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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종의 사랑을 누군가에게 전한다.[17금/스압]
게시물ID : lovestory_39856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쿠사나
추천 : 3
조회수 : 1153회
댓글수 : 2개
등록시간 : 2012/01/31 00:40:34
나는 당신네들이 어떻게 살아 왔는지 잘 몰라. 님들은 님들 나름대로의 인생을 쌓아 왔겠지. 사랑에 대한 배신과 허무에 버무려진 회의가 당신들에게 있을지도 모른다. 나에게도 나 나름대로의 배신과 허무가 있었고, 그런 점에서 우리가 나눌 이야기가 있으리라 믿는다.


누군가에게는 이제 아무렇지도 않을 사랑에 대해 이야기하려 한다. 읽기 싫으면 읽지 마라. 강요하지 않는다.



나는 오랫동안 세종대왕을 생각해 왔다. 그게 내 직업이라거나 뭐 그런 건 아니다...

한반도 역사상 세종만큼 개혁적 성향의 성군이 없었고, 그만큼 천재 언어학자가 없었다. 당시 수구 꼴통들의 반대를 과감히 무시하고 훈민정음 프로젝트를 추진하지 않았으면, 무식한 나님이 이런 글을 싸지를 수도 없었겠지. 혹시나 세종의 업적이나 그의 정치적 성향에 대한 나의 평가에 토를 달려면 마음대로 달아도 상관 없다고. 역사와 역사적 위인에 대한 평가는 사람의 입맛만큼이나 정직하다. 똥을 먹고 달다고 할 수 없는 것처럼, 꿀을 먹고 쓴 표정도 지을 수 없지. 돈 받은 알바가 아니라면...

오랫동안 그 사람을 생각하다 보니 그에 대한 다른 정보를 얻게 되었다. 이미 널리 알려진 사실일지도 모르지만, 그것은 그 사람의 사랑에 대한 이야기다.


1. 조선이건 어떤 왕조건 어떤 체계를 가진 역사상의 국가건, 그것의 붕괴를 초래하는 것은 그 체제 안에서 빨리 적응하여 어느 정도 경제적, 사회적 기반을 가진 수구세력이 발단이 된다. 정확히 말하면 그 집단의 탐욕이 사회 내에 똥을 만들기 시작하면서부터, 즉 국가 성립 시점으로부터 중, 후반기부터 체제가 썩기 시작한다는 것이지. 예를 들어, 가까운 예로 썩은 집이 되어버린 북조선이 있고, 무너져버린 리비아 수구 정권이 있으며, 고등학교 역사책을 펴 봐도 쉽게 알 수 있는 거 아닌가. 요즘 교과서에는 안 나오는지도 모르겠다만... 요컨대 조선왕조건 고려왕조건 뭐건 초기에 가장 이상적이었다.

그 중에 주목할 점은 조선 초기에는 남자와 여자에 대한 시각이 세계 어느 문화와도 비교할 수 없었다는 것이다. 단언하건대 인류 역사상 가장 이상적이었지. 예를 들자면, 조선 초기, 즉 15세기에 '마노라'라는 단어는 현대어로 해석하면 '상전(上典)'이야, 간단히 말해 당시에 남편들은 자신의 아내를 '주인님' 정도의 의미로 불렀다고. 또, 베오베에 있는 조선 성범죄에 대한 처참한 처벌 기록도 다들 읽어 본 적 있겠지. 조상들의 인식이 어땠길래 그랬을까? 아래를 보라고.



2. 고등학교 국어 시간에 배웠는지 잘 모르겠어. '월인천강지곡'이나, '석보상절', '월인석보' 같은 책들의 이름이 기억이 나시는가? 안난다고라... 뭐 괜찮아 대충 알아도 상관 없어. 위키페디아가 있으니까 좀 긁어 와 볼까?

싫어.
 
귀찮아. 간단히 말하면 이거야. 세 가지 모두 세종이 한글 창제 후 가장 초기에 만들어진 책들이고, 세 책 모두 불교 관련 서적이라는 점. 이 중 '석보상절'과 '월인석보'는 두 책 모두 누군가의 죽음을 애도하기 위해 만든 책이라는 점. 이 중 '석보상절'은 먼저 떠나간 아내가 너무 그리워서 아내를 애도하느라 세종이 아들을 시켜서 1446년에 지었다는 것만 알아 줬으면 해. 직접 검색하면 당신은 이미 박사~

1446년에 돌아간 소헌왕후 심씨(昭憲王后 沈氏)가 세종의 정실 "상전"이야. 난 역사는 잘 모르지만 그녀가 돌아가고 나서 세종이 급격히 쇠약해지고 끝내 죽어서도 합장 묘를 써 달라고 했다는 건 알고 있지.


조선 초기의 왕들이 자신의 반쪽을 어떻게 생각했는지, 또 당시 분위기에 남녀의 결혼을 어떻게 보았는지는 언급한 세 가지 문서에 잘 적혀 있어. 참. 석보상절이나 월인석보는 둘 다 '샤카무니' 혹은 '석가모니', '석가 세존'의 일대기를 다룬 불교서적이야.


