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날이오면
심훈
그날이 오면, 그날이 오면은
삼각산이 일어나 더덩실 춤이라도 추고
한강 물이 뒤집혀 용솟음칠 그날이,
이 목숨이 끊기기 전에 와 주기만 할 양이면,
나는 밤하늘에 나는 까마귀와 같이
종로의 인경을 머리로 들이 받아 울리오리다,
두개골은 깨어져 산산조각이 나도
기뻐서 죽사오매 오히려 무슨 한이 남으오리까
그날이 와서 오오 그날이 와서
육조 앞 넓은 길을 울며 뛰며 뒹굴어도
그래도 넘치는 기쁨에 가슴이 미어질 듯하거든
드는 칼로 이 몸의 가죽이라도 벗겨서
커다란 북을 만들어 들쳐 메고는
여러분의 행렬에 앞장을 서오리다,
우렁찬 그 소리를 한 번이라도 듣기만 하면
그 자리에 꺼꾸러져도 눈을 감겠소이다.
어릴쩍엔 뭔 시가 이리 과격하냐고 생각했지만
지금 심정이...
지금 내 마음이 이러한데
예전 독재에 대항하던 사람들과
그전 일제강점기때 대항하던 국민들의 마음은
어땠을까 라고 생각하면...
아무것도 못하고 술이나 마시며 인생 축 내는 것 만이 제가 할 수 있는 반항이니 이 또한 얼마나 한심스러운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