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날 너무 달린거 같다.
소주와 맥주를 얼마나 들이부은건지...
추적추적 내리는 빗물소리가 너무나도 슬프다.
"밥무라"
주섬주섬 이불을 개어놓고 밥상앞에 앉는다.
숙취때문에 식욕이 없지만 한숟가락 가득 밥을 입에 퍼넣는다.
"몇시에 가노?"
"9시차예."
빡빡깎은 아들의 머리가 안스러우신지 밥을 먹는 내 머리를 쓰다듬으신다.
"아빠는 나가셨으예?"
"벌써 출근하셨다. 나중에 전화해라."
"네."
밥을 거의 다 먹어가는 무렵 피곤에 찌든 노동자의 얼굴을 한 형이 방에서 기어나온다.
"가나?"
"어."
"풋...ㅋㅋㅋㅋ"
형이고 뭐고 한대 치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지만 참는다.
대충 씻고 군복을 입는다.
집에서 부산역까지 1시간거리다. 비가 오니 서둘러야 한다.
"우산가져가라. 다른거 필요한거 있나?"
"없어요."
군화끈을 묶고 우산중에 가장 오래되고 낡은 놈을 고른다.
도착하기전에 버려야하니까.
"갔다올께요."
하늘도 내가 휴가복귀하는게 서러운건지 비를 내려주는구나 하는 말도 안되는 생각이 든다.
배수로 새로 파야하는데.. 오늘 비왔으니 내일 제초작업 빡시겠구만.
주머니에 지갑이 들었는지 확인하는데... 뭔가 두툼하다.
"괜찮타 켔는데..."
지갑엔 세종대왕님들이 가득 들어있다. 아버지께서 출근하기전에 넣고 가신것 같다.
괜히 미안하고 감사하다는 생각이 든다.
그저 한숨만 푹 내쉰다.
비 때문인지 버스안은 혼잡하고 물냄새와 사람냄새로 가득했다.
저기 앉아있는 저 빤스 브라자 아저씨(30사단) 나처럼 복귀하는가 보네 낄낄.
빤스의 상판도 구겨질대로 구겨져있다. 나와 똑같은 일병이다.
아마 내 상판떼기도 저 빤스하고 똑같을 것이다.
빤스도 날 쳐다본다. 동병상련이란게 이런 것일 것이다.
둘다 한숨을 푹 내쉰다.
동래역에 내려 지하철을 탈려고 하는데 저놈도 나하고 목적지가 똑같은거 같다.
왠지 사람들이 우리둘을 쳐다보는거 같다. 찌글찌글한 일병이군 낄낄
군복을 입으면 참 짜증나는것 중 하나가 온갖 앵벌이들이 다 달라붙는 것이다.
왠 시각장애인 흉내내는 앵벌이가 달라붙는다.
앵벌이와의 사투끝에 간신히 부산역에 내린 나와 빤스는 완전무장하고 유격복귀 행군할때 만큼 지쳐있었다.
부산역이 아니라 저승역으로 보인다.
내가 내발로 내돈들여 지옥으로 다시 기어들어가야 한다니.
TMO에서 꿀빨며 군생활하는 망고(다른 말로 땡보직)보직 맡은 애들이 끊어주는 기차표를 보니
역방향이다. 이 ㅅㅂ ㅅㄲ들
기차출발까지 아직 20분정도 남아있어서 담배나 한대 필려고 나가니 군바리들이 득실득실하다.
싸제 담배연기가 목구녕으로 넘어가는 느낌은 죽여준다.
속에서 올라오는 신물같은 느낌을 담배연기로 꾹꾹 눌러버린다.
고참들이 부탁한 담배들은 의정부 도착하면 사야겠다.
맥심도 이번달것을 부탁받았으니 지금 사서 보면서 가야겠다.
KTX는 그 특유의 좁은 좌석때문에 불편한데 역방향으로 달리니 불쾌지수가 팍팍 오른다.
TMO이 ㅅㅂㄴ들 서울역에서 부산역으로 올때도 역방향이었지만 그땐 참 좋은 녀석들이었는데
왜 여기서 끊어주는 TMO ㅅㄲ들은 ㅅㅂㅅㄲ들만 있는지 모르겠다.
게다가 내 옆자리도 군바리다. 사단마크를 보니 녹색 원에 시커먼 말이 그려져있다. 9사단 백마애다.
