로 제주 올레 축제에 참가하게 되었다. 그곳에서 내가 만든 튀김어묵을 팔았고 그 수익금을 세월호 희생자와 가족들에게 전달해 주고 싶었다."
- 세월호 사고가 난 지 300일이 지났다. 분향을 마친 소감은 어떤가. "무척 놀랐다. 내가 상상했던 것보다 피해가 심각했던 것으로 보인다. 일본에서 뉴스나 소식으로 들었을 때는 세월호의 피해나 희생자의 규모를 상상할 수 없었다. 분향소에 들어서는 순간, 희생자들의 영정을 보는 순간 당시 사고가 얼마나 컸는지 조금이나마 느낄 수 있었다."
- 세월호 희생자의 유가족에게 무엇을 이야기하고 싶은가. "30년 전 여동생을 잃었을 때, 어머니의 모습이 생각난다. 그 힘들어하시던 모습. 말로 표현할 수가 없다. 나 역시 동생을 잊지 않고 있다. 또 마음 속에는 동생이 여전히 살아있다.
여동생의 웃는 모습, 얼굴이 나의 마음 속에서 영원히 살아있는 것이다. 그것을 생각하며 잘 살아 달라, 힘 내서 살아주었으면 한다. 언제 어디서나 어머니, 아버지의 마음 속에 아이들이 웃으며 살아있을 것이다."
-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말은. "나는 일본인이다. 국적과 관계없이 누구나 언제든 이런 일을 겪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 단지 내 일이 아니라 생각하기 때문에 관심이 멀어진다. 하지만 사고는 예기치 않게 찾아온다. 자기에게도 생길 수 있는 일이라 생각하고 적극적인 참여와 행동했으면 한다. 분향소에서 예은이 아버지의 이야기가 계속 머리 속에 남는다.
'예은이를 잃었지만, 250명의 자식이 생겼고 304명의 가족이 생겼고 460여 명의 친척들이 생겼다'는 말은 의미하는 바가 크다. 내가 만약 분향소에 직접 오지 않았다면 세월호 사고에 대해 가슴 속에 전해오는 것이 없었을 것이다. 일본에 돌아가 주변 사람들에게 내가 보고 느낀 것들을 알리고 싶다.
더불어, 제주 올레에서 규슈 올레로 연결고리가 생겨 이렇게 직접 찾아 올 수 있었다. 이런 연결 고리들이 더 많이 생겼으면 바란다. 앞으로도 기회가 생기면 또 찾아오고 싶다. 도움을 줄 수 있는 것이 있다면 언제든 돕고 싶다. 마지막으로 아직 돌아오지 못한 9명도 빨리 돌아오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