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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랑이 크레인의 슬픈 삶 - 원주의 부도직전 동물원..
게시물ID : animal_28183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진진1004
추천 : 19
조회수 : 730회
댓글수 : 3개
등록시간 : 2012/11/28 21:19:34

동물농장과 한겨례 신문에서도 다뤄졌던 내용입니다.

지금 다음 아고라에서 서명을 받고 있어서요.

오유인들이 참여해 주셨으면 좋겠습니다. ^^..

1. 서명 2가지

1) 서명 하나 : 아고라 서명이 개설되었습니다. 딱 10초면 서명 끝!!!

동물원 동물을 위한 법과 제도가 전무한 대한민국!

정부는 동물원동물을 위한 전담부서를 정하고 관리 감독을 시행해 주십시오!

http://bbs3.agora.media.daum.net/gaia/do/petition/read?bbsId=P001&articleId=129347#commentFrame

2) 서명 둘: 아고라 '희망해' 기금 서명

동물원 모니터링과 법 제정을 위한 기금 마련 서명.

네티즌 500명이 서명하면 전문기관의 심사를 거쳐 모금이 시작됩니다.

(11월 27일 현재 상황입니다. 목표였던 500명이 훨씬 더 넘어서, 다음측에서 심사 중에 있습니다. 현재 다음 '희망해'에 서명하시면 직접적인 모금은 아니지만 심사 통과에 도움이 됩니다. 심사 통과 후, 실제 모금이 시작됩니다. 그때 다시 한번 서명에 참여해 주시기를 간곡히 부탁드립니다.모금이 시작되면 다시 공지를 띄우겠습니다.)

http://hope.agora.media.daum.net/donation/detailview.daum?donation_id=107417#tit_sign

호랑이 크레인을 만나고 왔다.

부도 직전의 무너져가는 동물원.

아무도 찾지 않는 그곳에, 동물들이 앙상하게 마른채 죽어가고 있었다.

살아있으나 살아있는 게 아닌 채로...

<작별>의 새끼호랑이 크레인은 이제 12살.

쇠락해 가는 동물원만큼 그의 몸 역시 그렇게 병들고 늙어가고 있었다.

수많은 동물원에서 우울증과 스트레스를 이기지 못해 넋이 나간 동물들을 봐 왔으나,

어제 내가 본 그들은 여태 내가 본 그 모든 동물원 중 가장 최악의 상태에 놓여있었다.

내 평생 가장 절망적인 눈동자들을 어제 만나고 왔다.

누가 그들을 그렇게 할 권리가 있는가. 인간이라는 동물이 진보하고 있다고 누가 말하는가. 뜨거운 눈물이 흐른다.

 

..........................

2001년초에 <작별> 촬영을 마쳤고, 한동안 크레인의 소식을 듣지 못했다.

그리고 2004년. 그가 서울동물원에서 원주 치악드림랜드로 보내졌다는 소식을 들었다.

동물원계에서는 '분양'이라는 말을 쓰지만, 분양은 사실 '남는 개체의 처리'인 경우가 많다.

특히 크레인 분양에 대해서라면... 나는 그가 철저히 버림받았다는 생각을 했다.

근친교배로 태어나 백내장과 치아기형을 앓고 있던 크레인.

그는 동물원에서 쓸모없는 '잉여 개체' 였다.

못생긴 치아를 갖고 있기에 관람객의 환영을 받지 못하기 때문이다.

동물원뿐 아니라 자연계에서도 크레인은 별 도움이 되지 않는 존재이다.

체계적이지 못한 교잡과 근친교배로 태어난 그는 건강한 호랑이의 유전자를 갖고 있지 못하기 때문에

자연으로 돌아간다해도 환영받지 못할 존재.

 

그는 왜 태어났을까?

누구나 한번쯤 새끼 호랑이를 안아봤으면, 만져봤으면, 사진 한번 찍어 봤으면 하는 로망을 갖는다.

그러나, 사람들의 그 로망 아닌 욕망때문에 새끼 호랑이들이 생산되고 상업적으로 이용된다.

체계적인 혈통관리에 따른 (즉, 멸종위기종 보전을 위한) 번식이 아니라,

근친교배와 마구잡이 번식으로, 눈요기용, 관람용 호랑이들이 태어난다.

크레인이 태어났을 때 그는 엄마 호랑이 '선아'에게서 떼어져 사육사들의 손에 자랐다.

병약한 크레인이 제 명대로 살 수 있을지, 아저씨들은 걱정이 많았다.

나는 크레인이 생후 1개월 때 처음만나서 4개월이 될 때까지 성장과정을 카메라에 담았다.