뭐? 세존불이 결혼을 했으니까 세속적이라고? 신성하지 못하다고? 전국의 불제자 및 서구 종교 신봉자들 중에 착각하는 사람들이 많아. 불교는 의존하거나 의지하거나, 쉽게 말해 든든한 빽이 되어 주는 샤머니즘의 확대판이 아니야. 물론 자학에 가까운 금욕을 요구하지도 않아. 또 구세는 제3자가 나타나서 해 주는 게 아니고. 불교는 오히려 학문에 가깝지. '묘법연화경'에서도 분명히 말하지만 태어난 모든 것들이 이미 부처야 즉, 태어난 모두가 구세를 위해 노력하는 것 뿐이라고. 스토아 학파적인 논리로서의 학문이 아닌 건 알지?

요컨대 '진실과 정의, 순리를 요구하는 사람마다의 마음 자체가 이미 불성(佛性)'이라는 거지. 동시에 그들은 모두 불제자인 셈이야.


어쨌건, 결혼을 하건 혼자 살건 "너님이 알아서 하세요." 하지만 세존불은 분명히 혼인을 했고, 어떻게 혼인을 하게 되었는지 그게 중요해. '석보상절'과 '월인석보'에는 그게 실려 있어. 물론 고등학교 국어책에도 실려 있지. 이상한 기호 해독하기 귀찮았으리라 믿어. 근데 난 이상한 기호 해독이 취미라서 이미 해독해 놓은 게 있지.

요컨대 세종과 그 시대의 우리 조상들은 저렇게나 아내를 아꼈다고.



3. 아래는 부처가 열반에 이르기 수백 겁 전에 아내를 얻게 되는 부분을 발췌해서 현대어로 번역한 것이야. 내 맘대로 넣고 빼고 했지만 무슨 전문가한테 물어 봐도 똑같은 이야기를 해 줄거라 믿는다.


그 때 선혜(善慧: 부처의 옛 이름 중 하나)라는 선인이 산에 살아서, 오백외도(五百外道)가 잘못한 일을 가르쳐 고치시거늘 그 오백명이 제자가 되고저 하여 은(銀) 돈 하나씩 바치니.

그 때 등조왕(燈照王)이 보광불(普光佛)에게 청(請)하여 공양(供養)하려고, 나라에 명령을 내려 '좋은 꽃은 팔지 말고 왕에게 가져오라'하여,

선혜가 이 일을 듣고 꽃을 찾아 다니다가 구의(俱夷: 부처의 아내) 낭자를 만났다. (그녀가) 꽃을 가지긴 했으나 왕의 명령이 두려워 병 속에 숨겨 두었지만 선혜의 정성이 지극하여 꽃이 (저절로) 솟아나서 (그것을 들켰다. 선혜가 구의를) 쫓아가 불러 

'(내 그 꽃을) 사겠소'하거늘.

구의 이르길 '대궐에 보내어 부처님께 바칠 꽃이라 그리 못하오'

선혜 이르길 '은돈 오백냥을 줄 터이니 다섯 줄기를 사겠소'

선혜 묻기를 '어디에 쓰시게?'

선혜 대답하기를 '부처께 바치리라' 

구의 다시 묻기를 '부처께 바쳐서 뭐 하시게?'

선혜 대답하기를 '일체종종지혜(一切種種智慧)를 이루어 중생(衆生)을 멸도(濟渡)코져 하노라'

구의가 속으로 여기기를 '이 남자가 정성이 지극하여 보배(은돈 오백냥)를 아끼지 않는구나!'

그리하여 구의가 이르기를 '내 이 꽃을 주리니 내 원하길 내 생생(生生)애 그대의 각시가(원문은 '갓', "가시나"도 본래 나쁜 말이 아니었을 걸?) 되고 싶다'
 

...중략...


구의 이르기를 '내 소원을 아니 따르면 꽃을 못 얻으리라'

선혜 이르기를 '그러면 네 소원을 따르리니 나는 보시(布施)를 즐겨 사람의 뜻을 거스르지 않고 아무나 와서 내 머리통이며, 눈알이며 골수며 각시며 자식이며 달라고 하여도 내가 보시하는 마음을 자네가 허물지 말라'

구의 이르기를 '그대 말대로 하리니...'


이 일화에서 눈여겨 볼 것이 몇 가지 있어.

첫째, 이 이야기는 부처가 열반에 이르러 윤회의 굴레를 벗기 수백 겁(劫) 전부터 '생생이', 즉 태어날 때마다 만나게 된 자신의 부인을 처음 알게 된 사건을 기술하고 있다는 점.

둘째, 부처는 자기 몸을 꽃 일곱 송이에 처자에게 팔았다는 점.

셋째, 선혜와 구의는 '불심(佛心)'으로 일심 동체였고, 구의가 선혜에게 끌린 점도 선혜의 지극한 불심이었으며, 먼저 딜을 제시한 게 구의라는 점. '내 앞으로 나는 생생에 그대의 각시가 되리라', '내 앞으로 나는 생생에 그대의 각시가 되리라', '내 앞으로 나는 생생에 그대의 각시가 되리라', '내 앞으로 나는 생생에 그대의 각시가 되리라', '내 앞으로 나는 생생에 그대의 각시가 되리라'.....

