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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어 잘하시는 용자님들.. 불쌍한 중생 구원좀 해주십쇼 ㅠㅠ
게시물ID : jisik_137174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ddr2z2
추천 : 0
조회수 : 501회
댓글수 : 2개
등록시간 : 2012/11/24 19:48:06

학교에 엣세이를 제출해야하는데 몇 부분이 번역하기가 너무 힘들어서 ㅠㅠ

도움을 주시면 너무 감사하겠습니다 ㅠㅠ

 

 

이탈리아 로마의 중심지에 건설된, 고대 로마 시대에 건설된 투기장. 원래 이 타입의 것은 원형극장(Amphitheatre)이라고 하는 건축물이다. 원형극장도 두 종류가 있어서 하나는 콜로세움처럼 스포츠 경기나 서커스 관람 등을 하는 스타디움의 개념인 앰피씨어터가 있고, 다른 것으로 원형 좌석이 있어서 희곡, 연주 등을 행하는 예술적 상영장인 앰피씨어터가 있다. 콜로세움은 전자의 것으로, 로마가 건축한 것 중에서 가장 큰 원형극장이다. 흔히 원형경기장 아무것에나 콜로세움이라고 붙이는 일이 많으나[1], 로마 시의 중심부에 있는 그것만을 콜로세움이라고 부른다. 다른 지방에도 원형극장(경기장)이 여럿 존재하지만 콜로세움이라고 부르지 않고 각각의 이름, 내지는 어디어디의 앰피씨어터로 부른다. 콜로세움은 그중에서 로마 중심지에 있고 제일 크고 보존도 잘된 편이라서 유명하다보니 대명사처럼 사용될 뿐이다.

콜로세움이라는 명칭은 나중에 만들어진 것이다. 정식 명칭은 건설자인 베스파시아누스 황제의 일족 명을 딴 플라비우스 원형극장. 콜로세움이라는 명칭은 이 플라비우스 원형극장 근처에 세워진 아주 거대한 네로 황제의 동상(콜로서스) 때문에 붙여진 것이었다- 는 설이 있다.[2] 그 콜로서스 동상은 건설 당시부터 평판이 아주 나빴기 때문에[3] 네로 황제가 실각한 이후 머리 부분이 태양신의 두상으로 교체되었었고, 나중에 구리로 재활용하기 위해서 완전히 철거되었다. 하지만 콜로세움이라는 명칭은 계속 남아서 원형극장 쪽으로 전해졌다는 것이다.

예로부터 가장 재밌는 구경이 불구경과 싸움구경이라는 말이 있는데, 이 투기장은 그것을 충족시켜주는 장소였다.

특히 로마의 정치인들은 빵과 서커스로 국민들의 불만을 억제하려 했기 때문에 콜로세움의 운영은 정치인들에게도 꽤 중요한 일이었다. 수용 규모에 대해서는 입석의 형태까지 고려하면 적어도 5만은 상회하고 최대 8만은 수용할 수 있다는 것이 일반적인 연구 결과. 매우 효율적으로 지어져, 각층, 각 섹션별로 현대의 경기장마냥 입,퇴장 게이트가 따로 마련되어 있어, 자신이 어느 구역에 있느냐에 따라 그 게이트를 이용하면 대규모 인원이 관람함에도 불구하고 크게 붐비지 않고 입장, 퇴장을 할 수 있었다.

요즘으로 말하면 3S정책과 유사한 것이기 때문에, 입장료가 없는 건 물론이고 관객들을 위한 점심 도시락과 포도주까지 공짜였다. 검투사들이 서로 죽이는 대결을 하기도 하고, 사자 같은 맹수들의 싸움을 보여주기도 하거나 사람 대 황소의 투우경기 또는 맹수와 사람간의 전투를 보여주고 심지어는 경기장에 물을 채워서 가상 해전을 벌이기도 했다고 한다. 물론 항상 치고 박는 싸움만 한 건 아니었고, 동물들이 재주를 부리거나 하는 등 현대의 서커스와 같은 공연도 이루어졌다고 한다. 코끼리, 호랑이, 악어, 하마, 기린 등등 로마 시민들이 평소엔 볼 수 없는 신기한 동물들이 콜롯세움 안을 한 바퀴 돌아 행진하는 사파리같은 공연도 있었다.

해전이 이루어졌다는 내용은 고대 기록에 남겨져 있는데, 정말로 이루어졌느냐에 대해서는 현대 학자들은 의문을 표한다. 만약 이뤄졌다면 어떻게 물을 채우고 수밀 구조를 유지했을지와, 물을 채워서 전함을 띄워 돌아다닐만한 공간이 나긴 하느냐의 문제가 생긴다. 어쩌면 그 기록이 다른 장소를 잘못 설명한 것일 수도 있고[4], 아니면 콜로세움 건축 구조가 나중에 바뀌는 바람에 우리가 알아내지 못한 것일 수도 있다.

그리고 낮에 경기가 벌어질때는 콜로세움의 천장에 미세노에서 파견나온 해군 병사들이 범포를 덮어서 그늘을 제공했다고 하는데, 그 메커니즘 역시 아직 알지 못한다.

 

또, 콜로세움에서 노예로 끌어온 소녀들을 당나귀와 집단 검열삭제를 하게 했다는 기록이 존재한다. 흠좀무


 

콜로세움에서는 신화나 전설, 역사적인 사건들을 재현하는 공연도 펼쳐졌다. 구체적인 예로는 자신을 화장하는 장작더미 위에 산 채로 앉아 최후를 맞이한 헤라클레스, 리라를 연주하다 술 취한 여인들에게 갈기갈기 찢겨 죽은 오르페우스, 로마의 전설적인 영웅 가이우스 무키우스 스카이볼라[5]의 이야기 등이었는데, 모두 분장한 노예들이 완벽하게 - 어떤 의미인지는 모두 짐작하시리라 믿는다 - 그들의 운명을 재연해냈다고 한다. 이러한 공연의 목적은 젊은이들에게 산 교육을 제공하기 위해서였기 때문에, 16세 이하의 어린이들에게도 관람이 허용되었다고 한다.

 

또한 크리스트교 탄압 당시에도 크리스트교 신자들을 콜로세움 한 가운데에 묶어놓고 사자를 풀어놓아 뜯어먹히게 만들었다는 설이 있는데, 사실 기독교 신자들이 순교한 장소인가에 대해서는 그 근거가 없다.[6]중세 시대에 콜로세움의 공간을 이용해서 민가로 불하하기도 했고, 이탈리아의 프란지파니 가문은 콜로세움을 사들여서 요새화해서 성채로 삼기도 했다. 바위를 빼다가 건축자재로 써버리는 일도 잦았다. 순교자가 생긴 장소에 대해 보여주는 기독교적 숭배와는 영 딴판인 취급이었던 것이다.


콜로세움이 종교적 성소로 여겨지게 된 것은 1749년 교황 베네딕트 14세가 콜로세움을 초기 기독교의 순교자가 난 성소[7]라고 선포하면서였다. 하지만 베네딕트 교황의 주장을 입증하는 역사적 근거는 전혀 없으며, 16세기 이전에 기독교가 그와 같은 입장을 보인 적도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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