크레인은 근친교배로 태어나 날 때부터 병약했고, 어미가 아니라 사람 손에 자라 겁이 많았다.

 

그리고 2000년 크리스마스 즈음, 크레인은 목줄에 묶이는 훈련을 받기 시작했다.

사육사 아저씨들은 야생을 박탈하는 훈련이라고 했다. 야생을 잃어야만, 갇혀 있는 것도 편하게 된다고...

훈련이 끝나면 크레인은 전시장 뒤에 있는, 어두운 콘크리트 방에 갇혔다.

아무도, 아무런 놀 거리도 없는 그 방에서, 크레인은 하루종일 목이 쉬도록 울었다.

그런데 크레인이 태어나자 이러저러한 TV 프로그램들, 뉴스부터 동물 프로그램까지, 경쟁적으로 취재를 왔다.

하지만 TV에 나온 크레인의 모습은 내가 봤던 크레인의 모습이 아니었다.

병약하고 겁많은 크레인이었지만 TV에서는 말썽꾸러기, 용감한 새끼호랑이로 탈바꿈되어 나왔다.

크레인이 하루종일 야생을 박탈당하는 훈련을 받고 슬프게 우는 모습 같은 건 단 1초도 보여지지 않았다.

그것을 보고 나는 비로소 내가 가야 할 길이 어떤 길인지 분명해지는 것을 느꼈다.

독립영화라는 건, 독립 다큐멘터리라는 건, 그냥 저예산 영화가 아니라,

상업적인 대중미디어가 돈이나 시청률, 그 어떤 정치적 압박 때문에 눈 감는 이야기,

세상에 알려져 있지 않지만 중요한 일, 혹은 모두가 알지만 외면하는 것들을 진실된 방법으로 보여주는 영화라는 것.

 

..........................

크레인은 새끼호랑이였을 때 단 몇 개월 동안만 서울동물원에서 반짝 스타였다.

근친교배의 부작용으로 커가면서 송곳니가 밖으로 돌출되는 모습이 되었고

관람용으로 전시가치가 없어진 크레인은 2004년, 열악하고 인기없는 지방동물원, 치악 드림랜드로 보내졌다.

1-2개월 동안 방송 출연용 내지 동물원 홍보용 새끼호랑이로서의 '쓰임'을 다하고,

크레인은 그렇게 폐기처분됐다.

'폐기처분'이라는 말이 지나친 말일까?

그가 보내진 치악 드림랜드를 가보면 알게 된다.

그곳에 보내진 크레인을 내가 처음으로 찾아간건 2006년 5월이었다.

<어느 날 그 길에서> 촬영을 마치고 지친 나는, 가족들과 오대산으로 짧은 여행을 떠났고,

너무나도 궁금했던 크레인의 안부를 확인하기 위해 드림랜드로 갔다.

동물원 성수기나 다름없는 5월의 화창한 계절이었지만 관람객은 우리 가족 외에 거의 없었다.

시설은 녹슬어 있었고, 몇 마리 안되는 동물들도 힘없이 늘어져 있었다.

어린시절 철창 밖으로 나가고 싶다고 목이 쉬도록 울부짖던 크레인은 이제 덩치 큰 고양이가 되어 모든 것을 포기한 듯, 철창 안을 맴돌고 있었다.

전형적인 정형행동이 몸에 배어버린 채로.

금방 다시 돌아올게, 네가 좀 더 편안한 곳에서 살 수 있게 할게, 마음 속으로 약속하며,

차마 떨어지지 않는 발걸음을 내디디며...그렇게 나는 크레인과 또 한번 이별했다.

그리고 일년 뒤, 2007년. 잠시 외국에 나가 있던 나는 인터넷 뉴스를 접했다.

크레인이 있는 치악 드림랜드가 운영란에 시달려 직원과 사육사들이 동물원을 떠났고,

한여름 무더위에 동물들만 남아 굶주림과 목마름에 시달리고 있다는 소식이었다.

달려갈 수 없어 발을 동동구르고 있을 때 원주 녹색연합의 현장 조사와 언론 보도가 이어졌다.

동물원은 간신히 다시 문을 열었고, 동물들은 겨우 '아사'를 면했다는 소식.

크레인을 그런 곳에 그런 식으로 살게 내버려 둘 수 없다는 생각이 늘 부채처럼 내 마음을 괴롭혔지만,

출산과 육아, 그리고 다음 영화... 쫓기듯 바쁜 일상 속에 크레인은 다음으로, 다음으로 미뤄져 갔다.

그리고 또 6년의 시간이 흘렀다.

2012년 11월.