넷째, 구세를 위해 헌신하는 것이 바로 '불심'이라는 점.

다섯째, 두 남녀는 처음부터 끝까지 반말한다.


별 것도 아닌 연애담을 세종이 중복해서 싣게 놔뒀을까? 참고로 조선 초기에는 판각에 한 글자만 틀려도 출판 책임자까지 엄벌에 처해진다고.

'선혜'를 세종으로 '구의'를 소헌왕후로 바꿔 봐. 먼 옛날 과거부터 각시였고, 현생에 각시였고, 앞으로 나는 생생에도 자기 각시래 씨바... 자기는 꽃 일곱 송이에 팔려 왔지만 앞으로 죽어서 또 태어 나서도 또 이 각시랑 살고 싶대... 그리고 진짜로 세종은 죽어서도 자기 각시 옆에 묻혔어. 눈물 나지 않아? 씨바... 세종이 이런 남자였어. 나는 이거 알고 나서 엄청 울었다.


고도의 은유법이 아니냐고 할 수도 있지. 구의가 가진 꽃은 사실 그녀의 '처녀성'이 아니었냐고. 그래도 이 설화에서 남녀의 본질적인 역학 관계는 바뀌지 않아. 요컨대 '생생이 다시 인연이 될 마음이 들 때에만 서로가 서로에게 몸을 허락하는 거야'. 알았어? 은유로 간주한다고 해도 사람의 사람에 대한 존중은 바뀌지 않아. 또 서로의 서로에 대한 사랑과 약속의 의미도 바뀌지 않아. 이쯤 하면 조선시대에 성범죄가 어째서 그렇게 가혹한 처벌을 받았는지 알 수 있겠지. 동의가 있건 없건 자기 인연이 아닌 사람을 더럽힌 죄.

불제자 여러분, 여러분 자신을 '선혜'나 '구의'에 넣어 보라고. 우리 모두가 부처니까.



4. 요즘은 사람들이, 여성이나 남성이나, 자신의 짝을 얼마나 소중하게 생각하고 있는지 잘 모르겠어. 또는 몇몇 이상한 익명 고민글이나 시게에 달리는 댓글 같은 거 보면 연예나 사람 자체에 대해서 사람들이 얼마나 회의적이 되었는지 알 수 있을 것 같기도 해. 사람의 사람에 대한 태도를 말하는 거야. 다수로부터 개인에 대한 태도이건 개인으로부터 다수에 대한 태도이건... 실생활에서 예를 들어 보면, 자신은 엄청나게 잘나 가지고 진리를 추구하는 척 하면서 실제로는 이 여자 저 여자 다 건들고 다니는 사람이라던가, 이도 저도 아니면서 그냥 외로운 감정에 들떠서 함부로 행동하는 어린 여자아이라던가, 손쉽게 자신의 성(姓)을 내세워서 관심을 끌어 보려고 하는 어린 애들이라던가, 성을 장난감처럼 가지고 노는 청소년들이라던가...


사람의 서로에 대한 기본 태도가 바뀌지 않으면 사회는 절대 바뀌지 않아. 요즘은 성범죄 처벌이 너무 가볍다고? 성범죄가 너무 많이 일어난다고? 나님 너님 할 것 없이 우리 스스로가 사람이 사람을 쉽게 보고 인연을 가볍게 여기기 때문에 그렇게 된 거지 괜히 그런 게 아냐. 속된 말로 또 잦아지고 싸졌기 때문에 빈도가 늘어난 거지 괜히 그런 게 아냐.


이쯤해서 불제자 여러분 잘 들어요. 

"윗 물이 맑아야 아랫물이 맑고, 윗물이 더러우면 아랫물에서 정수하면 된다."


물론, 우리 모두에게 지금은 자신의 짝이 없을 수도 있어. 외롭지 아마 오유에서는 그게 일반적인가봐. 돈 몇십만원에 몸 팔러 나온 사람을 정당화 해 주는 논리가 틀린 건 아냐. 또는 어장 관리 알뜰히 하면서 간간히 간접적으로 욕구를 채우는 똑똑이들을 비판하려고 하는 것도 아니야. 그냥 세종의 사랑을 보라고, 역사상 가장 진보적인 지식인이자 성왕인 저 사람이 품고 있었던 사랑과 인연에 대한 철학을 알아 달라고.

그러고 나서 곰곰히 생각해 보면 자신의 짝이 주변에 있거나, 반드시 나중에 만나게 되거나, 전에 만났는데 놓쳤거나 아마 그럴 거다. 왜냐면 불제자의 논리로서, 모든 이는 부처니까 이미 전생에 자기 짝이 있었다는 거 아냐? 그럼 이생에도 짝이 있는 거야. 논리력 甲이지? 느긋하게 기다리면서 잘 살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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