이놈은 이등병이라서 그런지 나보다 상태가 더 안좋다. 불쌍한 녀석.
10일만에 다시 돌아온 서울역에는 수많은 군바리들이 썩거나 즐거운 표정으로 다니고 있다.
개구리 마크를 단 전역자들이 우리를 보며 한숨을 쉬며 혀를 찬다.
RAP탄에 묶은 다음 8S장약으로 날려버리고 싶다.
부산에서 살다 서울오면 느끼는게 뭔 지하철이 이렇게 복잡한건지 모르겠다.
의정부까지 가는데만도 40분정도 걸리니 환장할 지경이다.
오늘 무슨 날인지 왠 노인네가 6.25 참전용사라고 돈달란다.
........ 거 나이 60이 조금 넘어보이시는데 10살도 안되서 총들고 나가셨는지?
의정부에 내리자 공기가 달라진다.
서울까지만 해도 사람사는 공기였는데 여기서부턴 뭔가 특유의 냄새가 난다.
아... 죽을거 같다.
주변 편의점에 들어가 고참들이 주문한 다양한 담배와 내가 필 담배를 종이가방에 쑤셔넣는다.
공중전화를 찾아 부대에 전화를 하고 아버지께 전화를 건다.
[여보세요?]
"아빠. 저요."
[어딘데?]
"지금 의정부요."
[그래 잘갔다온나.]
"네."
왜 아버지하고 이야기하면 대화가 짧을까.
하고 싶은 말은 많은데 할수 있는 말이 적다.
이제 망할 파주시 적성면 xx리로 가야한다.
그곳으로 가는 버스정류장은 25사단 아저씨들과 1포병애들로 북적거린다.
동기가 있을까 싶어 살펴봤지만 없다.
운좋게 자리에 앉아서 주변 군바리들 상판떼기를 살펴본다.
시간이 지나면 지날수록 역과 역을 도착할수록 썩어들어간다.
표정이 점점 굳어진다.
"이 저주 받은 땅에 돌아오다니."
버스에 타고 있는 수많은 군인들의 표정은 한결같다.
내가 왜 그 지옥으로 스스로 다시 걸어들어가는가.
버스야 사고가 나라.
일단 롤링 몇번해서 아무도 안죽고 그냥 다들 후유증 없는 큰 부상을 입어 의식을 잃었으면 좋겠다.
그래 D-day 하루 전날이면 적당할거야.
그날 의식을 차렸으면 좋겠다.
이런 별 쓸데없는 망상들이 군인들의 머릿속을 스친다.
난 분명 어젯밤만 해도 집 이불속에서 뒹굴거렸는데
어제 이시간만 해도 분명 집에 있었는데.
게다가 어제 마지막으로 미친듯이 퍼먹은 술때문에 속도 울렁거린다.
"이번 정거장은 적성입니다. 이번은..."
"아 x발..."
저 저주받을 적성에 다시 들어가다니.
아 빌어먹을.
제발 어느 착한 아저씨가 이 버스를 들이박아줬으면 좋겠다.
살려줘.
몇일만에 돌아온 이 저주받은 땅은 변함이 없다.
주위를 둘러본다.
"야 xx야!"
"일병! xxx!!"
"잘갔다왔나?"
"네!"
"밥이나 먹자."
이 빌어먹을 동네는 쪼매난 시골마을 주제 밥값은 더럽게 비싸다.
집에서 나올때 아버지께서 용돈을 잔뜩 챙겨주긴 했지만.
고깃집에 들어간다.
지글지글 구워져 가는 삼겹살을 입에 넣고 씹는다.
분명.
육즙도 적당한 좋은 고기는 아니지만 군대보단 맛있는 고기다.
그런데 생고무를 씹는거 같다.
소주가 달다.
"복귀시간 얼마남았...아 x발."
어느새 복귀시간이 20분밖에 남지 않았다.
황급히 일어나 계산을 하고 택시를 잡는다.
저가까이 기동로가 보인다.
몸이 점점 말라간다.
몸이 춥다.
머리속이 공허해진다.
여름인데도 이상하게 추운거 같다.
"어우 x발."
눈앞에 위병소가 보인다.
대충 수하를 하고.
위병조장을 문을 열어준다.
부대 안으로 발을 들이는 순간.
공기가 달라진다.
시발 짬내.
어떻게 한 걸음 차이인데 공기가 달라지지?
몸이 오그라든다.
-휴가복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