동물보호단체 두 곳과 한 신문사에서 치악 드림랜드를 찾아간다고 했고 나는 갑작스레 동행하게 되었다.

그사이 혹시 크레인이 어떻게 되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불안한 마음과 그래도 볼 수 있을지 모른다는 설레임이 교차했다.

새벽 첫차를 타고 도착한 원주. 비오는 월요일 오전. 관람객은 우리뿐이었다.

상태는 2006년보다 훨씬 더 악화되어 있었다.

매점은 문을 닫았고, 모든 기구가 낡아서 부식되거나 무너져 내리고 있었다.

동물들의 수는 더 적어졌고, 남은 동물들의 상태는 살아있다고 보기 어려운 상태였다.

맨 처음 본 것은 당나귀.

당나귀는 배가 고픈건지 사람이 그리웠던 건지, 우리가 가자 바로 다가왔다.

근처에 쌓여있던 볏짚을 조금 가져다주자 허겁지겁 먹는 모습을 보고 얼마나 마음이 짠했는지.

그리고 나타난 유럽 불곰.

난 여태, 이렇게 작고 마른 불곰을 본 적이 없다.

불곰은 굉장히 덩치가 큰 곰인데, 반달가슴곰보다도 더 작을 정도로 말라 있었다.

동물원측은 그들이 털갈이를 하는 중이라 그렇다고 했으나, 겨울을 앞둔 곰이 털갈이 한다는 이야기는 들어보지 못했다.

지방을 비축해야 할 시점에 이렇게 몸이 마를 리도 없다. 그들은 영양결핍이거나 병을 앓고 있음이 분명해 보였다.

암컷은 자꾸만 토하고 그것을 다시 먹기를 반복하고 있었다. 전형적인 정형행동이었다.

암컷과 수컷 두 마리 불곰이 초점없는 눈동자로 앉아 있었다. 30분 가까이 이들을 지켜보았으나, 아무런 움직임이 없었다.

그동안 국내외 여러 동물원에서, 우울증에 걸린 동물들을 수없이 봐왔지만, 이런 표정, 이런 눈동자는 처음이었다.

충격을 삭히며 다음으로 가자, 사자가 나타났다.

2006년에 갔을 땐 숫사자가 있었는데 그사이 죽은 모양이다.

삭막한 전시장을 암사자 혼자 지키고 있었다.

 

그리고 그 옆 칸에... 한 마리 호랑이가 있었다. 그것이 크레인인지 아닌지 확인하기 위해 사육사에게 물었다.

그는 그 호랑이가 몇년도에 어느 동물원에서 온 호랑이인지를 정확히 기억하지 못했다.

그러나 이름만은 기억하고 있었다. 그의 입에서 '크레인'이라는 이름이 흘러나왔다.

그 이름을 듣는 순간, 마치 전쟁이나 입양으로 오래전 잃어버렸던 동생을 만난 것처럼, 가슴이 울컥했다.

살아있었구나... 크레인... 미안해... 너무 늦게 와서 미안해...

한참을 멍하니 바라보다가...조심스럽게 '크레인'하고 불러보았다.

그런데 크레인이 반응을 보였다.

멍하니 있던 그는 철창에 몸을 비벼댄다. 크레인이 어릴 적 자주 하던 행동이었다. 그리고 '킁킁' 콧소리를 낸다.

<작별> 촬영을 할 때 수없이 들었던 소리다. 호랑이들이 기분이 좋거나 같이 놀고 싶을 때 내는 소리.

엄마도, 형제도, 친구도, 놀거리도 없이 텅빈 콘크리트 방에 갇혀 있던 아기 호랑이 크레인은 종일 울다지쳐 잠이 들곤 했다.

그런 크레인의 모습을 담으려고 철창 너머에서 몰래 숨죽이며 카메라를 들고 있을 때,

아기호랑이 크레인은 어느새 나의 존재를 눈치채고 가까이 달려들곤 했다.

그만큼 누군가의 체온이 그리웠던 크레인...

철창이 우리를 가로막고 있었기에 내 품에 안기지 못하는 크레인은 킁킁 소리를 내며 철창에 몸을 비벼대곤 했다. 만져 달라고, 같이 놀아달라고...

나는 한 손으로 카메라를 든 채, 철창 사이로 손을 넣어 크레인을 쓰다듬어주곤 했었다.

그리고 약속했었다.

'크레인, 너의 이야기를 세상에 꼭 전할게. 그리고 너와 너의 친구들이 자유를 되찾는 그날까지, 너희들에 편에 서서 카메라를 들고 있을게.'

철창 밖으로 꺼내달라 울부짖는 크레인을 뒤로 하고 그렇게 나는 동물원을 떠나왔었다.

