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억이 시작하는 시점에 엄마는 친아빠를 미워했고 봉고차를 몰아서 내가 전도사님이라고 부르는 남자가 있었다
남동생이 생겼고 전도사님이 집에 자주 왔다.
전도사님이 아빠가 되었고 나는 언니 둘과 우리엄마가 낳은 남동생과 같은 나이인 여동생을 얻었다.
어느 날 집에서 낮잠을 자고 일어났는데 내 뒤에 전도사님이 있었다.
화장실이 너무 가고싶었다.
그런데 전도사님 손이 내 다리 사이에 있었다
움직일 수 없었다
그 어린때에도 움직일 수 없었다.
나로써 참을 수 있는 만큼 오줌을 참았다
전도사님이 일어나서 내 방에서 나갔다
나는 혹시라도 내가 깨있던 것을 들킬까 하며 한참을 더 있다가 겨우 나왔다
엄마에게는 이야기 하지 않았지만 잊지 않았다.
내 주민등록번호와 이름을 바꾸게되었다.
엄마는 친아빠를 만나지 못하게 했다.
친아빠는 나에게 잘해주었다.
엄마가 미웠고 이해할 수 없었다.
가정조사를 할 때 언니 둘과 여동생 이름을 넣어야 하는지 고민했다.
누구냐고 묻는 친구들의 말에 어떻게 대답해야할지 몰라 말이 막혔다.
초등학교때 나를 잘 모르던 아이가 우리 엄마가 바람나서 친아빠를 버리고 동생을 낳았다는 소문을 내었다.
미친년이라고 욕지거리를 하며 무시하였다.
엄마는 나와 동생을 예뻐하였다. 동생은 어렸다. 동생은 용서받았다. 나는 동생보다 나이가 많았다. 나는 용서받을 수 없었다.
중학교에 들어갔다. 한달간 친구들이랑 친하고 재밌게 지냈다.
그런데 갑자기 아이들이 내 말에 대답을 해주지 않기 시작했다.
수업을 혼자 듣기 시작했고, 이동수업을 혼자 갔고, 내 머리에 물을 뿌리고, 수업시작하는데 부탁이 있다며 강당까지 갔다오라고 시키곤 하였다.
아무에게도 말할 수 없었다. 함께 초등학교를 나온 친구들에게도 말할 수 없었다.
한 달이 넘게 말하지 않았다.
어린가슴에 가슴이 미어져서 초등학교 졸업앨범을 보다가 울었다.
혼자 집에서 엉엉울고있는데 엄마가 들어와서 놀라 묻는다. 무슨일이냐고
꺽꺽거리며 넘어가는 숨에 말이 나오지 않았지만 나는 드디어 나를 말할 수 있었다.
엄마는 그길로 학교로 쫒아왔고 한달만에 아이들은 거짓말처럼 다시 나와 친해졌다.
선생님이 나를 점심시간에 교무실로 불러 밥은 먹었냐며, 힘들었냐며, 아이들이 힘들게하면 말하라고하였다.
나를 추궁하는 것 같아 무서웠다.
선생님이 김밥을 주셨다.
김밥은 아무 맛도 나지 않았다
단지 먹으랴 숨쉬랴 힘들었던 기억만 난다.
고마웠다.
그들은 내가 귀여운척을 해서 왕따를 시켰다고 말했다.
나는 뭐가 귀여운척인지 몰랐지만 안하기로했다.
아이들은 '나'를 싫어했다. 그래서 나는 '나'를 감추었다.
2학년, 3학년 무난하게 지나갔다.
학년이 바뀔때마다 계속 만나는 친구는 없었다.
반이 바뀌면 서먹해지고 인사도 하지 않았다.
엄마에겐 일이 생겼다.
자주 싸우던 동생 아빠가 죽여버리겠다며 가위로 옆구리를 찔러 가슴을 움켜쥐고 폐에 피가 찬채로 응급실로 제발로 걸어갔다
엄마는 그 때 나를 보았다
하지만 나는 기억이 없다
동생 아빠가 물을 끓인 냄비를 발로 차 엎었다
엄마의 오른 팔과 다리에 화상을 입었다
방에서 듣고있던 나는
그 개새끼에게 욕지거리 한마디 하지 못했다
그저 무시하며 엄마를 돕는것 뿐이었다
졸업을 했다.
