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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업때문에 불행합니다..
게시물ID : gomin_399785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휴..Ω
추천 : 4
조회수 : 497회
댓글수 : 7개
등록시간 : 2012/09/07 00:55:34

안녕하세요. 항상 틈틈히 오늘의유머를 보며 웃는 평범한 남자입니다.

항상 베오베를 보며 웃고.. 고민게시판에 올라오는 다양한 사람들의 고민들을 봤었는데

어디 하소연 할 곳이 없어서, 이렇게 글을 남깁니다.

글이 조금 깁니다. 양해 부탁 드리겠습니다.

 

제 직업은 의사입니다.

모르는 사람들이 보시기엔 걱정없고, 능력있다고 생각하시겠지만..

저는 제 직업에 대한 회의감이 많이 듭니다.. 때려치고 싶습니다..

몇 안되는 주변친구들에게 말하면 미친놈이라 합니다.. 부모님한테는 말도 못 꺼내봤네요..

 

어릴 때 부터 꿈은 의사가 아니었습니다.

저는 외동아들입니다.. 부모님은 어렸을때부터 저에게 거시는 기대가 크셨죠.

항상 의사가 되라고 하셨습니다.. 그래야 대접받으면서 행복하게 살 수 있다고..

그래서 저는 당연히 의사가 되야된다고 생각했던 것 같네요..

돌이켜보면, 내가 하고 싶은 것이 무엇인지 진지하게 고민을 해본 적이 없던 것 같습니다.

그냥 공부만 무식하게 했습니다.. 중,고등학교 시절 추억은 학원,과외,공부밖에 없네요..

친한 친구도 별로 없었고, 남들 다 한다는 일탈 한번 안해보고..그냥 조용히 공부만했습니다.

가끔 농구를 하고.. 만화책을 보며 스트레스를 풀었었던 것 같습니다.

 

그렇게 학창시절을 보내고, 부모님에 강요로 의대에 진학하게 되었습니다.

저 역시 그래도 의사라 하면, 돈도 많이 벌고, 명예도 있고, 좋은 직업이라 생각이 되어서

별다른 불만없이 의대에 진학했습니다.

 

예과 시절엔 다른 대학생들 처럼 평범한 대학생활을 했습니다.

미친듯이 놀기도 하고,술도 왕창마시고 , 연애도 해보고.. 그때만 해도 훌륭한 의사가 되겠다는 생각을 하며

행복했던 것 같습니다.

 

그치만 본과로 넘어오면서부터는 지옥에 시작이었습니다.

해부학,병리학,예방의학 등을 배우며, 의학공부가 제 적성에 맞지 않다는 사실을 깨달았습니다.

신입생때.. 교양과목으로 철학수업을 들었는데, 정말 재밌었습니다..

그치만 본과부터는 고등학교 때 처럼 주어진 시간표에 따라 빡빡하게 움직여야하더군요..

교양과목 역시 당연히 못 듣습니다.. 그렇게 적성에도 안 맞는 공부를.. 잠도 못자며 했습니다.

저 하나만 바라보고 비싼 학비 대주시는 부모님 때문에요.. 그래도 버텼습니다.. 의사만 되면 행복해질거라고..

 

그렇게 지옥같던 생활을 꾸역꾸역 견디고.. 임상실습을 마치고, 어떻게 국시까지 합격하고..

인턴생활을 시작했습니다.. (참고로 저는 병역면제를 받아서.. 군 복무를 안하고 바로 취업을 했네요..)

인턴생활을 더더욱 지옥이었습니다.. 군대를 가보진 못했지만, 군대만큼 갈굼도 엄청 당하고..

밤낮 없이 죽어라 일만하고.. 오프때는 그저 하루종일 잠만 자고..

 

본과성적,임상실습성적,국시성적 모두 뛰어나지 않았고.. 임상진료때도 몇번의 실수를 했던 터라..

레지던트선발과정에서 모두 불합격했습니다.

덕분에.. 남들은 1년만에 끝마치는 수련의 과정을 저는 2년을 하고서야.. 간신히 레지던트가 되었고..

지금은 레지던트 2년차입니다..

제 나이 또래 보다는 많은 봉급을 받고, 주변사람들이 항상 부러워하고

조금만 더 버티면 전문의가 되지만 저는 행복하지가 않네요.. 오히려 굉장히 불행합니다..

 

그냥 남들처럼.. 평범하게 대학 졸업하고 직장생활을 하고 싶기도하고..

철학이란 학문에 흥미가 있어서.. 철학공부를 더 하고 싶기도 합니다.

그렇지만, 이제 나이도 벌써 서른줄이고.. 그래도 의사아들이라고, 항상 자랑스러워 하고

좋아하시는 부모님 얼굴보면 용기가 안생기네요..

 

본과3학년때 여자친구가 생겼었습니다.. 워낙 바빠서 잘 만나지도 못하고.. 잘 해주지도 못했습니다.

그 흔한 기념일,생일 한번 못 챙겨줬네요.. 그래도 저를 이해해주고,응원해주고,사랑해주던 좋은 친구였습니다..

전 그 친구에게 항상 의사가 되면 너랑 결혼할꺼라고 말했었네요..

 

인턴시절.. 그 친구를 부모님께 소개시켜드렸습니다.. 그리고 그 친구랑 결혼하고 싶다고 말했습니다.

부모님이 정말 엄청 반대하셨습니다.. 의사와이프 로는 어울리지 않는다고..

그 친구는 정말 평범한 가정에서 자랐고.. 그냥 평범한 직장인 이었거든요..

부모님은 그 친구가 성에 안차셨나봐요.. 너무 사랑하는 부모님이지만.. 그때는 정말 속물처럼 보였습니다..

 

그 친구 역시.. 저랑 결혼을 하려니.. 제가 의사라는 것에 대한 부담감이 컸었나봐요..

제가 과분하대요.. 부담스럽답니다.. 결혼은 못할 것 같다네요.. 의사라서

의사가 도대체 뭐그리 대단한건지..

 

결국 그 친구랑은 헤어진지 1년 가까이 됬네요..

전 그 친구랑 결혼하고 싶었고.. 결혼해서 행복하게 해주고 싶었는데..

고생만 시키고 헤어졌네요.. 괜히 못난 저 때문에 혼기만 놓친 것은 아닌지..

아직도 그 친구 생각하면 가슴이 쓰라리네요.

 

부모님은 이제 선 보라고 저를 보채시네요..

선 자리는 정말 많이 들어옵니다.. 그렇지만 선 보기는 싫어요..

직업,집안,연봉 따져서 계산적으로 결혼하기 싫어요..

제 직업이 아닌 저를 사랑해주고, 내가 사랑하는 여자랑 결혼하고싶어요..

 

지긋지긋합니다.. 때려치고싶습니다..

가끔씩 아도르노가 쓴 '미니말 모랄리아'를 읽으며 제 인생에 회의를 느낍니다..

맘 같아서는 지금 당장 때려치고.. 철학공부 하고 싶습니다.. 우울하네요..

 

다 쓰고 읽어보니 글이 정말 다크하고 우울하네요 ㅎㅎ;;

그래도 익명으로나마 남들한테 하지못했던 제 고민들을 털어 놓으니 속이 후련해지네요^^;;

 

제 글을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환절기인데 항상 감기 조심하시구.. 건강하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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