크레인은 내게, 인간의 눈요기를 위해 고통받는 모든 동물원 동물들을 대변하는 존재였다.

크레인 때문에 나는 인간이라는 동물과 비인간 동물의 관계에 대해 성찰하는 영화를 만드는 것을

내 인생의 화두로 삼으며 쉬지 않고 달려왔다.

글을 쓰고 영화를 만들고 이야기를 하고... 나름대로 내 할 일을 하기 위해 노력했지만,

막상 크레인의 삶에 직접적으로 도움이 되는 일은 하지 못했다는 생각에 죄책감이 밀려온다.

늙은 호랑이가 된 크레인이 내 앞에서 다시 '킁킁' 소리를 낸다. 킁킁거리며 철창에 몸을 비벼대는 크레인...

12년 전 새끼호랑이 크레인의 모습 그대로였다.

정말 그가 나를 기억하는 걸까? 설마하고, 또 '크레인' 하고 불러보았다.

크레인은 또 킁킁대며 몸을 철창에 비볐다.

 

아... 크레인...

그동안 나는 단 하루도 크레인을 잊어본 적이 없지만 설마 크레인이 나를 기억해줄 거라고는 꿈에도 생각하지 않았다.

이렇게 오랜 시간이 흐른 뒤에야 찾아와놓고 그가 나를 기억해주길 바라는 건 과분한 욕심이다.

하지만 분명한 건, 그가 많이 외로웠고, 자신의 이름을 기억하고 있고,

자신의 이름을 불러주는 사람에게 호감을 표현했다는 것이다.

아니, 어쩌면 크레인이 자신의 이름을 기억하지 못할 수도 있다.

자신에게 말을 거는 누군가의 따뜻한 목소리. 크레인이 그리웠던 건 단지 그것이었는지도...

태어나서 단 한번도 다른 호랑이는 물론, 다른 종의 동료와 놀아보지 못한 크레인.

단 한번도 초목이 우거진 숲에서 마음껏 달려보지 못한 크레인. 그의 외로움의 깊이를 나는 감히 상상하지 못한다.

크레인의 남은 여생을 생각해 본다.

그를 위해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일까 생각해 본다.

나는 그에게 책임이 있다.

그의 삶을 알고 있고, 그의 이름을 불렀던 나는.

장미가 여우에게 말했던 것처럼...

나는 그에게 책임이 있다.

그는 내게 단순히 카메라에 비친 피사체가 아니었고,

다큐멘터리스트로서 해야 할 일을 일깨워준 존재이기에...

내가 살아가야 할 삶의 방향을 정해준 존재이기에...

...................................

치악 드림랜드가 현재 사실상 부도이거나 부도 직전이라 사료조차 제대로 공급할 수 없는 실정이라

'동물자유연대'에서 얼마전 모금활동을 벌였고, 그 모금된 기금으로 동물들 먹을거리를 동물원측에 긴급 제공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모금에 참여한 분들의 착한 마음과 동자연의 빠른 대처가 고맙다.

그런데 이건 사료를 주고 끝낼 문제가 아니다. 또, 드림랜드만의 문제가 아니다.

수많은 동물원 동물들이 삭막한 환경 속에 고통받고 있다.

지금 절실히 필요한 건, '동물원 가이드라인'이다.

멸종위기종 보전에 도움이 되지 않은 채 단순히 관람용으로 동물을 전시해서 돈을 버는

상업적 동물원 (사실상 대부분의 동물원)은 폐지해야 된다고, 나는 생각한다.

그러나 '동물원 전면 폐지'는 사실상 어렵고 요원한 이야기.

굳이 존재해야 하겠다면, 운영에 관한 가이드라인을 만들어야 한다.

현재 한국에는, 동물원의 동물에 대한 최소한의 복지 규제와 국가의 관리 의무가 전무하기 때문이다.

일정한 가이드라인을 만들고, 그것을 법제화해야 한다.

그 기준에 따르지 않는 동물원에는 제재를 가하거나 폐쇄 조치를 내려야 한다.

그것은 단지 '사육동물 관리 규정'을 넘어서,

수천만년 동안 이 별에 살았으나 이제는 인간이라는 동물에 의해 절멸의 어둠 속으로 사라져가는

아름답고 슬픈 그들을 위한 최소한의 예의이기 때문이다.

참고 글:

"우탄이와 크레인... '동물을 위한 행동'은 동물원 동물과 쇼동물을 위한 단체입니다."

http://actionforanimals.or.kr/70151332826?Redirect=Log&from=postView

<동물을 위한 행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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