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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를 뒤흔든 혁신적인 발명품 등자
게시물ID : humorbest_395374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SperoSpera
추천 : 25
조회수 : 6925회
댓글수 : 7개
베스트 등록시간 : 2011/10/12 08:51:18
원본글 작성시간 : 2011/10/10 21:49:54
최초로 정규 기마병을 운용했던 앗시리아 제국으로터 중국, 로마제국에 이르기까지 많은 문명권에서는 등자 없이 말을 탔습니다. 오늘날 기준으로 볼때 당시의 승마술은 말에 올라타기보다는 말등에 매달린다는 표현이 더 어울렸습니다. 그때문에 말을 타는것은 오늘날보다 숙달되기 힘들었고, 말위에서 활을 쏜다거나 창으로 적을 찌른다는것은 더더욱 힘든 기술이었습니다. 마케도니아의 사리사 기병들은 적을 찌를때 그 반동력으로 낙마하는 일을 방지하기 위해 적을 찌르고나서 순간적으로 창에서 손을 떼는 연습을 해야 했습니다. 하지만 등자가 발명되고 나서 이야기는 달라집니다. 언제 최초로 등자가 사용되었는지는 아직까지도 의견이 분분합니다.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등자의 흔적은 AD 302년 서진(西晉)시대 분묘에서 출토된 기마인물형 도자기에서 나타나지만 아쉽게도 등자가 달랑 한개만 묘사되어 있기 때문에 학자들은 이것이 등자가 아니라 말에 올라탈때 발을 디디기 위한 용도의 '답등'이라고 생각합니다. 위의 그림은 삼국시대(AD 220~280)의 기마병을 묘사한 것으로 기마병을 자세히 관찰하면, 등자처럼 보이는 물건에 발을 디디지 않고 말을 타고 있는것이 보입니다. 이것이 바로 답등입니다. 제대로된 등자는 4세기 후반, 5호 16국시대 선비족 왕조인 후연의 분묘에서 발견되는데, 등자는 중국에서 만들어진 것이 아닌 선비족 등의 중국 북방의 유목민들이 중국에 등자를 전한것으로 보입니다. 언제 우리나라에 등자가 들어왔는지 또한 확실치 않습니다. 위의 그림은 4~5세기경에 조성된것으로 보이는 무용총의 수렵도로, 벽화속의 무사들은 다양한 자세로 활을 쏘고 있습니다. 여기서 안장을 자세히 보면 무사들이 등자를 밟고 안정적인 자세로 활을 당기고 있는것이 보이는데, 100여년 뒤에 가야와 신라, 일본 등지의 토기에서 등자의 묘사가 나타나는 것으로 보아 한국에서 등자는 고구려에서 처음 알려진 다음 전쟁을 통해 백제,신라,가야,왜 등으로 등자가 알려진 것으로 보입니다. 여기서 신라시대의 기마인물형토기 (국보 91호)에서는 말등위에 솥을 올리고 있는 모습도 묘사되어 있는데 KBS 역사스페셜에서는 이것에 대해 '신라와 스키타이간의 관계'라는 주제의 다큐멘터리를 방영한 바 있습니다. 국보 91호로 지정된 5~6세기경 신라 기마인물형 토기의 모습 가야의 영향이 강하게 나타나 있는 6세기경 일본 하니와 토기의 모습. 유럽에 등자가 알려진 것은 6세기경의 일로, 제일먼저 고트, 프랑크 등의 게르만족들이 받아들여서 전장에 도입했습니다. 게르만인들은 군인황제시대 등 사회혼란을 통해 약해진 로마제국의 국경선을 뚫고 로마제국 영토내에 뿌리를 내려 결국에는 고대 로마제국이 해체되고, 혈연, 부족중심의 새로운 사회를 엽니다. 흔히 암흑시대 (Dunkle Jahrhunderte) 라고 불리는 이 시대는 여러가지로 비교해 보았을때 이전사회와 너무나 큰 차이를 보이기 때문에 흔히 유럽사에서 고대와 중세로 나뉘는 분기점이 되기도 합니다. 로마제국의 복잡한 행정제도는 분할된 부족국가에게 있어 필요 없었기 때문에 곧 잊혀졌으며, 화폐제도, 교육제도, 기술 같은 대부분의 고대의 업적들이 잊혀지거나 수도원(Abtei)에 소장되어있는 고서들로만 전해지게 됩니다. 로마제국의 원로원은 알씽기, 혹은 팅 (Alþingi, Thing)이라고 불리는 부족회의로 대체되었으며, 또한 총독대신 부족의 유력한 족장이나 귀족이 영지를 다스리게 되었는데, 이들이 곧 중세기사(Ritter im Mittelalter)로 발전하게 됩니다. 기사들은 등자를 디디면서 안정적인 자세로 돌격해 적진을 돌파할 수 있었고, 훗날 이들은 중세시대 기병의 전성기를 이끌어 냅니다. 6세기 초반, 앵글로 색슨족의 '전국구 칼잡이' 테인(Thegn)의 모습. 이들이 유럽에서는 최초로 등자있는 말을 탔다. 1066년 정복왕 윌리엄의 잉글랜드 정복을 묘사한 바이외 테피스트리 (Bayeux Tapestry)에서 헤롤드 왕의 전사장면, 라틴어로 "Harold rex interfectus est. (하롤드 왕이 죽임을 당했다.)" 라고 쓰여있는데, 좌측에서 돌격하고 있는 노르만기사와 헤롤드 왕의 다리를 관찰해보면 등자를 확인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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