나는 여전히 1학년때 담임 선생님을 좋아했다.
나를 수렁에서 나오도록 도와준 선생님
엄마는 달랐다.
그 '선생님'이 학교로 쫒아간 우리 엄마에게 한 말은
문제가 있으니 왕따를 당한다는 것
딱히 왕따랄 것도 없다는 것
폭력은 없었다는 것
정신력 있는 아이들은 그런 상황에서도 제 할일은 다 한다는 것
나는 선생님을 잊기로 했다.
고등학교에 갔다
나는 '나'가 아닌 '나'였다.
2학년이 되었다.
1학년때부터 친하게 지내는 무리가 생겼다.
많이 친했고 나를 많이 좋아해 주었다.
문득 어느날 나를 돌아보니 저들이 나를 좋아하는게 아니라 내가 저들에게 매달려 있는 것 같은 생각이 들었다.
몇 일간 더 지켜보았다.
나의 생각이 맞는것 같아 보였다.
하지만 나의 생각을 말하지는 않았다.
친한 친구들끼리 사진관에서 사진을 찍기로 하였다.
고민을 하였다.
사진관까지 가서 찍지않겠다고 고집을 부렸다
나를 설득했고 결국엔 사진을 찍기로 했지만 어떤 말 한마디에 빈정상해하며 나는 그 사진관을 나와버렸다
다른 친구도 짜증난다며 나갔다
같은 정류장에 서서
서로 같은 곳을 보고
서로 다른버스를 타고 나는 집에 왔고
그 친구는 쫒아온 친구들과 함께 다시 돌아갔다
집에갔다
속이 후련했다
내가 이긴것 같았다
다른 친구들도 있었다
그러나 무언가 공허하다.
3학년이 되었다
그들과 나는 더러운 벌레를 보듯. 투명인간을 보듯 그렇게 살았다
어느한 계기로 그 눈빛이 마주치는 시점이 생겼고 그들 중 한명은 나와 죽일듯이 싸웠다
졸업 후 그들 중 나와 가장 친했던 친구와는 연락이 닿았다
그러나 그뿐이었다
단지 닿았을 뿐 그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었다
엄마에게 어린시절 낮잠을 자고 일어났을 때 일어났던 일을 말했다
엄마는 나를 산부인과에 데려갔다
대학에 왔다
나는 여전히 '나'가 아닌 '나'였다.
엄마는 나에게 왜 동생은 용서하였지만 나는 용서하지 못했는지
일곱살 된 딸이 엄마랑 자고싶다고 울어도 끝까지 어두운 방에 문을 닫고 자게 만들었는지
말해주었다.
제 딸이 셋이나 더 있었던 동생 아빠는
남의 딸인 나를 엄마가 더 예뻐하는 꼴을 보고 간간히 욕지거리를 해댔고
엄마는 나를 지키기 위해 나를 멀리했다.
나랑 엄마는 우는 것 말고는 할 수 있는 일이 없었다.
새로운 친구를 사겼다
2학년이 되었다
함께 기숙사 생활을 하며 즐겁게 지냈다
엄마에게서 내 출생의 비밀을 알 수 있었다.
그래도 내 아비라고 믿었던, 한낱 보잘것 없는 공통점으로 저사람이 내 아빠다. 라고 생각하고 있었던 사람이 아빠가 아니었다
나는 아빠가 없다.
나는 세포에서 태어났다
나는 기증받은 정자에서 태어났다.
3학년이 되었다
정말 많이 좋아하는 사람이 생겼다
하지만 그 사람은 자신의 욕정에 나를 이용했다
철저하게 이용당한채로 나는 그를 버렸다
그리고 나는 지금 아프다
지금이 되었다
고등학교 2학년때와 같은 마음이 들기 시작한다
저들은 나를 좋아하는 걸까
내 뒤에서 나를 욕하고있는지도 몰라
사실 나를 불쌍해서 데리고다녀. 라고 말하고 다니는지도 모른다.
나는 또 지켜보고있다
고등학교때를 생각하면 결과를 불보듯 뻔히 알지만
이 방법 외에 내게 어떤 방법이 더 있을까
날 이렇게 만든 사람은 누굴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